로그라인부터 흥미롭다. ‘중년 레즈비언 만옥은 고향에 돌아와 전남편인 이장의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이장 선거에 출마한다.’ 중년 레즈비언, 전남편 이장과의 정치 싸움, 이장 선거 출마…. 키워드 하나하나가 기존 미디어에서 쉽게 볼 수 없던 것들이라 호기심을 자극한다. 게다가 장르는 ‘퀴얼업 명랑 코미디’. 정말이지 <이반리 장만옥>은 이상한 영화다. 정의감보다 똥고집으로 정치 무대에 선 이상한 여자와 그를 기묘한 방식으로 돕는 더 이상한 여자들(그것도 소문 빤한 시골 마을에서!). 더구나 만옥(양말복)의 만행을 하트 모양 눈망울로 우러러보는 어린 세대의 조우까지, 영화는 사랑스러운 한편의 단편소설 같기도, 왁자지껄한 명랑만화 같기도 하다. 무려 양말복과 김정영의 간지러운 연애담을 볼 수 있는 이곳은 이유진 감독의 상상으로 탄생한 이반리다.
- 고향으로 돌아가 전남편인 이장에 대항하기 위해 이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이야기부터 심상치 않다. 어떻게 시작됐나.
2021년에 <나들이>라는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중년의 레즈비언 부부가 전남편의 부고 소식을 듣고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가 장례식장을 찾는 일종의 로드무비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했다. 그때 이 부부가 귀촌해서 살면 어땠을까 상상했는데 재밌겠더라. 졸업을 앞둔 즈음 장편영화를 꼭 써보고 싶은 마음에 이야기를 확장했다. 코미디도 욕심냈다. 다만 주인공이 꼰대라는 설정은 꼭 넣고 싶었다. 퀴어 캐릭터를 다루지만 마냥 선하지만은 않길 바랐고, 오히려 비호감에서 출발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 코미디 장르를 욕심냈던 이유는.
내가 웃음 욕심이 많다. (웃음) 퀴어영화 중에 코미디 장르를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성소수자의 상황이나 현실을 설명하다 보면 자연스레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문득 그 방향을 바꿔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웃음으로 심리적 방어가 내려가면 소재나 주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 만옥의 정체성을 아는 전남편이자 이장 철주(박완규)는 “이 마을에서 네가 오는 거 좋아할 사람이 어딨다고”라며 날카롭게 반응한다면, 고등학생 재연(성재윤)은 만옥의 정체성을 알게 되자 “대박”이라고 반응한다. 장만옥의 정체성과 현주소를 눈치챈 어린 세대는 그것을 힙하다고 여긴다.
만옥은 기본적으로 후배들과 세대 갈등을 겪고 있다. “너네들은 나 때랑 같지 않다”는 말도 반복한다. 이전에 한채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이사님과 GV를 한 적 있는데 정말 공감 가는 말씀을 해주셨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만든 세대와 태어났을 때 이미 그게 있던 세대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 세상은 성소수자 캐릭터를 하나의 덩어리로만 본다. 다 다른데. 그 안에 얼마나 첨예한 갈등이 있나. 그런 지점에서 만옥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자신이 어릴 적 쓰던 아지트를 이어 쓰는 청소년 친구가 있길 바랐다. 실제로 지방에 사는 퀴어 청소년들이 서울 행사에 갈 수 없어 많이들 목말라 한다고 한다. 모든 정보는 SNS를 통해 노출되는데 정작 그것을 경험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재연에게도 만옥이를 선물처럼 주고 싶었다.
- 성재윤 배우는 어떻게 발굴했나. 고집 있지만 말랑한 재연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일하게 오디션을 본 캐릭터다. 퀴어 당사자만 지원 가능하다고 공고를 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다. 오디션 과정에서는 대본의 일부만 보여주고 자유롭게 장면에 녹아들도록 요청했다. 윤가은 감독님 연출부에 있을 때 배운 것이다. (웃음) 그때 재윤 배우가 변화하는 상황에 정말 빠르게 적응했다. 재윤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했다고 하더라. 실제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가족들이 왔고 처음엔 많이 놀라셨다. 많은 관객들이 환호하고 응원하는 상황을 전부 지켜보셨다. 지금은 이해하는 과정에 있다고 들었다.
- 이반리의 ‘이반’은 오래된 퀴어 은어이고 재연이 말하는 “이쪽 술집”의 ‘이쪽’ 또한 레즈비언을 가리키는 은어다. 현실에서 쓰는 말들을 차용했는데, 외부 침입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기에 고민이 많았을 듯하다.
이반리는 코미디 설정으로 일부러 의도한 것이다. 이반리에 살지만 정작 만옥을 반대하는 기묘한 상황. 그 자체가 코미디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수자들도 퀴어의 언어를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러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또 당사자 관객에게는 ‘우리 영화네’라는 소속감을 주고 싶었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숨다 보면 계속 작아질 수밖에 없다.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4월26일)도 있다. 레즈비언 문화나 언어가 세상에 가시화될수록 더 안전하고 당연한, 일상적이고 편안한 제도와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의 만옥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가 이장이 되어도 세상은 여전할지 모른다. 하지만 만옥 다음의 이야기는 궁금하지 않나. 우리 재연이 이야기처럼.
- 윤가은 감독 연출부 시절 <우리집>에서 의상을 도맡았다. 금자(김정영)와 만옥을 묘사하는 과정에서도 의상에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이게 인터뷰에 실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웃음), 만옥은 극강의 여왕벌 펨(레즈비언 은어, 전통적 여성성 이미지를 띤 사람)이고 금자는 그런 상황에 많이 지쳐 대화를 단절하기 시작한 부치(레즈비언 은어, 전통적 남성성 이미지를 띤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상당히 이분법적이다. 하지만 레즈비언 내에서 통용되는 바로 그 전형성을 활용하고 싶었다. 전형성은 코미디의 중요한 재료니까. 특히 만옥·금자는 그런 관념에 더 영향을 받았던 세대의 레즈비언이기도 하고. 그래서 만옥이 알록달록 무지개 티셔츠를 입는다면 금자는 오직 검은 계열의 티셔츠만 입는다. 다만 머리 길이로 그것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한 부치는 옛날 미국 드라마 <엘 월드>의 셰인이었다. 한참 김정영 배우가 역할에 대해 고민할 때 그의 손을 잡고 약속했다. 모두가 반할 정도로 진짜 멋있게 보여주겠다고. 그것만은 자신 있었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나왔다. 동료 배우들이 이 영화를 보고 김정영 배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야, 너 이제 엄마 역할 못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