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제작된 컬트적인 인기작을 연상호 감독이 리부트한다. 주연이 아오이 유우와 오구리 슌이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설렘을 기억한다.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해서 실사영화, 그리고 시리즈물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왔을 뿐만 아니라, 감독, 각본, 원작, 프로듀서 등 다채로운 역할로 작품을 계속 만들어온 연상호 감독이 일본 제작자와 본격적으로 협업한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가 컸다.
일본에서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로는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2019, 2021), <도쿄 사기꾼들>(2024), <극악여왕>(2024), <지옥에 떨어집니다>(2026) 등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다소 노골적인 작품들이 성공해왔다. 그런 가운데 영화계 최대 기업인 도호와 한국 최고의 크리에이터 중 한명인 연상호가 손잡고 <가스인간>을 다시 탄생시키는 프로젝트는 매우 신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완성된 <가스인간>은 롱테이크를 곳곳에 사용하는 등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개성이 느껴지는 영상과 실력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영화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였다. <보그 재팬>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연상호 감독도 처음엔 영화로 기획했다고 한다. 그 후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이 결정됐다.
<가스인간>의 원작인 영화 <가스인간 제1호>(1960)는 <고질라>(1954)의 혼다 이시로 감독과 특수촬영 감독으로 유명한 쓰부라야 에이지가 공동으로 만든 작품인 <미녀와 액체인간>(1958), <전송인간>(1960)에 이어 ‘변신인간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각 작품에서 주인공은 ‘액체’, ‘전기’, ‘가스’와 같은 물질로 몸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며, 일종의 SF물이다. B급 감성이 가득하나 일본영화 전성기에 제작된 작품인 만큼 유명 배우들이 출연해서 진지하게 연기하는 것이 또 다른 볼거리다. <가스인간 제1호>에도 나루세 미키오 작품 등으로 친숙한 미하시 다쓰야 등이 출연한다. 특히 일본 무용의 젊은 스승으로 나오는 야치쿠사 가오루의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인체 실험으로 가스인간이 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은행 강도를 반복한다는 이야기는 터무니없지만, 9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덕분에 끝까지 한번에 볼 수 있다.
<가스인간> 각본을 맡은 연상호 감독과 류용재 작가는 90분짜리 작품을 약 8시간짜리 시리즈로 확장하기 위해 보다 복잡한 구성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오카모토 켄지(오구리 슌)와 기자(원작은 신문, 드라마판은 방송국) 코노 쿄코(아오이 유우)의 직업과 이름뿐 그외의 크고 견고한 금고와 라이터 같은 아이템이 오리지널에 대한 오마주로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연상호는 ‘가스인간’이라는 단어 자체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며 “그보다 더 감동받은 것은 등장인물이 지닌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버리는 왜곡된 순수함’이었다”고 덧붙였다. 오리지널 영화는 무용 스승인 후지 치카코와 가스인간의 사랑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드라마판에서는 과거 연인이었으나 수사 정보 유출을 계기로 헤어진 오카모토 켄지와 코노 쿄코의 사랑에 더해 유튜버인 후지카와 카호(히로세 스즈)와 오빠인 후지카와 후지타(하야시 겐토)와의 가족애, 그리고 어린 시절 외로웠던 쿄코와 그녀를 도와준 ‘아저씨’와의 사랑이 교차하며 그려진다.
오리지널 가스인간은 자신이 이제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지키려는 모습에 묘한 끌림이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그려진 세 가지 사랑 이야기는 스토리상의 연관성은 있지만, 효과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아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의 지시로 움직인다’는 가스인간의 설정에 있다. 그가 자신의 의지를 갖지 않은 것이 드러난 순간,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누가, 무엇을 위해 그를 조종하는가’라는 평범한 인간들의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가스인간이 왜 탄생했는가’라는 출발점에도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파일럿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주인공이 ‘우주에 가도 다치지 않는 몸을 만들어주자’라는 화학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가스인간이 됐다는 원작의 설정도 꽤 기발하다. 하지만 제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B급 SF’라는 장르적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편 8화 분량의 시리즈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설명과 그것을 점차 밝혀나가는 교묘한 구성이 필요했다.
<가스인간>에서는 ‘세계어린이평화박람회’라는 대규모 행사 진행 중에 떨어진 유해 운석을 처리하는 작업에 동원된 것이 원인이 되어, 쿄코와 가족 같은 관계를 맺고 있던 아저씨가 가스인간이 된다. 게다가 정계, 경찰, 야쿠자 조직이 하나가 되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운석 처리 활동 자체를 은폐해왔다는 점도 드러난다.
<가스인간>의 각본을 쓰면서 일본 소설을 깊이 읽었다는 연상호는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방해하려는 인물이 주인공인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올림픽의 몸값>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올림픽이나 만국박람회와 같은 국가 규모의 이벤트 뒤에서, 사람들(특히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의 존재가 무시된다는 설정은 2020년에서 2021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과 2025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겪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그래서 더욱 (한신, 아와지 대지진과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난 1995년으로부터 4년 후인) 1999년이라는 해를 왜 선택했는지, 운석이 떨어진 지점과 박람회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어떤 위험이 예상됐는지 등을 보다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묘사해 ‘가스인간이 탄생할 필연’과 ‘가스인간이 사람들을 죽일 필연’을 개연성 있게 보여줬으면 했다.
이 작품은 연상호의 눈으로 본 일본 풍경을 콜라주한 것이기도 하다. 후지카와 카호는 집밖을 거의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다. 그리고 지하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가스인간의 행방을 찾는다. 그 아이돌들의 전 매니저는 호스트 클럽에서 일을 한다. 또 운석 처리에 투입된 사람들은 코로나가 유행했을 때 일본 전역에 배포된, 당시 총리의 이름을 딴 ‘아베 마스크’와 같은 초라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해야 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위험한 작업에 임하는 모습은 2011년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겹친다. 권력욕을 드러낸 도쿄도 지사는 가스인간이 일으킨 사건을 선거 활동에 이용해 텔레비전에서 “불필요하고 급하지 않은 외출을 삼가해주세요”(이 역시 코로나 시기에 반복된 메시지다)라고 호소한다. 가스인간을 조종하는 열쇠가 되는 것은 1979년에 발매된 명곡 <사 랑스러운 엘리>(いとしのエリー) 레코드와 (일본에서는 아직도 현역인) 팩스다. 주변 국가에 비해 디지털화 속도가 늦고, 1990년대 이후 정체된 분위기가 감도는 일본 사회의 조각이 화면 안에 가득 차 있다.
한편 젊은 여성 형사가 연령 차이가 큰 남성 형사를 ‘선배’라고 부르고, 소녀 시절의 쿄코가 20대 청년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한국식이라고 느꼈다. 후지카와 카호와 오빠가 사는 옥탑방도 일본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형태의 주거였다. 한국 영화감독이 리더십을 발휘해 일본의 고전적인 IP를 현대에 재탄생시킨 <가스인간>은 획기적인 프로젝트였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기발한 설정을 배우들의 힘과 특수효과 기술로 꽤 억지로 성립시킨 60년대의 영화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재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수 있었다. 러닝타임이 짧은 영화였다면 연상호는 보다 명쾌하고 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아쉬움을 담아 상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