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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기이하게 불길하게 인상적으로 - <위커 맨>의 불씨가 살아 있는 영화, 음악, 그 이상

교외 풍경을 강조해 한 사회와 개인을 고립시킨다. 지배적인 도덕 체계 또는 종교 교리를 왜곡한다. 이로써 폭력, 고문, 나아가 악마와 같은 초자연적 존재를 소환해 공포를 조성한다. <포크 호러: 끔찍한 시간과 기이한 일들>의 저자인 영화평론가 애덤 스코벨은 포크 호러의 구성 요소를 그리 요약했다. <위커 맨>은 과연 그 교본에 다름없다. 1973년 태동한 뒤 50년째 그 박동을 유지 중인 이 작품은 아류라고 부르기엔 서러울 만큼 빼어난 유산들을 남겼다. <위커 맨: 파이널 컷>의 국내 최초 개봉에 기해 <위커 맨>의 영향을 받은 영화, 음악, 그 이상의 심상들을 펼쳐본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 <미드소마>(2019)

<미드소마>는 동시대 관객이 <위커 맨>과 한 핏줄 영화로 분류할 제1의 후보다. 아리 애스터 감독도 말했다고 한다. “늘 이 위대한 작품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어쩐지 둘 사이의 공통점은 초반부 전개에 집중돼 있다. 주민들만의 풍속이 자리 잡은 마을에 나름의 목적을 가진 외부인이 발을 들인다. 환한 대낮에도 이상한 일들이 판을 친다. 축제를 앞두고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시도 때도 없이 날뛰고, 외부인은 당황한다. 전반적인 무드 면에서도 <미드소마>는 <위커 맨>을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데, 뒤로 갈수록 얘기는 달라진다. <미드소마>의 주인공 대니(플로렌스 퓨)에게는 <위커 맨>의 하위 경사와는 다르게 일종의 선택권이 주어진다. 한마디로 아리 애스터 감독은 지독히 외로운 인물에게 새로운 공동체를 선물했고, 관객에게 기묘한 위로를 안겼다. 대니의 결정에 공감하는 사람만을 사무치게 할 위로를.

로빈 하디 감독의 영화 <더 위커 트리>(2011)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한 동명의 리메이크도 존재하지만, <위커 맨>의 진정한 후속작은 로빈 하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더 위커 트리>라 할 수 있다. 2011년에야 공개된 이 속편은 기독교 선교사가 이교도 마을을 방문한다는 설정으로 문을 연다. 전편과 다른 인물들을 내세우지만, 소재와 주제는 유지한 이 작품은 다만 완성도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디 또한 <더 위커 트리>가 <위커 맨>의 리메이크보다 낫다는 세간의 평에 만족할 뿐 원작 <위커 맨>보다는 못하다고 자평했다고 한다. 또 한편의 속편을 꿈꾼 하디는 2016년 세상을 떠나야 했는데, 그의 아들 저스틴 하디가 아버지의 바람을 실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데드라인>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31일, 저스틴 하디마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신들의 분노>(Wrath of the Gods)라는 제목으로 완성된 그의 유작이 8월 중 첫 시사를 앞둔 상태였다. 하디 부자가 합심한 <위커 맨> 3부작의 결말은 언제쯤 관객을 만날 수 있을까.

라디오헤드의 <Burn the Witch>(2016) 뮤직비디오

이보다 선명할 수 있을까! 라디오헤드는 9집 앨범 《A Moon Shaped Pool》의 첫 트랙이자 리드 싱글인 <Burn the Witch>의 뮤직비디오로 <위커 맨>을 충실히 오마주했다. 클레이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기에 음산함이 덜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화형을 예고하며 “우린 네가 어디 사는지 안다”(We know where you live)고 되뇌는 곡 후반부를 들으면 찰흙으로 된 둥근 얼굴들이 언제 어떻게 뭉개질지 모르겠다는 섬뜩함이 배가된다. 리드 애니메이터였던 비르피 케투는 <월레스와 그로밋>으로 유명한 아드만 스튜디오 출신으로, 10명 남짓한 팀원들과 2주 만에 <Burn the Witch>를 위한 세트를 짓고 촬영했다고 한다. 이 모든 기획은 유럽으로 이주한 난민들을 향한 폭력적인 반응을 염려한 밴드의 뜻이 반영된 작업이었다고도 한다

캔디데이트의 3집 《Nuada》(2002)

1998년 결성된 영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캔디데이트는 <위커 맨>에 진심이다. 그들은 정규 3집 제목을 서머아일섬 주민들이 섬기는 태양신의 이름인 ‘누아다’로 짓고, 곡 작업을 위해 아예 <위커 맨> 촬영지인 스코틀랜드로 향했다. 그렇게 탄생한 곡들은 목가적인 선율을 배반하는 자극적인 노랫말로 채워져 있다.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조엘 모리스가 영화 저널리스트 오언 윌리엄스와 나눈 인터뷰에 따르면 밴드 멤버들은 <위커 맨>의 스토리보다는 분위기에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에, 가사에는 신념의 충돌에 관한 암시를 넣을 수밖에 없었다. <위커 맨>은 고립감과 자신만 옳다고 믿는 사람들의 잘못된 확신에 관한 이야기지 않나.” 캔디데이트의 <위커 맨> 2차 창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2023년 <위커 맨> 50주년을 맞아 영화에 삽입된 노래들을 커버한 EP 《Avellenau》까지 발매했다.

f(x)의 미니 2집 《Electric Shock》(2012)

걸 그룹이 앨범 재킷과 컨셉 포토에 얼굴을 가리고 나오는 일은 흔치 않다. 해내더라도 그 대체 이미지를 음악의 연장선상에서 짜릿하게 설득하는 사례는 귀하다. f(x)가 2012년 미니 2집 《Electric Shock》를 발매하며 뒤집어쓴 가면은 그래서 아이코닉하다. 다섯 멤버가 단체로 쓴 동물 탈은 <위커 맨> 속 서머아일섬 주민들의 오월제 행렬을 연상시킨다. 그들이 선 배경이 포크 호러를 촉발할 법한 산지일 뿐만 아니라, 복장 또한 탈이 표방하는 서로 다른 종의 동물들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나풀나풀한 드레스류다. 믹스매치의 감각은 사랑에 빠져 두근거리면서도 혼란스러워하는 수록곡의 화자들과 이어진다. 특히 “사랑하게 됐어 A-ha 한 이방인”을 부르짖는 <Beautiful Stranger>의 주인공이 동물 탈을 쓴 소녀들과 어울린달까. 아직은 자신을 감추고 싶지만, 상대도 그러하다는 걸 눈치채 먼저 다가가는 용기는 <위커 맨>에서 여관 주인의 딸 윌로우(브리트 에클란드)가 발휘한 그것보다 상큼하다. 가사에도 ‘가면’이 언급되는데,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소녀는 노래한다. “그들에게 넌 Mysterious 이해할 수 없는 네가 두려워.”

사진제공 라이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