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보이>(Congo Boy)
라피키 파리알라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프랑스, 콩고민주공화국, 이탈리아 | 2026년 | 94분 | 개막작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에 사는 17살 로베르는 교도소에 간 부모님을 대신해 네 동생을 돌보고 있다. 내전으로 마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총성이 난무하고, 로베르와 동생들이 잠시 머물고 있는 군인 대령의 집 역시 자경단의 위협을 받고 있다. 뮤지션을 꿈꾸는 로베르의 유일한 즐거움은 이따금 클럽 무대에 서서 랩을 하는 것이다.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는 로베르에게 음악을 포기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가족의 미래라고 강요한다. 라피키 파리알라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영화는 내전에 휩싸인 아프리카 지역의 불안정한 상황을 배경으로 ‘래퍼’를 꿈꾸는 소년의 무대를 리얼리즘 드라마로 그려냈다. 로베르의 랩을 비롯한 영화의 음악들은 음울한 배경을 잊게 할 만큼 흥겹고 신나게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아프리카 난민의 상황,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과 빈곤 등의 현실적 풍경과 균형을 이룬다. /김송희 자유기고가
<크레센도>(Crescendo)
아녜스 자우이 | 프랑스 | 2026년 | 133분 | 국제음악영화경쟁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오래된 유적지 원형극장에서 새로이 막을 올리게 되면서 주인공을 뽑기 위한 오디션이 열린다. 심사위원 모두의 귀를 트이게 할 능력 있는 가수가 오디션장에 있음에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피가 주인공 수잔 역에 발탁된다. 그의 아버지가 오페라단의 주요 후원자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준비하던 중 유명 테너이자 주연배우에 대한 성비위가 고발되고, 배우와 제작진 사이에 토론회가 열리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타인의 취향>으로 사랑받은 아녜스 자우이 감독의 영화로, ‘미투 운동’을 소재로 폐쇄적인 예술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생각과 그로 인해 점점 산으로 가는 듯 보이는 정통 오페라 공연을 겹쳐놓는 신랄한 풍자극이다. 영화는 성비위 고발이 소재임에도 사실관계보다는 ‘성폭력 고발’이 발생했을 때 작은 공동체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며 사람들은 어떻게 분쟁하는지에 집중한다. /김송희 자유기고가
<펑크>(Funk)
알리 무리티바 | 브라질 | 2026년 | 108분 | 국제음악영화경쟁
사브리나는 매일 밤 새로 태어난다. 낮에는 파벨라(브라질의 대도시 빈민가)에서 지극한 현실을 살지만, 밤이면 클럽에서 관중을 열광케 하는 펑크 아티스트, ‘MC 사브리나’가 된다. 하지만 그는 더 큰 유명세를 원한다. 딸보다 돋보이려 용을 쓰는 엄마로부터 벗어나려면 프로 뮤지션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온 성공의 대가는, 모두가 알듯 왕관의 무게보다 무겁다. 주인공 사브리나는 거의 펑크라는 장르를 체현한 캐릭터다. 펑크 자체가 파벨라 커뮤니티에서 태동해 오늘날 브라질의 주류 음악 신을 장악하는 장르가 됐기 때문이다. 익숙한 ‘스타 탄생’ 내러티브도 노골적인 가사와 춤, 묵직한 전자음과 베이스 비트 등 펑크의 벌떡이는 에너지를 만나는 순간 구체적이며 특수한 장르 탐구로 거듭난다. <펑크> 속 모녀로 분한 두다 산투스와 MC 넴은 이 작품으로 제25회 트라이베카영화제 국제장편영화부문에서 최우수연기상(심사위원특별언급)을 공동 수상했다. /정재현
<스테이지>(Stages)
라이언 부스 | 미국 | 2026년 | 105분 | 국제음악영화경쟁
벤은 오랜 밴드 활동을 접고 솔로 아티스트로 새 출발을 도모한다. 그는 라이브 세션과 함께 텍사스에서 출발해 멤피스, 내시빌과 같은 미국 음악의 본토는 물론 털사, 피닉스 등을 순회하며 삶과 사랑을 노래한다. 한편 투어 프로그램의 오프닝은 늘 뮤지션 제시가 여는데, 이 신예는 정착지마다 이목을 끈다. <스테이지>는 예상한 대로 음악영화다. 데이비드 라미레스, 레슬리 그레이스 등의 뮤지션이 연기는 물론 직접 라이브로 여러 음악을 연주하는데, 몇몇 가사와 멜로디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잔상이 남아 곱씹게 된다. 그리고 <스테이지>는 예상외로 로드무비다. 평원과 구릉, 미시시피강 등의 풍광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을 뿐이다. 대신 각 지역에서 명맥을 이어가는 라이브 클럽이, 그곳에서 음악을 열망하는 이들의 얼굴이 여정을 채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무대’다. /정재현
<몸과 마음>
전찬우 | 대한민국 | 2026년 | 103분 | 국제경쟁
몸이 없어지면 마음도 사라질까. 마음이 없다면 몸을 탐하지 못할까. 몸과 마음, 생과 사, 생각과 행동, 흑과 백 등 다양한 양자가 섞이고 섞이는 곳에 <몸과 마음>이 있다. 인애(정하담)의 연인 도환(김영훈)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인애는 도환의 신체를 여기저기 절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도환은 이상한 형태로 살아나 마치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 같은 모습이 되어 인애와 다시 함께한다. 죽은 뒤의 연인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몸과 마음>은 그 모호한 감정을 애써 규정하려 하지 않고 흐르듯 나아간다. 영화는 어느 날부턴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설정을 밝히지만, 그 상세를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 대신 인애와 도환의 몸이 함께하고 마음을 나누며 이야기했던 순간들을 세세히 엮어간다. 시간 순서에 결박되지 않는 감정의 흐름이 미시적인 화면의 연속에 드러나고, 종래에 경험하지 못했던 기이한 무드를 만들어간다. /이우빈
<모스카스>(Lost Land)
페르난도 에임브케 | 멕시코, 스페인 | 2026년 | 99분 | 국제경쟁
올가의 일상은 무료하다. 주변 이웃들과도 사이가 나쁘고, 하는 일이라곤 낱말 퍼즐 맞추기밖에 없다. 올가는 돈을 구하기 위해 작은 방에 세입자를 구하고, 거기에 툴리오가 입주한다. 툴리오는 올가 몰래 밤에만 아들 크리스티안을 데려와 재우지만, 이내 아들의 존재를 들킨다. 완고한 올가는 가난한 부자에게 퇴거를 명하지만 아픈 아내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툴리오는 사라지고, 올가는 홀로 남은 크리스티안과 점차 가까워진다. <모스카스>는 멕시코시티 곳곳을 촬영한 흑백의 풍경 사진을 이어 붙인 영화처럼 정적이며 감성적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달리 밝고 명랑한 크리스티안이 도시 곳곳을 힘차게 뛰어다니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어른들은 조금씩 각자의 손길로 아이를 돌본다. 아픈 엄마를 만나고 싶은 소년의 상황에 따라 영화는 점차 다정하고 뭉클하게 변모한다. 소년을 둘러싼 다정한 어른들과 아케이드게임의 교차가 이 영화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든다. /김송희 자유기고가
<피터 후자르의 하루>(Peter Hujar's Day)
아이라 잭스 | 미국, 독일 | 2025년 | 76분 | 국제경쟁
오토픽션 작가 린다 로젠크란츠는 뉴욕에 거주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을 인터뷰한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74년 12월18일, 사진작가 피터 후자르가 로젠크란츠의 아파트를 찾는다. 남자는 어제의 일과를 진술하고, 여자는 이를 경청하며 질문을 던진다. <피터 후자르의 하루>는 린다 로젠크란츠의 녹취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가 털어놓는 하루엔 이렇다 할 사건이 없다. 담뱃값으로 얼마를 지불했고 낮잠을 몇시에 잤는지 등 알리바이 증명에 가까운 하루만 있을 뿐이다. 단지 특별한 게 있다면 그 일상을 나눈 상대가 수전 손택, 앨런 긴즈버그 등 뉴욕을 주름잡던 문화계 인사라는 점이다. 영화는 당대 뉴욕의 예술운동을 무심하게 회상한다. 오직 한 공간에서 방을 바꿔가며 낮부터 밤까지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만 담는다. 그 끝없는 말 속에 일상과 예술이 지닌 숭고함이 회화적이고, 구술에서 드러나는 삶의 디테일이 숨막히게 정교하다. /정재현
<메크투브, 마이 러브: 칸토 두에>(Mektoub, My Love: Canto Due)
압델라티프 케시시 | 프랑스 | 2025년 | 139분 | 국제경쟁
<가장 따뜻한 색, 블루>로 국내에도 유명한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신작이다. 배경은 프랑스의 세트라는 작은 마을이며 대개의 설정은 감독의 전작 <메크툽, 마이 러브: 칸토 우노>와 이어진다. 주인공 청년 아민은 파리에서 사진과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이제 고향 세트에 돌아와 첫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중이다. 이 넉넉한 휴양지의 풍경에서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갈린다. 하나는 할리우드에서 여행 온 배우 제시카와 그 남편 잭이 얽힌 이야기다. 한편 토니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된 오펠리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영화의 리듬이 신묘하다. 사실상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와 장면전환의 연속이 극 전반을 지배한다. 화면에 인물의 얼굴이 들어차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 현란하고 농축적인 드라마에 한번 슬그머니 빠져들고 나면 눈과 귀를 떼기가 어려울 것이다. 제78회 로카르노영화제 젊은 비평가상. /이우빈
<신신 앤 더 마우스>(Sinsin and the Mouse)
마카베 유키노리 | 일본, 대만 | 2026년 | 108분 | 피아니시모
정말이지 좋은 정적이다. <신신 앤 더 마우스>의 대개는 고요하고 느긋하다. 영화는 얼마 전 어머니를 여읜 치즈미의 행적을 따른다. 치즈미가 사는 집의 곳곳, 그녀의 식사 시간, 머리카락을 말리고 화장하는 일상의 소소한 모습까지를 꼼꼼히 채록한다. 상실의 시간을 겪던 그는 친구의 초대로 대만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대만계 일본인 신신을 만난다. 비슷한 아픔과 감성을 지닌 둘은 금세 가까워진다. 타이베이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대화한다. 아픔은 어떻게 나누어지는지, 기억은 어떻게 공유되는지, 앞날을 어떻게 함께 상상할 것인지가 여러 솔직함과 비유로 오간다. 무리하지 않는 카메라의 속도는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한다. 치즈미를 연기한 기시이 유키노 배우의 호연이 단연 눈에 띈다. 등에서 보여준 고유의 침착함과 무게감이 극의 전반을 탁월하게 책임진다. 일본의 유명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동명 단편을 원작으로 했다. /이우빈
<로스트 랜드>(Lost Land)
후지모토 아키오 | 일본, 프랑스, 말레이시아, 독일 | 2025년 | 99분 | 피아니시모
소수민족 로힝야족 소년 샤피와 누나 소미라는 방글라데시를 떠나 말레이시아로 이주를 준비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국어와 흡사한 발음의 놀이를 하던 아이들을 이모와 삼촌이 재촉하며 짐을 싼다. 브로커를 통해 밀항 배에 올라탄 아이들의 위험한 여정은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되어 관객이 이들의 여정에 깊이 동참하도록 한다. 난민과 이주민 이야기에 집중해온 후지모토 아키오 감독의 <로스트 랜드>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기타가와 요시오 촬영감독이 참여했으며, 비전문 배우인 주인공 소년, 소녀는 실제 남매이기도 하다. 감독의 아내이자 영화의 프로듀서인 와타나베 가즈타카는 미얀마 출신으로 그의 경험이 영화에도 반영됐다. 빛 한줌 없는 배에 갇혀 있다가 살아남은 아이들은 태국의 낯선 숲을 헤매며 배고픔에 시달린다. 극한상황에서도 빛을 향해 기도하며 신을 기리는 소녀의 모습이 먹먹함을 남긴다. /김송희 자유기고가
<낯선 땅의 맏아들>(Elder Son)
세실리아 강 | 아르헨티나, 프랑스 | 2025년 | 119분 | 피아니시모
독특한 구조의 디아스포라 영화다. 처음은 한국계 아르헨티나인이자 한창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18살 릴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버지와 함께 교외 캠프에 간 그는 다른 한국계 이민자들과 시간을 보낸다. 소주, 김치, 회가 차려진 밥상을 즐기지만 릴리의 마음은 모호하다. 그다음은 릴리의 아버지 안토니오의 대서사다. 과거로 시침을 돌린 영화는 안토니오가 어떻게 아르헨티나까지 이주했는지에 대해 젊은 시절을 회고한다. 세대를 통과한 영화는 이내 매체의 테두리까지 통과하기에 이른다. 마지막에 이르러 제시되는 것은 실제 한국계 아르헨티나인인 세실리아 강의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디아스포라가 지닌 상호교차성의 논제를 커다란 챕터의 구분, 극과 다큐멘터리의 혼용 등 형식적인 차원에서도 구현한 것이다. 이 방법론은 제78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현재의 감독들 부문에서 최우수신인감독상으로 화답받았다. /이우빈
<진세이>(Jinsei)
스즈키 루야 | 일본 | 2025년 | 93분 | 프리스타일
제목이 ‘인생’(じんせい)이어서일까. <진세이>는 ‘예측불허’라는 4음절로 요약 가능한 애니메이션이다. 우선 주인공의 궤적이 좋은 의미로 상식을 벗어난다. 100년을 사는 주인공은 이름도 정체성도 다양하다. 음울한 소년기를 보내던 중 가문의 대를 이어 J팝 아이돌로 데뷔하고, 괴담의 당사자와 스크린 스타의 삶을 5년 주기로 오간다. 그러더니 전 지구에 종말이 닥친다. 한 시퀀스 내에서도 주인공의 행동양식은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다. 다만 그의 비행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 영화가 주인공이 감정 불구의 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는 사연을 서사 내에 촘촘히 매설해두기 때문이다. 이 모든 내용이 스즈키 루야 감독이 18개월간 홀로 연출, 각본, 작화, 스코어 작곡을 해낸 애니메이션에 담겼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에 주목해보자.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연출한 듯한 <업>의 리메이크”라는 평이 과장이 아니다. /정재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