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 감독은 첫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2011)의 각본을 쓴 송혜진 작가와 “옛날 시인들이 교류하는 것처럼” 일했다. 지금은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의 작가로 잘 알려진 그와 직접 대면하기보다는 편지와 일기를 교환했다. 다음 작품인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2014), <소나기>(2017), <무녀도>(2018)의 경우 이미 고전이 된 소설을 각색했는데, 제작 시점은 원작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였다. “눈치 보지 않아도 돼 좋으면서도 찝찝했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 신작 <아가미>는 조금 다른 경험을 남겼다. 2009년 데뷔 이래 거의 매해 부지런히 신간을 발표해온 소설가는 “영화는 영화 전문가들에게 맡긴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는 한편 스튜디오에서는 자취를 감춘 그로 인해 안재훈 감독은 도리어 문학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한다. 개봉이 임박한 시점, 구병모 작가가 그런 안재훈 감독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그들이 서로에게 묻고 싶었던 것을 꺼내놓는 동안 아가미를 가진 소년과 그 곁의 인물들은 새 의미를 입고 다시 태어났다.
- <아가미>는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한 구병모 작가가 2011년 출간한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십수년이 흘러 영화로 재회한 소감은.
구병모 <아가미>로 북토크에 참석한 것도 2011년이 마지막이다. 어쩌면 개봉 시점에 인터뷰나 GV에 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그만큼 현재의 나는 집필 당시의 정서로부터 멀어졌다. 육체적으로 노쇠하기도 했고. 이제는 나보다 안재훈 감독이 이 작품에 대해 더 잘 알지 않을까? (웃음) 그럼에도 15년 전 소설을 좋아해준 젊은 독자들이 세월이 흘러 문화예술계 현장에서 일할 나이가 된 덕에 이 책이 생명력을 얻고 되살아났다. 이 이야기를 추억에 묻지 않고 꺼내주셔서 감사하다.
안재훈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스태프가 권해 <아가미>를 처음 읽었는데, 새삼 놀라웠다. <아가미>가 구병모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위해 단어 하나 버리는 게 아까울 정도로 완성도 있는 원작이기에 마무리 짓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작업을 멈추고 관객을 만나야 하는데 말이다!
구병모 전문가들의 영역을 터치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라 <파과> 때와 마찬가지로 <아가미>의 제작 과정에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재훈 감독과 스태프들이 더 고생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진행 상황을 접할 때마다 기적 같다고 느꼈고, 잘 완성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안재훈 당연히 원작자를 만나 힌트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구병모 작가에게도 지나온 작업에 대한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왕성하게 창작 활동 중인 분에게 괜한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내가 문학적으로 성장한 듯하다. 영화자막 번역가와 소통할 때는 내가 작가가 된 것만 같았다.
- 그럼 두분은 언제 처음 만났나.
구병모 제26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아가미>를 최초 상영할 때 처음 인사를 나눴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영화가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담고 있더라. 중간중간 새로운 연출과 편집으로 소설을 변주한 지점에서 '탁월한 선택이다!'라고 감탄한 기억이 난다. 색감에도 반했다.
안재훈 그날은 부모님께 성적표를 보여드리는 기분이었다. 다른 관객은 몰라도 원작자는 눈치채줬으면 하는 부분들이 당연히 있었다. 강하가 곤의 이름을 지어주는 신에서 비롯된 디테일들이 그랬다. 누군가가 <아가미>라는 영화를 볼 때 안재훈이 아닌 구병모를 떠올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작가의 글에서 읽은 그림을 영화에 넣고 싶었달까.
- 원작자로서 특별히 기대했던, 혹은 궁금했던 장면도 있었나.
구병모 실은 영화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겠다고 작정했는데, 부천에서 극장에 들어갈 때쯤엔 이녕이 환각을 보는 장면이 어떻게 구현되었을지 궁금해지더라. 텍스트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재훈 그 장면을 포함해 처음에는 모든 장면을 원작에 적힌 그대로 콘티를 짜봤다. 그러니까 러닝타임이 6시간 정도로 계산되더라. 스태프들과 그걸 추리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 방금 말씀하신 장면은 벌레 묘사 등 소설에 적힌 문장을 충실히 이미지화한 다음 관객에게 너무 무섭게 느껴질 법한 대목을 빼가면서 짧게 다듬었다.
- 소설과 영화간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배경이다. 소설 속 이내촌이 고립된 호수 마을인 것과 달리 영화는 목가적인 유럽 시골을 무대로 삼았다. 덕분에 작품에 디아스포라의 감각이 배가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안재훈 소설 <아가미>에는 한글로 쓸 수 있는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하다. 다른 책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언어들이었다. 그게 영상화하는 동안 빠져나가는 게 아쉬웠다. 특히 글은 가난을 대상화하지 않았는데, 영상은 잘못 만들면 가난을 쉽게 대상화하는 수가 있다. 관객이 인물의 서사에 온전히 집중하면서도 원작의 아름다운 문체를 경험하길 바라며 배경을 달리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이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밝고 산뜻한 유럽과는 차별화하고 싶어 한국적인 감성을 곁들여봤다. 예쁜 풍경 뒤에 가려진 무언가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구병모 글을 쓸 때는 전반적으로 채도가 낮은 분위기의 장소를 상상하며 작업했다. 출판사를 통해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변경되었다는 내용을 전달받고 감독에게 분명히 이유가 있으리라고 짐작했는데, 영화를 보면서야 외국 배경을 택해 표현의 폭이 넓어진 측면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컬러로 큰 스크린을 채워야 하는 제작진 입장에서는 비주얼적으로 최적의 선택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
- 애니메이션에서는 호수, 강, 바다로 넓어지는 물가의 표현도 돋보인다. 소설에서도 “모든 물질의 응집력은 수분을 전제로 하잖아요”라는 문장이 나올 만큼 물의 모티프가 중요한데, 각자 그 묘사에 있어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안재훈 물빛의 색감과 질감이 가장 고민이었다. 붓으로 그리는 그림과 셀로 그리는 그림은 다르지 않나. 그림이 움직여야 하니 단순한 색을 택하면서도, 너무 일차원적이지 않게 그리고자 물속을 기본적으로 어둡게 하되 넓은 바다로 갈수록 환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여러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진정으로 바란 물빛은 아직 내 모니터 속에만 있는 듯하다.
구병모 소설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물에서 매력보다는 공포를 더 크게 느끼는 편이다. 바다도 멀리서 바라보는 걸 좋아하지, 그 안에 들어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워터파크도 안 가봤다. 그래서 소설에서만큼은 현실적인 감상은 접어두고 무조건 환상적으로 접근한 것 같다. 의도했다기보다 내 본능에 의한 것이다. 소설에 하백 신이나 세이렌 등 신화적인 모티프를 언급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 인물들이 서로를 잘 호명하지 않는다는 점도 소설의 특징이다. 곤과 강하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류의 이름도 전면에 드러나는 법이 없다.
구병모 영화는 100분이 넘는 장편이지만 소설 <아가미>는 이야기의 사이즈가 작은 편에 속한다. 또한 이 소설은 흔히 ‘비일상’이라고 불리는, 환상성이 가미된 이야기다. 이제는 국내에도 판타지와 SF 등 장르소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다양해졌는데, <아가미>를 쓸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나조차 소위 전통적인 신춘문예 스타일에 걸맞은 습작을 해오던 사람이다 보니 환상문학의 인물들이 서로를 호명하는 것에서 유격을 느꼈다. 심정적으로 탁 하고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물에 기름이 뜨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들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 소설 속 인물들이 서로를 잘 부르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시나리오 쓰는 입장에서는 힘들지 않으셨나.
안재훈 곤, 강하, 해류, 이녕의 이름 하나하나에 뜻이 배어 있으니 인물들이 서로 부르게 하면 참 좋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작가에게 이 이름이 어떤 의미였을지를 더 깊이 생각해봤다. 작가가 인물들의 이름이 자주 불리기를 바라며 지은 것일지, 그 안에 뭔가를 숨겨두기 위해 지은 것일지 고민한 것이다. 후자에 가까울 듯하더라. 그래서 영화에서도 소설에서와 같이 가급적이면 호명을 덜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물론 중간에 노인이 강하를 부르는 장면이 있고 강하가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도 있는데,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웃음) 서양 배경에서 동양적인 이름이 불릴 때의 미묘한 균열 같은 것도 고려했다.
- 구병모 작가는 소설에 곤이 “아다지오와 같은 삶”, 즉 “그 어떤 행동도 현재를 투영하거나 미래를 전망하지 않고 어떤 경우라도 과거가 반성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 어느 순간에도 속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고 썼다. 두분이 애니메이션 <아가미>를 통과하며 의식하게 된 일상의 템포가 있다면.
구병모 <아가미> 속 다른 인물들보다도 후일담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어린이를 떠올리게 된다. 소설의 발표 시점을 기준으로 지금쯤 그 아이는 25살 정도가 됐을 테다. 그 또래 청년들이라면 남의 기준이 아닌 자기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내 경우 그 상태가 가속화하고 있어 모든 것이 너무 금방 흘러가고 잊히고 만다. 내게서 <아가미>의 이미지가 완전히 떠나가버리기 전에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어 무척 영광이고 다행이며 기쁠 따름이다.
안재훈 <아가미>로 인해 생긴 버릇이 있다. 목적 없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 사람은 벽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할 게 있을 때 살아난다고들 하더라. 내게는 그림 그리고 사진 찍는 습관이 있으니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떠올랐을 때 그를 그린 그림이나 그를 찍은 사진을 보내면 덕분에 힘이 났다는 응답이 돌아올 때가 있다. 이런 연락이 사람을 구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강하와 곤의 관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가미>에는 그럴게 등 떠밀지 않는, 잔잔한 응원이 담겨 있다. 한편으로는 내 정신이 온전할 때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지도 하나하나 생각해봤다. 그럼에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그림 그릴 수 있는 원작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 세번은 더 뵙고 싶다.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