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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품위에서 시도까지 - <씨네21> 추천작 6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기획전, 추천작 소개에 이어 <씨네21> 필자들이 전하는 추천작 프리뷰를 싣는다. 아다치 마사오, 저우타오 등 거장의 품위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부터 현시대 다큐멘터리의 기술적 진보를 고심할 수 있는 영화들까지 다양하다.

<아다치 마사오 여권 사진을 찍다> Masao Adachi Takes a Passport Photo

카말 알자파리|독일, 프랑스, 일본|2026년|27분|기획전

아다치 마사오 감독은 거인이다. <약칭: 연쇄살인마>(1969) 등으로 20세기 영화에 풍경론을 제시했고, 1970년대부터는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에 참여해 영화의 혁명을 또 다른 형태로 이어갔다. 다만 그의 혁명 체제는 1997년 체포와 일본 강제 송환, 출국 금지라는 제도의 벽을 마주하게 됐다. 그의 혁명적 태도는 지금도 영화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감독의 일상적 투쟁 중 하나는 여권 발행이다. 새 여권 발행을 17번이나 정부에 신청했고 기각당했다. <아다치 마사오 여권 사진을 찍다>는 이 반복적인 테러의 한 조각이다. 여느 때와 같이 여권 사진을 촬영하러 사진관에 들른 아다치 감독은 노년의 사진가 시다 이쿠요를 만난다. 그녀는 한곳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사진관을 꾸려오는 또 한명의 장인이다. 두 사람 사이엔 깊은 역사도 없고 연대도 없다. 하지만 카말 알자파리 감독의 애정과 소라 네오 촬영감독(<해피엔드> 연출)의 세심한 촬영은 그들 사이의 어떠한 끈을 포착한다. 매일매일을 분투하는 이들의 조응에 일말의 감흥을 느끼지 않기란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다. /이우빈

<대만구의 갈비뼈> The Rib of the Greater Bay Area

저우타오|중국, 홍콩|2026년|70분|프런티어

저우타오의 카메라는 마냥 무한한 것만 같다. 이번에 그의 눈에 띈 피사체는 대만구(大灣區)다. 광둥과 홍콩, 마카오를 잇는 커다란 지형으로 대만구는 수많은 물과 풀, 사람의 원류로 역할 중이다. 전작 <빅 데이터의 축>은 산악지대에 위치한 데이터 센터과 그 인근의 움직임을 통해 ‘데이터’에 대한 접근 불가능성을 내포했다. 이번에도 얕은 심도로 온갖 것에 초점을 옮기며 유유자적의 패닝과 틸트를 이어가는 방법론은 유사하다. 다만 그 결괏값은 꽤 다르다. 대만구라는 거대 자연 주변의 수영하는 아이, 배 타는 승객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는 행인들, 결혼사진을 찍는 커플의 모습을 계속하여 찍노라면 마치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세계는 없는 듯싶다. 아주 단출하되 뾰족한 통제력을 거쳐 만들어낸 작품이다.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영화감독이자 영상 작가인 저우타오의 탁월함을 물씬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극장에서 본다면 더욱더. /이우빈

<수국> Hydrangea

소하|한국|2026년|75분|한국경쟁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감독은 기억을 잃어가는 외할머니의 이사를 돕기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 소현과 모또미라는 두 이름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해온 그는, 어머니와 함께 곧 허물어질 외가에서 머물며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모계의 가족사를 마주한다. 영화는 토양의 성질에 따라 꽃잎의 색을 바꾸는 수국처럼 각자가 뿌리내린 땅과 시대적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빛깔의 삶을 지나온 3대의 시간을 비춘다. 카메라는 이들의 만남을 손쉬운 화해로 포장하지 않는다. 기억의 공백과 어색한 침묵, 서툰 대화 속에서도 인물들이 문밖의 하늘이나 창틀 너머를 끊임없이 가리키고 응시하는 순간들을 포착할 뿐이다. 프레임 바깥을 향하는 이들의 시선은 국경과 갈등으로 얽힌 현실을 넘어 3대가 함께 닿고 싶었던 이상적인 시공간을 지향한다. 그렇게 <수국>은 쉼 없이 밀려오는 망각과 소멸의 위협 앞에서도 눈을 돌리지 않고 저편을 지그시 응시하며, 경계에 선 존재들의 자리를 스크린 위에 온전히 긍정해내는 기록으로 남는다. /최재혁 영화평론가

<골칫덩어리 곰> Nuisance Bear

개브리엘라 오시오 밴든, 잭 와이스먼|미국, 캐나다|2026년|90분|국제경쟁

기존의 미디어가 북극곰을 안전한 거리에서 기후 위기의 가련한 상징으로 박제해왔다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골칫덩어리 곰>은 자연 다큐멘터리가 관습적으로 유지해온 손쉬운 연민의 시선을 허물어낸다. 조준경의 십자선에 포착되고, 헬기 그물에 결박되어 공중에 매달리며, 마취된 채 관리관의 손길 아래 무력하게 누워 있는 북극곰의 상태를 밀착해 비춘다. 곰을 바라보는 행위는 순수한 관찰이 아니다. 화면 가득 들어찬 곰의 혼란스러운 표정은 온전한 야생의 생태가 아니라 인간의 개입과 통제 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조건지어진 결과다. 비인간 존재를 포착하는 렌즈는 위험 요소에 대한 감시와 대상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려는 인간 중심적 시선을 폭로한다. 북극곰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 자체가 이미 인간 권력의 물리적 행사인 셈이다. 피사체를 수동적으로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이를 바라보는 매체의 시선 자체를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영화는, 북극곰을 감상적인 피해자로 소비하던 시각적 관습과 결별한 채 인간의 통제 시스템과 비인간 존재 사이에 가로놓인 불균형을 대면시킨다. /최재혁 영화평론가

<바리오 트리스테> Barrio Triste

스틸즈|콜롬비아, 미국|2025년|88분|다큐픽션

1980년대 콜롬비아 메데인의 빈민가, 방송사 카메라를 강탈한 10대 소년들이 자신들의 거칠고 위태로운 삶을 직접 기록하기 시작한다. 주류 미디어가 구축해온 타자화의 시선을 거부하고 권태와 폭력으로 얼룩진 현실을 아날로그 비디오의 파운드 푸티지로 담아내던 화면은 기이한 백색광 속으로 화면 속 인물이 흔적 없이 사라지며 다른 층위로 이행한다. 소년들을 좇던 카메라는 대상을 잃어버린 채 유령의 시선으로 공간을 배회한다. 기록의 주체가 돌연 증발해버린 자리의 시각적 공백은 서늘한 미지의 공포를 환기한다. 하모니 코린의 프로덕션과 아르카의 불안정한 사운드가 함께한 <바리오 트리스테>는 청춘의 절망과 폭력의 공기를 초자연적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영화는 소외된 세대의 상실을 값싼 동정으로 소비하거나 서사적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 부재하는 존재들을 섣불리 위무하는 대신 폭력의 역사 속에서 무력하게 지워져간 세대의 흔적을 스크린 위에 호명해낸다. 최재혁 영화평론가

<스카이랩: 우주의 노동자들> The Case Against Space

그레임 안필드|영국, 프랑스|2026년|73분|프런티어

기존의 SF영화가 광대한 우주를 스펙터클로 전시하고 비행사를 영웅으로 신화화한다면, <스카이랩: 우주의 노동자들>은 미지의 공간을 감시와 통제가 지배하는 폐쇄적 작업장으로 환원하며 장르적 관습을 격파한다. 유려한 천체의 풍경이나 특수효과를 지워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극적인 환영을 배제한 감시 카메라의 클로즈업이다. 영화는 6만쪽에 달하는 나사 교신 녹취록을 배우들의 신체적 수행으로 가시화하며 다큐멘터리로서의 실재성을 획득한다. 반복되는 루틴에 탈진해가는 인물의 표정과 몸짓이 시스템에 짓눌린 육체노동의 생생한 물성을 증명하는 아카이브로 기능한다. 감독이 통신 데이터와 기계 신호음을 변조해 만들어낸 전자음은 쉼 없는 과업과 규율이 안기는 압박감을 청각적으로 극대화한다. 우주 탐사사에 여전히 논쟁적으로 남아 있는 파업의 전말을 추적하고 그 실천의 가능성을 사유하는 영화는 맹목적인 진보의 신화에 맞서는 은폐된 저항의 궤적을 열어젖힌다. /최재혁 영화평론가

사진제공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