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품을 하면서 레드카펫을 밟을 거라고는 상상도 한 적이 없는데.” <메이드 인 코리아>로 미술상을 받은 김보묵 미술감독의 인사는 지금 이 영화제가 필요한 이유를 짚었다. 관객은 영화 속 공간을 기억하지만 그 공간을 만든 이름까지 기억하기는 어렵다. 기술이 정교할수록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편의 영화에 보내는 박수는 어디까지 닿고 있을까. 제8회 대전특수영상영화제(DFX)는 화면을 완성한 사람들을 무대 앞으로 불러내며 그 질문에 답했다.
카메라 뒤에 선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축제
9월17일 DCC 제2전시장 1홀에서 열린 DFX OTT(Over The Top)어워즈는 홍보대사 조우진 배우와 신아영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됐다. 국내 장편 콘텐츠 221편을 대상으로 기술상 7개 부문과 연기상 5개 부문을 선정한 이번 시상식의 문을 연 김성훈 집행위원장은 “관객이 만나는 몇초를 위해 누군가는 수개월에서 수년을 고민한다”며 짧은 엔딩크레딧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노고를 이야기했다. 기술을 설명하는 자리에 사람의 시간이 먼저 놓인 순간이었다.
기술상 대상은 <군체>에 돌아갔다. 김성훈 집행위원장의 발표에 이어 양유민 와우포인트 대표와 홍정호 덱스터스튜디오 VFX 슈퍼바이저 등이 무대에 올랐다. <군체>는 감염자의 변화와 크리처의 질감부터 도심과 군중까지 구축한 작품이다. 영상으로 소감을 전한 연상호 감독은 “특수영상 기술이 작품의 세계를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하나의 세계를 믿게 만드는 힘은 촬영과 후반작업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판단에서 비롯된다. 이번 대상은 그 협업 전체를 향한 박수였다.
올해 신설된 음향상은 특수영상을 바라보는 감각을 넓혔다. 첫 수상작 <살목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가오는 소리로 공포의 공간을 완성했다. 미술상의 시즌1과 특수효과상의 <기리고>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장면의 현실감을 떠받쳤다. 영화 시각효과상은 <굿뉴스>에, 드라마시리즈 시각효과상은 <취사병 전설이 되다>에 돌아갔다.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킹 오브 킹스>의 장성호 감독은 “30년 넘게 쌓아온 VFX 경험을 애니메이션 연출에 활용하려 했다”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각 부문의 성취가 나란히 놓인 이번 시상식을 통해 특수영상이라는 말의 넓이가 비로소 제 역할을 하는 순간이었다.
연기상 역시 기술과 배우가 함께 장면을 만드는 과정에 주목했다. 허태정 대전시장이 시상한 대상은 <왕과 사는 남자>의 박지훈이 받았다. 지난해 <약한영웅 Class 2>로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수상이다. 박지훈 배우가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올해의 최우수상은 <골드랜드>의 김성철에게 돌아갔다. 김성철 배우는 스태프들의 수상 소감을 들을 수 있어 뜻깊었다며 특별함을 더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오정세 배우는 우수상을 받았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오정세 배우가 참여하지 못했지만, 시상을 위해 기꺼이 대전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양동근 배우의 시상 순간도 남달랐다. 신인상은 지난해 수상자 한예지 배우가 건넸고 <좀비딸>의 최유리 배우가 트로피를 안았다. 분장과 신체 훈련으로 수아를 완성한 최유리 배우의 인사에도 캐릭터를 함께 만든 이들의 이름이 이어졌다.
액션연기상 시상에는 조금 특별한 동행이 있었다. 지난해 <경성크리처>시즌2에서 한소희의 대역을 맡아 수상한 스턴트우먼 김수영이 아기를 안고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뱃속에 있던 아이와 다시 찾은 자리였다. 올해 수상자는 <사냥개들> 시즌2에서 우도환의 대역을 맡은 이태경 스턴트배우였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서 일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기억하고 불러줘 감사하다”는 그의 소감을 통해 대역이라는 호칭 뒤에 가려졌던 배우의 이름과 삶이 객석에 전해졌다. 지난해의 격려가 올해 동료에게 돌아가는 이 장면들에는 영화제가 이어져야 할 이유가 담겨 있었다.
지난해의 다짐이 올해의 대상으로
<왕과 사는 남자>의 박지훈이 허태정 대전시장으로부터 연기상 대상을 받았다. 지난해 <약한영웅 Class 2>로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수상이다. 이날 김성철 배우에게 최우수상 트로피를 건넨 그는 자신의 수상 차례에는 작품을 대표해 받는 것 같아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납득이 되고 설득시킬 수 있는 그런 진정성 있는 배우”가 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지난해 품었던 아이와 다시 오른 무대
스턴트우먼 김수영이 아기를 안고 액션연기상 시상자로 돌아왔다. 지난해 <경성크리처> 시즌2의 한소희 대역으로 수상할 때 뱃속에 있던 아이다. 동료들이 흘린 땀방울의 의미를 알기에 상을 건네는 마음도 더욱 벅차다고 전했다. 올해 트로피는 <사냥개들> 시즌2에서 우도환의 대역을 맡은 이태경에게 돌아갔다. 화면 뒤에서 몸으로 이야기를 지탱해온 배우들의 시간이 다음 해의 격려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수아를 함께 만든 사람들에게
<좀비딸>에서 수아를 연기한 최유리 배우가 지난해 수상자 한예지 배우에게 신인상 트로피를 받았다. 좀비의 움직임과 소녀의 감정을 한몸에 담기 위해 훈련과 특수분장을 거친 배우는 자신을 수아로 만들어준 감독과 동료 배우에 이어 분장팀과 안무가의 이름까지 차례로 부르며 감사를 전했다. “정말 꿈만 같고” 믿기지 않는다는 수상 소감에는 하나의 인물이 태어나기까지 함께한 현장이 담겨 있었다.
양유민 와우포인트 대표, 홍정호 VFX 슈퍼바이저, 김민석 VFX 프로듀서(왼쪽부터).
하나의 세계를 함께 만든 이름들
기술상 대상 <군체>의 영광을 나눈 제작진. 김성훈 집행위원장의 발표에 이어 양유민 와우포인트 대표와 홍정호 덱스터스튜디오 VFX 슈퍼바이저 등이 무대에 올랐다. 크리처와 감염자의 변화부터 도심과 군중까지 구현한 협업의 성취다. 영상으로 인사를 전한 연상호 감독은 특수영상 기술이 작품의 세계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화면 앞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의 노력이 이 상에 담겼다.
넓어진 특수영상의 가능성
9월17일부터 19일까지 대전컨벤션센터와 메가박스 대전신세계아트앤사이언스 등 대전 일대에서 열린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은 ‘Unreal on Real, 가상으로의 몰입’이었다. 지난해 ‘Feel the Vision, 환상 감각 속으로’라는 기치 아래 관객과의 접점을 넓혔다면 올해는 그 경험이 제작으로 이어질 통로를 마련했다. 시상과 상영 및 기술 강연을 잇는 기존 프로그램에 이어 기술의 성취를 함께 보고 다음 작품을 만들 사람들을 연결하는 DFX 피치를 더한 구성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상영과 기술 강연은 무대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지난해 11편이었던 상영 규모는 올해 장편 6편과 단편 16편으로 확대됐다. 폐막작 <암살자(들)>과 지역 독립예술영화관을 연결한 상영은 관객의 입구를 넓혔다. DFX 테크쇼에는 김보묵 미술감독을 비롯해 정성호 무술감독과 피대성 특수분장·특수소품 감독 등이 제작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장면을 만든 당사자의 설명은 익숙한 영화를 다시 보게 한다. 감탄이 제작 과정에 대한 호기심으로 옮겨가는 시간이다.
AI를 둘러싼 기대와 고민도 함께 드러났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의 수상 소감에서는 생성형 AI를 제작 공정에 도입한 경험이 언급됐다. 반면 홍정호 슈퍼바이저는 AI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불안은 같은 무대 위에 있었다. AI가 어떤 장면까지 만들 수 있는가를 묻는 만큼 그 변화 속에서 누가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제작 사례를 공유하고 시행착오를 함께 검토하는 영화제의 역할은 그래서 더 커진다.
첫 DFX 피치는 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시도다. 1:1 비즈니스 미팅과 프로젝트 발표를 거쳐 6개 팀에 총 1억원을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완성작을 평가해온 영화제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의 제작 여건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디어를 제작비와 기술로 연결할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변화다. 여기서 만난 창작자와 기업이 어떤 협업을 이어갈지까지 살펴야 성과도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대전에는 대덕특구의 연구 역량과 스튜디오큐브의 제작 기반이 있다. 여기에 2029년 개관을 목표로 조성 중인 융복합 특수영상 콘텐츠 클러스터가 더해진다. 중요한 것은 시설 사이를 사람이 오가게 만드는 일이다. 8회를 지나온 DFX는 이제 9회와 10회를 향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올해 처음 만난 창작자와 기업이 내년에는 어떤 작업을 들고 돌아올 수 있을까.
9회에는 DFX 피치에서 발굴한 기획의 제작 과정을 살피고 기술 교류가 실제 협업으로 이어지도록 만남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그 이름들을 기억하고 다음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일. 여덟 번째 DFX가 열어놓은 과제이자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하는 약속이다. 미래 영상산업의 핵심인 특수영상영화제를 과학기술의 도시 대전에서 개최함으로써 대전 시민들의 관심과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