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화인이 <여전히 찬란하게>와 함께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한 사람은 <꽃섬>(2001), <거미숲>(2004), <오직 그대만>(2011)을 연출한 송일곤 감독이고, 또 다른 사람은 <마더>(2009)에서 모성과 광기를 동시에 그린 뒤 <길>(2017) 이후 오랫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던 김혜자 배우다. 처음 그는 “이름 없는 들꽃처럼 있고 싶다”며 영화 출연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일곤 감독이 6통의 손편지를 쓰고 오래 설득한 끝에 김혜자 배우는 카메라 앞에 섰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김혜자 배우가 있기에 <여전히 찬란하게>는 아름답고도 절제된 슬픔을 전하는 작품이 되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일제강점기인 1942년 어느 가을날 산골 소녀 정임(최주은)은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 당대 유행가인 <이태리의 정원>을 청아하게 부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유일한 관객 순옥(박서경)은 친구의 음악적 재능에 감탄해 박수를 치고 있다. 김혜자 배우가 후에 연기할 캐릭터는 당찬 정임이 아니라 그를 따르고 지지하는 순옥이란 점을 기억하자. 영화는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이태리의 정원>을 듣는 1991년 노년의 순옥(김혜자)을 거의 동시에 소개한다. 음악은 관객이 두 시간대를 동시에 경험하 게끔 이끌며 긴 시차를 단숨에 좁힌다. 오래전 즐겨 듣던 노래를 다시 들으면 아스라한 기분에 사로잡히듯이.
노인 순옥은 나이든 정임(차미경)과 노래경연 대회에 나가 <이태리의 정원>을 함께 부르기 위해 서울행을 준비 중이다. 시골을 떠나 상경 해서 정임을 가수로 만들고 자신은 응원단장을 맡겠다던 어린 시절 꿈을 늦게나마 실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들떠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순옥과 달리 정임은 어딜 가기로 약속한 건지 깜빡깜빡 잊곤 한다. 두 노인이 좋은 옷을 꺼내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질하며 채비를 할수록 관객은 점점 무거운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정임은 순옥에게 묻는다. “나 누구야?” 그리고 가슴을 치게 하는 한마디. “그런데 왜 나만 끌려 갔노?”
극 중 대과거에 해당하는 1942년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제가 강제 수탈을 벌인 때이다. 정임처럼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붙잡혀 일본군'위안부'가 됐고, 두영(문성현)처럼 산골 마을로 숨어들지 않은 남성들은 강제징용되었다. 두 번째 시점인 1991년은 고 김학선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해란 점을 상기할 때, <여전히 찬란하게>가 다루는 역사적 아픔은 명확하다. 송일곤 감독은 일제에 의해 꿈이 좌절된 여성들의 서사를 교차편집으로 대과거와 과거, 현재 시점으로 오가며 현재의 관객에 게도 그 아픔이 선연하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한때 심오하고 복잡한 영화적 문법을 구사하기로 유명했던 송일곤 감독은 <여전히 찬란하게> 에 이르러 친절하게 말을 건네고 있다.
<여전히 찬란하게>는 반전까지 예상대로 흘러 가는 영화다. 인류 보편의 인권문제와 결부된 소재이기에 이런 연출자의 선택을 나쁘게 볼 수없다. 게다가 어떤 배우가 표현하느냐에 따라 관객에게 와닿는 감정의 진폭이 다를 수밖에 없고, 김혜자 배우는 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이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김혜자 배우는 과거사를 과거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지금의 고통이자 계속 되는 비극으로 육화하여 현대의 관객을 뒤흔들어놓는다. 노년의 순옥이 손녀 지안(이세영)에게 “너무 아까워 내 친구, 열일곱 정임이”, “내가 가면 내 친구 기억할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라고 가만가만 이야기할 때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고인다. 커다란 움직임 없이 그저 나직하게 말하는데도 긴 세월 응어리진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산 이의 고백을 가까이서 들은 듯하다. 그렇게 <여전히 찬란하게>는 친절한 어법과 정제된 연기로 오래전 소녀들의 못다 한 꿈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로 되돌려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