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너의 꿈을 지키는 일이 나의 행복일 때 - <여전히 찬란하게> 배우 박서경, 최주은

서로의 행복을 먼저 헤아리는 마음은 <여전히 찬란하게>의 두 소녀를 가장 강인하게 만드는 힘이다. 시대의 폭력에 빼앗긴 시간 속에서도 정임과 순옥의 우정은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시절 순옥으로 분한 배우 박서경, 정임 역의 배우 최주은을 만나 두 소녀를 연기하며 발견한 것들에 대해 물었다.

최주은, 박서경(왼쪽부터).

- <여전히 찬란하게>는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다루지만, 그 무게에 압도되기보다 두 소녀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생기를 보여주는 영화다.

박서경 당시 소녀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우리와 똑같이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이었다. 인물이 겪을 감정 그대로 느껴줬으면 좋겠다는 감독님의 말씀을 따랐다. 정임과 둘밖에 없는 것처럼 장난치고 놀면서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다.

최주은 정임에게는 꿈과 친구가 삶의 원동력이다. 현실을 생각하면 꿈만 좇을 수없지만, 그럼에도 순옥 덕분에 꿈을 간직하고 살아갈 용기와 생기를 잃지 않는 인물로 그려내고자 했다. 정임이 어떤 용기를 가진 친구인지, 친구와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 두 소녀가 영화 <청춘의 십자로>를 보기 위해 애쓰고, 영화를 본 뒤 변사와 배우를 흉내 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소녀들이 실제 배우로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과도 겹쳐 보였다.

최주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어릴 적 뮤지컬을 보고 나왔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 노래를 계속 듣고 따라 부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그런 기억이 정임의 마음과 비슷하게 연상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다.

박서경 두 소녀의 꿈이 나의 바람과 닿아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갔다. 둘 다 영화와 연기, 대중 앞에 서는 일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렇다. 다만 어린 친구들의 지극한 순수함이라는 감각을 살리기 위해서는 연구를 많이 했다. 처음에는 연기를 단지 흉내 내려는 듯한 모습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연기를 대하는 본래의 마음을 내려놓고 한층 편하게 임해야 하는 느낌이었다. 극 중 두 소녀는 정말 서로밖에 없는 듯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걸 표현하려면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할지 고민했다.

- 최주은 배우는 노래를 매끄럽게 잘 부르는 것보다 시골 소녀다운 순수한 느낌을 살리는데 중점을 뒀다고. 뮤지컬 무대 경험이 있는 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 인물답게 노래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도 있었겠다.

최주은 뮤지컬 경험이 이번 작품에서 노래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맞다. 뮤지컬을 할 때는 노래를 더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여전히 찬란하게>에서는 시골 소녀가 어딘가에서 노래를 배워서 완벽하게 해내는 것보다, 그저 아름답고 순수하게 부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부르는 행위 자체를 즐거워하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기교를 덜어내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 순옥은 정임과 함께 비슷한 꿈을 꾸지만, 두 사람의 현실이 같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듯하다.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과 마주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순간이 보였는데.

박서경 순옥은 무척 순수하고 맑지만 그만큼 단단한 친구이기도 하다. 정이 많고 이타적이라서 자신이 위험해지더라도 정임의 행복을 더 중요시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그 이타심이 인물의 가장 강한 힘이라고 생각했다. 정임의 꿈과 희망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순옥에게 큰 행복이었을 것이다. 물론 원치 않았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순간적으로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겠지만, 순옥이 내린 결론은 정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여러 고민과 갈등, 순간순간 드는 마음도 단편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 어린 시절과 노년의 모습이 한 인물로 이어져야 하는 만큼 섬세하게 접근했겠다. 노년의 정임, 순옥은 어릴 적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박서경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김혜자 선생님의 작품을 찾아보면서 선생님이 가볍게 하시는 대사 한마디에도 전해지는 힘을 살폈다. 그만큼 선생님의 연기를 공부하려 노력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일을 겪은 뒤의 순옥은 어린 시절과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7살 순옥의 아이 같고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모습, 때로는 서툴기도 한 모습은 그 시절에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일들을 겪고 난후의 순옥은 다른 태도와 마음을 안고 살아갈 테니, 선생님께서 그 변화를 잘 표현해주실 거라고 믿었다. 어릴 적 순옥을 연기하는 입장으로는 순수했던 소녀의 모습에 더 집중해서 연기하려고 했다.

최주은 영화에서 소녀 정임과 노년의 정임이 다른 인물로 보였고, 그 점이 좋았다. 노년의 정임은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이니까 어린 정임과 분명 다르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둘이 달라 보이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우정에 대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소녀 정임과 노년의 정임을 연결하는 큰 고리가 된다고 느꼈다.

- 관심 있게 본 영화나 드라마 중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최주은 뤼카스 돈트 감독의 <클로즈>가 생각난다. 그 작품 역시 상실과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인데, 레오가 레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무척 좋았다. 사춘기 소년들의 고민을 아름답게 풀어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박서경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꼽고 싶다. 우리 영화와 비슷한 이야기라고 느끼기도 했다. 사람마다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있는 부러움 같은 감정이잘 표현돼 있다고 생각한다. 외면되곤 하는 감정을 감추지 않고 보여줘서 오히려 우리 모두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최주은 배우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진실되고 싶다. 연기하면서 누군가와 호흡해야 할 때 진솔한 마음 그대로 임하고 싶다. 그래야 스스로의 연기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진짜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서경 본능적으로 안정된 것에 끌리기 마련이지만, 배우로서 넓은 세계에 용기를 내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도 담대하게 도전하고 싶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사진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