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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합니다 - 영화계 종사자들이 말하는 지금 필요한 정책들

한국 영화산업이 직면한 과제는 단순한 작품 수 확대를 넘어 제작 환경과 정책 체계의 현실화를 요구한다. 단년도 집행 중심의 제작 지원, OTT 산업 성장에 따른 재원 확보 문제, 현장 스태프 전문성과 안전관리 부족은 모두 창작과 산업 지속 가능성을 제약하는 요소다. 해결책을 모색하는 영화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한데 모아 전한다.

1. 다년(多年) 제작 트랙 지원제 도입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제작 지원은 단년도 공모, 집행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선정되더라도 1년 내 제작과 예산 집행을 완료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영화는 1~3년의 기획, 개발, 투자 유치 과정을 거치는 산업이다. 지원의 집행 기간과 실제 제작 주기가 어긋나면서 장기적 기획 설계가 어렵고, 산업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한 차례의 탈락이 곧 프로젝트 중단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단기간 내 완성을 전제로 한 집행 구조는 결과적으로 제작 일정을 압축시키고, 안정적인 투자 협상과 창작 과정의 축적을 가로막는다. 백재호 영화인연대 공동대표는 “모든 보조금 사업을 당해 연도에 끝내야 하는 구조가 문화예술에도 일괄 적용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정 압박 속에서는 “해외 펀딩이나 민간 투자 유치를 병행하기 어렵”고, 지원금 일정에 맞추기 위한 “무리한 캐스팅과 집행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결과 완성도 저하뿐 아니라 예산 불용 문제까지 반복되며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제작자 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집행 구조와 산업 특성간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한계다. 이에 일정 요건을 충족한 사업에 한해서 2~3년 범위 내 단계별 집행을 허용하는 ‘다년 제작 트랙’을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예산을 제작 일정에 맞춰 연차별로 나눠 집행하고, 중간 평가를 통해 지속 여부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기획, 개발 단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민간 투자와의 협상력도 높일 수 있다. 단년도 집행 중심의 구조를 영화산업의 현실적 시간표에 맞게 재설계하는 것이 이 제안의 핵심이다. 제작사 단위 심사나 신진 트랙 설계 등 세부 운영 방식은 그다음에 논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는 지원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영화 제작의 현실에 맞게 시간 구조를 조정함으로써 정책의 효율성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확보하자는 제안이다.

2. 영진위가 OTT의 기여금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보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극장 영화’와 ‘OTT 영화’, ‘OTT 시리즈’를 구분 없이 오가는 시대다. 한국영화계의 역량으로 OTT용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실정이라면, OTT 사업체가 극장 영화발전기금처럼 업계를 위한 일종의 기여금을 내야 하지 않을까. 여러 방향에서 자금이 모인다면 영진위가 한국영화계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영화인들은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발맞춰 영진위가 영화인들과 OTT 산업 사이의 교두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OTT에 기여금을 징수하는 정책은 마냥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스의 영진위’라고 볼 수 있는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The French National Centre of Cinema, CNC)는 2018년부터 영화관 입장세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사업자에 비디오물 배포 세금(The tax on the physical and digital distribution of audiovisual content, TSV)을 부과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OTT가 급성장하자 2020년 CNC는 TSV 세율을 5.15%로까지 올렸다. 기존 2%의 2배가 넘는 세율을 매긴 것이다. CNC가 2018년부터 글로벌 스트리밍 기업에 TSV를 징수할 수 있었던 것과 영진위의 행보가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영화인들은 “준비가 된 곳과 준비가 안 된 곳의 차이”라고 말한다.

영진위 역할이 지금보다 커지려면 거버넌스 변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현행 법률상 OTT는 통신망을 통해 콘텐츠를 배포하고 있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할에 속하고, 영진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있다. 2025년 8월,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남동구을)이 전통적인 영화산업과 OTT 업계를 아우르는 ‘미디어콘텐츠부’를 신설하자는 의제를 한 차례 띄운 바 있으나 현재는 가라앉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영진위가 공적 기관으로서 지금보다 보다 큰 역할을 하려면 뒷짐 지지 않고 연구하고 준비하여 앞으로의 밑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을까.

3. 영화 스태프 전문성 강화, 현장 안전관리 지원

현재의 지원 구조는 감독, 작가 등 크레딧 앞에 위치한 창작 인력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조명, 미술, 분장 등 여타 현장 인력에 대한 투자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핵심 인력임에도 체계적인 교육 경로나 커리어 개발 기회가 부족하다. 영국영화협회(BFI)는 2022년 기술 인력 보고서를 통해 “제작 부문이 전체 제작 예산의 최소 1%를 기존 및 미래 인력 양성에 투자해야 산업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BFI는 인력 수급 현황 파악, 직종별 직무 체계 정비, 진로 상담과 경력 안내, 현장 인력 다양성 모니터링 등 구체적 실행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업계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스태프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정례화하고, 제작 지원과 연계해 교육 참여 이력을 평가 요소로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영화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스태프 전문성뿐 아니라 안전한 노동환경에도 달려 있다. 영진위는 2020년 ‘영화 촬영현장 안전관리 지원사업’을 통해 현장 응급구조 인력과 구급차를 파견한 바 있다. 장기적으로 이어지진 못했으나, 안전을 비용이 아닌 필수 인프라로 인식하려 한 시도였다. 향후 정책 방향은 안전 지원을 제작 지원 선정 요건에 포함하는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지원작에는 안전관리 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위험 장면 촬영 시 안전 인력 배치 비용을 제작비 항목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응급구조 인력 파견과 안전장비 사용 내역을 사후 보고서로 제출하도록 해 실효성을 담보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스태프의 전문성과 안전을 중심에 두는 재원과 제도가 마련될 때, 영화산업은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화인들이 기존 제도에 대한 보완을 요청합니다

1. 제작 지원 제도에서의 면접 강화

“각종 지원 제도의 면접에서 변별력을 높였으면 좋겠다. 영화과 입시는 아니잖나. 돈을 최소한 천만원대에서 억대로 투자를 하는 거라면 더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해당 작품을 만들 인간 제작자, PD, 감독의 면면도 길게 평가하면 좋지 않을까. 현재와 같이 20분 내외로 얘기해서 판단하기보다 더 심층적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워크숍처럼 진행할 수도 있겠다.”(영화감독 A)

2. 다큐멘터리영화의 특수성 고려

“국제영화제 및 프로젝트 행사 참가활동 지원 사업에 참여하면 항공권을 지원받을 수 있다. 감독, PD, 배우 등 영화와 관련한 주요 인사들이 항공료를 지원받는다. 그러나 편집감독은 지원받을 수 없다. 다큐멘터리영화의 경우 편집감독이 메인 스태프다. 작품을 완성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건 하나의 예시이고 영진위 사업 전반에서 극영화 산업의 규모가 크다보니 극영화 중심으로 제도가 굴러가는 듯하다. 이러한 부분이 개선되었으면 한다.”(다큐멘터리 감독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