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국내 영화 관련 정책의 중심부다. 그만큼 영화산업 종사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나, 유동적인 정책 방향성과 사업 규정에 혼란을 느끼는 영화인들도 적지 않다. 이에 <씨네21>은 영화인들에게 직접 청취한 몇 가지 질문을 모아 영진위에 구체적인 답변을 청해봤다. 이를 2026년 영진위의 전반적인 운영 지향성에 관한 너른 설명부터 사업 세부에 대한 구체적 내용까지 총 9개의 질문과 답변으로 정리했다.
<영진위 운영 전반에 관해>
Q1. 한국영화계의 위기에 따른 영진위의 방향성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영진위는 ‘코로나19 극복, 영화제작인력 지원사업’을 신설하는 등 영화산업의 현황에 맞는 사업을 진행했다. 한국영화계의 위기라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정책 및 사업에 어떠한 변화를 도모했나.
팬데믹 이후 민간의 기획개발 자금이 크게 줄어 다양성과 참신성을 갖춘 작품의 기획이 어려워졌다. 이에 관객의 영화 관람 환경을 회복하고 산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우선 전체적인 지원 사업 예산을 확대한 것이 중점이다. 먼저 창의적 기획 기반을 복원하기 위해 기획개발지원 예산을 전년 대비 약 33억원을 증액해 2026년에는 총 80억원 규모로 강화했다. 차기작 기획개발지원 사업을 재개하고, 복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라인업 개발지원 사업을 신설해 중장기적 기획 역량과 자체 IP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다.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 지원 사업을 전년 대비 두배 수준인 200억원까지 확대하고,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도 증액했다. 완성된 영화가 관객과 만나야 산업이 회복된다는 점에서 유통지원과 국내외 영화제 지원도 함께 확대했다. 기획개발–제작–유통 전 단계를 동시에 강화하는 구조로 예산을 증액해 전체 지원 사업 규모가 전년 대비 320억원 늘어난 총 882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또한 52억원 규모의 신규 재원을 통해 AI 기반 영화 제작 지원과 영화 국제공동제작 시범사업을 신설해 기술 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제작 기회를 확대했다. 영화 국제공동제작 시범사업은 국내 제작업계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한국영화 제작자본 조달 방식 다각화를 위해 신설됐다. 과거에는 관련 수요가 제한적이었으나, 현재 내수시장 축소에 따라 높아진 국내 제작업계의 해외 협력 니즈를 반영한 사업이다. 또한 2024년부터 시작된 KO-PICK 쇼케이스 사업을 통해 해외 국제영화제 및 필름마켓 등과 연계해 국내 프로듀서의 글로벌 제작 네트워크 확충과 한국적 스토리를 가진 글로벌 프로젝트의 기획력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Q2. 중예산 영화 지원에 집중하는 이유.
최근 몇년 동안 영진위는 중예산 영화 지원 예산 증액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한국영화계에 중예산 상업영화의 활성화가 우선이라고 결정한 배경은 무엇이며, 사업 현황 및 성과는 어떻게 감지되고 있나.
그간 영진위의 제작 지원 사업은 다양성 확보와 신진 창작자 육성을 위해 10억원 미만의 독립예술영화 제작비를 지원하는 방식에 중점을 둬왔다. 현재 한국 영화산업은 2019년 대비 관객수가 절반 수준으로 위축된 상황이다. 연간 40~50편에 달하던 순제작비 30억원 이상 상업영화의 개봉 편수는 30편대로 줄었고, 신규 제작 착수 편수 역시 감소하면서 소수의 대형 흥행작만으로는 시장 전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신인 인력도 성장할 기회를 잃고 산업생태계 자체가 약화할 수 있다. 영화 산업계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수차례 회의를 진행한 끝에, 한정된 정부자금이 민간 투자를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하기에 중예산 영화 구간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 사업을 신설해 실질적 투자·제작이 가능하도록 편당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독립예술영화를 통한 창작 다양성과 신인 발굴 지원을 병행하는 이원화 전략을 운영하도록 결정했다.
2025년 처음 시행된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 지원 사업’을 통해 선정된 9편 중 6편이 투자 유치에 성공해 제작되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이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에 초청됐고, 정주리 감독의 <도라>는 후반작업 중이다. 장훈 감독의 사극 <몽유도원도>와 젊은 배우들이 주축이 된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은 현재 제작이 진행되고 있으며, 신인감독의 작품인 <파문>및 <감옥의 맛>역시 촬영 준비 단계에 있다.
Q3. 홀드백 등 제도적 영화 정책에 관한 입장과 현황.
최근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홀드백을 6개월로 법제화해야 한다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도 구체적인 기한을 대통령령으로 정하자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영진위는 홀드백 등 제도적인 영화 정책의 도입·보완 문제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특정 입법 방향을 사전에 단정하기보다는 법제화와 자율협약을 모두 정책 옵션으로 두고, 각 방식의 효과와 실행 가능성을 비교·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극장·제작·배급·IPTV·OTT·방송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가칭 ‘공동실천회의’)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연구 자료와 추가 분석을 바탕으로 △제작 규모별 차등 적용 △예외 대상 설정 △분쟁 조정 체계 △손실 보완 장치 △불법 유통 대응 △평가지표 마련 등 구체적 설계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해당 사안은 업계의 자율적 논의와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영진위가 정책 연구·통계 분석·의견 수렴 등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산업생태계 전반의 균형을 고려하며,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
Q4. 영진위 사업 및 거버넌스의 공정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영진위 내 다양한 사업의 심사위원과 지원자간 이해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떤 방비책을 세우고 있나. 지원자와 심사위원, 영진위 운영에 참여하는 9인 위원회 위원 등 이해관계자들의 활동을 어떻게 조정하려 하는지.
영진위는 사업 진행이 특정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도록 연출, 제작, 시나리오, 학계 등 영화계 전 분야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엄격한 자격 기준을 거쳐 심사위원 풀을 구성·관리하고 있다. 각 지원 사업의 성격에 따라 적합한 전문 분야의 인력을 선별한 후, 해당 범위 내에서 무작위 추출 방식을 통해 심사위원을 구성함으로써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심사 후에는 위원 명단과 총평을 공개해 심사 과정의 투명성을 높였고, 외부 감시도 가능하다.
이해충돌 문제는 영진위 거버넌스의 신뢰도와 직결된 엄중한 사안이다. 과거의 사례들을 거울 삼아 현재는 구조적 안전장치를 체계화하고 있다. 우선 9인 위원회와 소위원회 위원들이 안건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자발적 회피’를 의무화했다. 또한 사무국이 안건별 이해관계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위원들이 이를 다시 확인하는 이중 검증 절차를 통해 판단의 오류나 누락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고자 한다. 단순히 개인의 윤리에만 기대지 않고, 위원회 운영 규정과 지침을 더 촘촘하게 보완해 공정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진위 제작 지원 사업에 관한 세부 질문>
Q5. 독립예술영화 제작 지원 사업을 하나로 합친 이유
현행 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사업엔 사전제작, 제작, 후반제작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일부 독립영화인들은 후반제작 지원 사업이 사라진 점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한편 제작 지원 사업엔 촬영 진행률 30%를 넘지 않는 작품만 공모할 수 있다. 이에 최초 제작 단계부터 영진위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다른 지원 사업의 공모 기회를 잃을 어려움이 더 커졌다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부작용들이 예상되는 바에 사전제작, 제작, 후반제작 지원 사업을 통폐합한 배경과 기대 효과는 무엇인가.
별도의 후반제작 지원 사업을 유지한다면 중복 지원의 우려가 있고, 과거와 달리 후반작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던 기술적 인프라도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개별 공정을 나누어 지원하기보다 제작 지원 예산과 선정 편수를 확대해 한번의 지원으로 작품이 완성 단계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다만 독립예술영화 중 다큐멘터리 분야는 제작 기간과 후반작업 기간이 극영화보다 장기화되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2025년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발전전략 전문가 TF 논의를 거쳐, 올해부터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은 제작 단계와 후반단계를 분리해 제작 지원 최대 1억원, 후반제작지원 최대 2천만원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편했다. 촬영 진행률 30% 기준은 제한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자격 확대 조치다. 과거에는 촬영이 개시된 작품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으나, 작품별 제작 일정이 공모 일정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해 일정 부분 촬영이 진행된 작품도 신청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다.
Q6. 자주 바뀌고, 갑자기 진행되는 사업 일정이 곤란한데···.
영화인들 사이에선 영진위 사업 일정과 세부 내용의 변경이 잦아 불편함을 느낀다는 의견이 많다. 예를 들어 지난 정부 들어서는 상하반기에 걸쳐 지원하던 몇개 사업이 한 차례로 줄었고, 2025~26년 사업은 전년도 가을에 갑작스럽게 공고가 발표돼 영화인들이 적시에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정부 기조에 따라 영진위 사업이 매년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에 어떻게 대응하려 하는지, 또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우는지.
사업 일정의 변화로 인해 현장에서 겪은 불편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위원회는 영화제작 현실을 고려해 지원 기간을 최대 24개월까지 운영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재정 집행 기준의 변화에 따라 단년도 예산 집행이 강화되면서 제작 기간이 긴 독립영화의 특성상 연내 집행률이 낮게 나타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사업 운영의 안정성을 고려해 2024년에 부득이하게 지원 횟수를 1회로 조정한 바 있다. 그러나 변수가 많은 영화 현장에서 연내 집행을 완료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목소리를 청취하게 됐다. 이를 적극 수용해 2025년부터 다시 상하반기 2회 개최로 복원하되, 창작자들이 실질적인 사업 수행 기간을 한달이라도 더 확보할 수 있도록 사업 공고 시점을 전년도 10월로 앞당기는 조기 시행을 결정했다. 지원 사업의 세부 내용이 변경된 것은 급변하는 영화계 현실을 사업에 즉각 반영해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 취지였다. 앞으로는 영화계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사업의 큰 틀을 가급적 장기간 유지하며,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도 신중하게 임해 예측 가능한 지원 환경을 만드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다.
Q7. 지자체, 한국콘텐츠진흥원과의 중복 사업 근거에 관해.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은 작품은 영진위 사업에 지원할 수 있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금을 받은 작품은 지원을 제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금과 영진위의 영화발전기금은 모두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국고 재원이다. 정부의 예산 집행 지침상 동일한 프로젝트가 같은 국고 재원을 이중으로 받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반면 지자체 지원금은 국고가 아닌 지자체의 자체 재원(지방세 등)으로 운영되는 별개의 예산이다. 보조금 관리 지침상 국고와 지방비의 중복 수혜도 제한될 여지가 있지만 이를 너무 경직되게 적용하면 제작비 확보가 절실한 독립·예술영화나 지역 영화제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현장의 우려가 컸다. 이에 영진위는 유관 부처와 협의해 해결책을 마련했다. 사업 계획과 정산 과정에서 국고와 지방비를 명확히 구분하고 집행 결과를 투명하게 증빙하도록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대신,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지자체 지원금과의 병행은 허용하기로 협의했다. 공공 재원의 투명성을 지키면서도 현장의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한 결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Q8. 영진위가 생각하는 AI 영화란.
이번에 신설된 ‘AI 기반 영화 제작 지원’은 기존 제작 지원 사업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는지 궁금하다. 아울러 영진위에서 정의하는 AI 영화란 무엇인지.
기존 제작 지원 사업의 경우 영진위 제작 지원 사업간 중복 수행이 불가능했지만 AI 기반 영화제작 지원과 여타 영진위 제작 지원에 같은 제작사가 다른 작품으로 동시 선정된다면 동시 수행이 가능하도록 하여, 제작사가 AI 기술을 활용해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심사의 경우 영화제작 과정에서의 AI 기술 활용 계획을 평가하며, 심사 평가 항목에 AI 기술 활용도 및 구현 가능성, AI 기술 전문성 보유 등 AI 관련 항목의 배점을 비교적 높게 책정해 평가한다. 또한 보조금 사용 용도에 AI 사용료를 명시해 제작자가 AI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AI 영화는 영화제작 과정 전반에 AI 기술을 유의미하게 활용한 영화로 볼 수 있겠다. AI 기술의 도입으로 영화제작의 프로덕션 방식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AI 기술을 산술적으로 몇 퍼센트 사용했는지를 현실적으로 산정하기는 어렵다. 이에 창작자는 프리·메인·포스트 프로덕션 전반에 AI를 유의미하게 활용하고, 관객은 AI 영화를 관람할 때 AI 기술을 통한 새로움을 시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영화가 현재 영진위가 지향하는 AI 영화라고 보고 있다. 다만 AI 기술의 변화 속도가 무척 빠른 만큼 AI 영화의 정의는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Q9. 올해 부쩍 늘어난 지원 편수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영화산업의 활기가 떨어지면서 독립영화와 중저예산급 상업영화를 불문하고 영화제작을 위해선 영진위 지원금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들려온다. 이에 최근 마감한 제작 지원 사업엔 예년 이상의 편수가 지원작으로 몰렸다. 일각에서는 영진위가 물리적으로 모든 지원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고 심사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인력을 어떻게 배치했고, 영진위 내에서 사업 지원 증가 추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지원 편수가 늘어나는 추이에 맞춰 사업별 심사위원 구성 시, 지원 편수에 따라 심사위원의 전체 숫자를 증원하고 있다. 이는 심사위원 한 사람이 검토해야 하는 서류의 양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하여, 모든 프로젝트를 세밀하고 공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앞으로도 지원 사업의 규모와 접수 현황에 맞춰 심사 인력을 최적화하고 관리 체계를 고도화함으로써 영화인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심사 환경을 유지하는 데에 만전을 기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