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를 구독하듯 영화관을 구독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2026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업무 계획 보고에 나선 최휘영 장관은 구독형 영화관람권, 일명 ‘영화패스’로 극장의 숨통을 틔우겠다고 밝혔다. “영화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어 도출한 아이디어에 업계인 대부분이 동의하는 분위기”라고도 전했다. 2월12일, 설 연휴를 앞두고 마련한 취임 6개월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도 장관은 영화패스를 향한 의지를 다졌다. “각 당사자의 이해관계에 차이가 있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어렵겠지만, 모두가 위기 상황을 절감하고 있다. 관객의 발걸음이 회복돼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주고받고 있다.” 월정액으로 표준화된 구독 모델에 국한하지 않고, 제작사·배급사·극장 3자가 협의해 잠재 관객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형태로 패스를 설계하겠다는 다짐도 이어졌다.
관객이 영화패스를 손에 쥘 수 있는 건 언제쯤일까. 문체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극장사들과 영화패스 시행 방안을 검토 중이며, 2027년 예산안에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한다. 따라서 연내 영화패스 실시 가능성은 매우 낮다. 빨라도 2027년에야 구독권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롤 모델은 프랑스
하나의 구독권으로 기간 내 개봉작을 자유롭게 감상하게 한다는 발상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2011년 미국에서 출시된 ‘무비패스’(MoviePass)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2020년 대한극장이 ‘클럽DH’라는 이름으로 연간 회원권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무비패스는 한 차례 파산을 겪었고, 대한극장은 문을 닫았음에도 문체부가 ‘영화관 구독’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려는 배경에는 프랑스가 있다. 2000년대 초부터 구독형 영화패스를 도입해온 프랑스는 지금까지도 파테(PATHÉ), UGC 등 멀티플렉스 체인을 중심으로 패스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들이 택한 건 음악 스트리밍이나 OTT 서비스를 통해 익숙해진 방식이기도 한 월정액 구독 모델이다. 구독료는 달마다 20유로 안팎. 일반 상영관의 티켓값이 10~20유로 사이에 형성돼 있으니, 구독료를 낸 관객은 한달에 두편만 봐도 이득이다. 추가 금액에 따라 3D관, 아이맥스관, 돌비관 등 특수관까지 무제한으로 드나들 수 있는 구독 유형, 자녀 등 가족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유형도 있다.
노철환 인하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는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 영화산업 지속 성장을 위한 프랑스 영화관 구독제 프로그램 연구’(2024)를 발표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패스 활용 관객은 점진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여러 형태로 영화관이 정상 운영되지 못한 상태에서 무제한 카드를 이용한 관객 비중이 오히려 증가한 현상은 무제한 카드가 영화 관객의 하한선을 지탱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증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뒤이어 노철환 교수는 프랑스의 영화패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으로 미국 무비패스처럼 카드 운용사가 아닌 극장 체인이 직접 패스를 운영한 점, 여기에 독립·예술영화관들까지 합류시킨 점 등을 꼽았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가 발간한 보고서에도 패스 도입 후 독립·예술영화 시장이 특히 성장했으며, 홍보비 집행이 어려운 중소 규모 작품들이 상영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무제한 카드 이용자의 91% 이상이 구독을 시작한 후 이전엔 보지 않았던 영화를 찾아내는 식으로 관람 범위가 넓어졌다”는 설문 결과도 실렸다.
관건은 객단가
문체부의 영화패스 시행 소식에 대한 국내 영화계 관계자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한쪽에서는 기대와 환영을 표하는 한편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측도 있다. 2022년 3대 멀티플렉스(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사업자가 회원사로 참여해 창립한 비영리단체 한국영화관산업협회는 우선 문체부의 대책을 반겼다. 신한식 한국영화관산업협회 본부장은 “가장 중요한 건 지원 규모”라며 “연간 누적 관객수가 1억5천만명 정도는 돼야 산업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패스가 그 10%인 1500만명은 더 극장을 방문하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바람직할 것 같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이 집계한 2025년 총 누적 관객수는 1억608만여명이다.
2026년 2월 현재 문체부와 접촉하며 구독 모델을 의논하는 주체도 멀티플렉스 3사다. 그중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3사 위주로 논의에 참석했으나 극장, 배급사, 제작자가 윈윈하는 동시에 고객 입장도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구독료가 매력적이겠지만, 제작사와 배급사에는 정당한 대가를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홀드백 이슈에도 통용된다. 적정한 규칙 안에서 고객이 메리트를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쓰겠다.”
그가 거론한 ‘규칙’에 포함되는 주요 쟁점이 바로 객단가다. 만약 월정액권이 2만4천원이라면, 관객이 한달에 네편의 영화를 볼 때는 편당 6천원을 지불하는 셈이지만, 두편의 영화를 볼 때는 편당 1만2천원을 지불하는 셈이 된다. 사용 빈도에 객단가가 좌우된다. 지난해 쇼박스, NEW 등 7개 배급사가 결성한 배급사연대의 이화배 대표도 이 점을 지적했다. “소비자 가격과 정부 보조금을 어떻게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관건이다. 소비자 가격이 너무 높아지면 패스의 효과가 적을 것이다. 가격이 과하게 낮아져도 안된다. 배급사 입장에서는 관객이 영화를 적게 볼수록 영화당 지급 단가가 높아지니 패스를 덜 사용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렇다면 정책 방향과 어긋나지 않나.” 정산도 문제다. 이화배 대표는 “패스가 도입되면 기존에도 ‘깜깜이 정산서’를 전달해온 극장의 부금 정산이 더 복잡해질 텐데, 배급사들이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정산서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적정한 객단가와 투명한 정산이 보장된다면 영화패스가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하영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운영위원도 동의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상영작의 다양성 부족”을 건드렸다. “제작이 활성화되고 개봉작 편수가 늘어야 관객도 패스를 써서 여러 작품을 볼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니 관객도 극장에서 실패 경험을 더 자주 하는 것 같다. 관객이 패스를 쓰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를, 한국영화 제작을 위한 투자도 더 활발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