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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오리지널을 지키면서 개성을 찾아야 한다, 일본 실사화 영화 중간 점검

2025년 한해 동안 일본 박스오피스에서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실사화 영화를 매달 두편 이상 찾아볼 수 있었다. 국내에도 팬층이 두터운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부터 국민 남자 아이돌과 평범한 여고생의 로맨스를 그린 <너가 톡베츠>, 1999년에 이어 다시 한번 스크린으로 돌아온 <샐러리맨 킨타로>, 현대 시부야에 환생한 제갈공명이 주인공인 음악영화 <파티피플 공명 THE MOVIE>까지. 원작의 소재도, 장르도, 타깃 관객도 달라 일본에서 실사화가 얼마나 넓고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흥행 성적표는 냉정하다. 일본영화제작자연맹이 지난 1월 발표한 2025년 자국영화 흥행 순위에서 10위권 안에 든 실사화 영화는 2024년 12월 개봉한 <일하는 세포>한편뿐이었다. 20위로 넓혀도 신카이 마코토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옮긴 <초속 5센티미터>가 19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 전부였다.

실사화는 왜 계속될까

<일하는 세포>

매해 흥행 성적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실사화 제작은 멈추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일본 콘텐츠 산업 특유의 구조가 있다. 인기 IP는 만화에서 애니메이션, 게임, 실사영화, 드라마, 뮤지컬로 이어지는 ‘미디어 믹스’ 사이클을 따라 소비된다. 실사화는 그 사이클의 한 단계로서, 흥행 여부와 별개로 IP의 생명을 연장하고 기존 팬덤을 유지하며, 미처 닿지 못한 관객층을 새로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미 팬덤이 검증된 원작은 완전한 오리지널 작품보다 투자 리스크가 낮다는 계산도 작용한다. 예컨대 <트릴리온 게임>은 IT 대기업 인수를 도모하는 동창들의 이야기를 담은 원작 만화가 2023년에 드라마로 제작됐고, 이를 다시 극장판으로 확장했다. 여기에 넷플릭스 BL 영화 <10DANCE>처럼 글로벌 OTT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미디어 믹스의 사이클을 해외까지 더 크게 굴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오리지널을 지키면서 개성을 찾아야 한다

<킹덤3: 운명의 불꽃>

그렇다면 흥행에 성공한 실사화는 무엇이 달랐을까. 최근 5년간 가장 일관된 성과를 낸 작품으로는 <킹덤>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무대로 한 장대한 역사물로, 2019년 1편부터 2024년 4편까지 전편이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했다. 2000년 이후 시리즈화된 일본 실사영화 중 1편부터 3편까지 모두 50억엔을 넘긴 최초의 사례이며, 4편 <킹덤: 대장군의 귀환>은 시리즈 최고인 80억엔을 돌파했다. 주요한 성공 요인으로 원작자 하라 야스히사가 직접 참여한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년에 걸친 각본 회의에 참가해 방대한 원작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핵심 정서를 지켰다. 중국 현지 로케이션으로 전투 장면에 박력을 더하고, 치밀한 시대고증을 바탕으로 한 의상과 미술이 세계관의 설득력을 높였다.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닌 원작이 가진 힘을 영화의 문법으로 강화하는 데 집중한 결과다.

2025년 자국영화 흥행 순위 5위에 오른 <일하는 세포>도 주목할 만하다. 인간의 체내를 배경으로, 병균과 싸우는 세포들의 활약을 그린 상상력 넘치는 작품이다. 적혈구 역의 나가노 메이는 빨간 모자에 빨간 재킷을, 백혈구 역의 사토 다케루는 올 화이트 패션에 얼굴까지 하얗게 칠했다. 진지한 눈으로 보면 유치할 수 있는 설정을 피하는 대신 정면 돌파했다. ‘폐’를 유라쿠초의 도쿄 국제 포럼에서 찍는 등 체내 각 부위를 일본 전역 21개 도시, 31개 장소에서 로케이션 촬영하고, 엑스트라 7500명을 동원해 세포들의 분투를 다채로운 규모로 구현한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세포들의 일하는 모습에 집중해 원작보다 의도에 더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봉 후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대만, 필리핀, 홍콩 등 해외에서도 흥행했다. <초속 5센티미터>도 원작의 정서를 지키되 실사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을 모색했다. 원작의 독백을 과감히 줄이고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에 집중하며 ‘살아 있음’의 감각을 전면에 내세웠다. 가로등과 편의점 간판, 기차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흐릿한 빛들을 촬영의 언어로 삼아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끌어냈다.

현명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진격의 거인 파트1>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실사화 발표 소식이 나올 때마다 대중의 우려가 앞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영화는 방송사, 광고사, 매니지먼트가 참여하는 제작위원회 구조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더 넓은 관객층을 겨냥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중심이 흔들리는 패턴이 반복되는데, 실사화 역시 캐스팅과 각색 과정에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15년 개봉한 <진격의 거인>실사판 시리즈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지 선택에 실패한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실사판에는 핵심 캐릭터 리바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리바이는 단순한 인기 캐릭터가 아니라 작품의 윤리관과 긴장 구조를 지탱하는 축이었다. 제작진은 리바이 대신 ‘식시마’라는 오리지널 캐릭터를 투입했다. 리바이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지녔지만 성격과 역할은 달랐고, 관객은 그를 영원한 대역으로 받아들이며 반감을 쌓았다.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실사판은 원작과는 다른 세계관을 구축했으나 인간 대 거인의 서바이벌로 시작했다가 국가간 전쟁과 민족 문제로 급작스레 전환하며 서사의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비운 자리를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2026년, 실사화의 향방

<룩백> 티저 포스터.

실사화 도전은 올해도 계속된다. 시리즈 최고 기록 경신을 노리는 <킹덤> 5편, <은혼> 실사화를 성공으로 이끈 후쿠다 유이치 감독의 연출작이자 킬러 액션 코미디 <사카모토 데이즈>, 월드컵 시기에 맞춰 여름 개봉을 예고한 스포츠영화 <블루록>,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 각본, 편집을 총괄하는 <룩백>까지. 올해의 소재와 규모 역시 다채롭다. 안정적인 실사화를 이뤄냈다고 평가받는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원칙은 단순하다. <블루 피리어드>의 하기와라 겐타로 감독은 “원작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영화만의 것을 소중히 하는 미묘한 감정의 튜닝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고교생 마작 부원들의 청춘을 그린 <사키>의 고누마 유이치 감독 역시 실사화의 비결로 “우선 핵심 드라마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한다”고 밝혔다. “외로운 인물들이 마작부로 모여 연결되어가는 이야기의 구조, 그것을 지키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그의 말은 실사화의 본질을 요약한다. 결국 성패를 가르는 것은 이야기의 중심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붙들고 있느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