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센티미터> 개봉을 맞아 내한한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을 보자마자 시선을 고정했다. 그가 주인공 타카키(마쓰무라 호쿠토)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눈썹을 덮는 앞머리와 약간 구부정한 자세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중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그러했다. 그는 종종 타카키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나를 투영해 만든 영화이기에 주인공 역시 나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신카이 마코토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초속 5센티미터>는 원작의 서정을 따라가면서도 오쿠야마 요시유키의 결이 선명하게 배어든 작품이다. 전작 <엣 더 벤치>에서 보여주었듯 말과 말 사이, 몸과 몸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포착하고, 사라진 것들을 움켜쥔다. 이번 영화 속에 그가 또 어떤 자신다움을 숨겨두었을지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 날씨와 계절에 예민한 편인가. 사진가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럴 것 같았다.
계절을 의식하는 편이다. 특히 봄. 일주일 남짓 만개했다가 금세 저버리는 벚꽃을 보며 한순간 존재하는 것의 덧없음을 실감한다. 벚꽃에 정서를 깊이 투영하는 건 일본인 특유의 문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변하는 것에 슬퍼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일본 역시 사계절이 꽤 뚜렷해 몇달씩만 유효한 계절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최근에 여름의 나라 방콕에 다녀온 터라 계절감에 더 예민해졌는지도 모르겠다.
- 원작 프로듀서가 <엣 더 벤치>를 보고 실사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들었다. 어느 시점에 결심이 섰나.
제안을 받고 바로 답하지는 못했다. 먼저 원작을 다시 읽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였다. 스즈키 아야코 작가가 쓴 시나리오 속 타카키는 30대에 진입한 그 나이대 특유의 초조함을 안고 있는 남자였다. 나 역시 또래로서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크게 느끼던 시기라 자연스레 동질감을 느꼈다. 지금 시기의 감정을 이 캐릭터와 작품에 담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자 하고 싶다는 회신을 보낼 수 있었다.
- 퇴사한 타카키는 과학관 프로그래머로 취직한다. 인연이라는 테마를 더 넓은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생각하게 하는 절묘한 직업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야기는 미시적인 사건과 거시적인 사건이 병렬로 이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일이 당사자에게는 우주만큼 거대한 일일 수 있다. 그 지점에 깊이 공감했기에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조금 더 확장해보고 싶었다.
- 고교 시절 타카키를 짝사랑하는 카나에(모리 나나)의 언니인 미도리(미야자키 아오이)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원작에서는 지나가는 인물이었으나 이번에는 타카키의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등장해 성인이 된 뒤 타카키와 재회한다.
작가님과 1년간 시나리오를 다듬으면서 가장 많이 변화한 인물이 미도리다. 그는 고향 집에서 발견한 옛날 내 물건 같은 역할이다. 마주하는 순간, 잊고 지냈던 예전의 나를 불러내고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한다. 타카키는 그런 사람과 다시 대화하며 자신을 재인식한다. 관객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길 바랐다.
- 미도리와 이자카야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타카키는 “세계와 연결되는 기분”에 대해 말한다. 그런 기분을 느낀 적 있나. 예감이나 운명 같은 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도 궁금하다.
그 모든 걸 믿는다.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도 세상에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이건 운명이야’라고 느끼는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곤 한다. 하지만 한번쯤 그 감각을 믿어보는 태도를 가져본다면 인생은 훨씬 풍요롭고 흥미로워질 것이다. 경험해봐서 안다. 이런 바람을 담아 타카키의 첫 직업을 시스템 엔지니어로 설정했다. 별을 올려다보며 세계의 신비를 궁금해하던 아이가 명확히 구분되는 코드의 세계를 편안해하는 어른이 됐다는 설정을 통해 그가 운명도 기적도 체념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도 다시금 놀라운 순간이 찾아온다.
- 보면서 새삼 배우의 힘이 강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독백이 빠진 자리를 배우의 얼굴이 충분히 채운다. 한 프레임 안에 인물들을 롱테이크로 담아내는 동안 배우들의 미세한 변화가 장면을 완성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배우야말로 실사만이 가능한 영역이지 않을까. 애니메이션은 그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철저히 의식의 집합이다. 물론 실사영화도 의식적인 행위의 연속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영화를 만드는 것도, 배우가 카메라에 찍히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인간은 말하다가 주저하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표정과 움직임을 바꾼다. 나는 그런 무의식의 순간을 공들여 포착하고 싶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준비한 것과 다른 무언가가 나오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연기를 이어달라고 부탁했다. 배우와 모든 스태프가 세계관에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각본에 없는 세세한 설정을 정리한 텍스트북을 제작해 공유하기도 했다. 텍스트북 말고도 여러 자료가 있는데 (책을 건네며) 이건 무드 보드다.
- (책장을 훑으며) 여기 한국영화 <봄날은 간다>도 있다.
맞다. 이런 분위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미지를 여기저기서 모아 만든 게 이 무드 보드다.
- 타카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주요하게 쓰인 구름과 비, 눈 등의 자연 이미지가 그의 혼란한 감정 상태를 대신하는 듯했다.
인물의 감정과 풍경의 관계를 의식하며 편집했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우리는 하루 중 적지 않은 시간을 풍경을 바라보는 데 쓴다. 화창한 하늘이나 비 오는 창밖에 기쁨과 슬픔을 실어 보내기도 하고. 관객이 풍경을 통해 인물의 마음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랐다.
- 어디선가 이 영화를 소개한다면 줄곧 뒤를 돌아보며 걸어온 남자가 비로소 앞을 보고 걷기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한마디도 들어볼 수 있을까.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과거에 만난 소중한 것들은 추억이 아니라 지금의 일상이다.” 과거가 자신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소중히 안은 채 미래로 가는 이야기다. 관객 역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리하지 않고 인생의 모든 시간이 이어져 있음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손을 등에 얹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영화로 남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