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놀이, 작업, 일…영화의 시간들 - <극장의 시간들>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의 대담

<극장의 시간들> 속 세편의 단편영화는 꽤 다르다. 영화와 극장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지니고 있긴 하나 그외 상세한 소재와 화면의 톤, 내러티브는 크게 겹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극장의 시간들>이 한편의 앤솔러지 영화로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세명의 감독에게 있는 듯하다.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은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다. 이제 누가 봐도 이종필의 영화는 이종필의 것 같고, 윤가은의 영화는 윤가은의 것, 장건재의 영화는 장건재의 것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그들의 투철하고 일관적인 영화관이 <극장의 시간들> 사이를 이어 붙이는 접착제인 셈이다. 하여 그들과 <극장의 시간들>에 관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영화와 극장의 시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제작사 아토ATO의 제정주 프로듀서가 세 감독을 섭외한 것으로 안다. 왜 이 세명이었나.

이종필 들은 건 있는데 실제와 조금 다르긴 하다. “젊은 감독”들을 섭외했다는 말이었다…. (일동 폭소)

윤가은 미쟝센단편영화제 때는 한 관객이 우리를 “시니어 감독”이라 부르던데. 뭘까.

이종필 아마 이런 거 아닐까. 완전 선배 감독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신인은 아닌 모호한 중고 신인의 느낌이랄까.

- 미쟝센단편영화제의 토크 때도 그렇고, 세분이 <극장의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영화 만들기를 표현하는 단어의 차이가 있더라. 이종필 감독은 작업, 윤가은 감독은 놀이, 장건재 감독은 일이라고 말하더라. 어떤 차이일까.

장건재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작든 크든 영화 만드는 기회가 다 귀하다. 이 프로젝트도 아주 소중한 먹거리였던 셈이다. 두세달 동안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여하간 밖에 나가 일을 할 수 있으니 좋은 것이지. 그러면서 마음에 품고 있던 제작진, 배우들과 같이 일해볼 수 있는 기회이니 더욱더 좋은 일이다.

이종필 작업이라고 표현한 것은 영화의 형식이나 방법론적인 측면보다 이야기의 기원에 이유가 있다. <침팬지>는 내가 예전에 침팬지에 관한 책을 읽고 실제로 침팬지를 보러 갔던 기억을 복원하는 개인적 작업에 가까웠다. 한창 영화를 많이 보던 그 시절의 기억이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 영화와 환상이었는지 스스로 되새겨보는 과정이었다. 여차저차하다 보니 대중영화 혹은 상업영화를 꾸준히 찍고 있는데, 이런 식의 작업 같은 작품을 항상 하고 싶었다.

윤가은 놀이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놀이가 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당연히 놀 수만은 없다. (웃음) 돈이 엮여 있고 가고자 하는 목표가 분명하기에 순수한 놀이보다는 일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최대한 놀이에 가깝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을 계속 고민했다. 그러니 내가 준비하지 않았던 것들에도 되도록 더 잘 대응하기 위해 ‘놀이’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느낀 거다. 여하간 이렇게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는데 <극장의 시간들>을 보고 나니 ‘어라? 왜 이 세편이 하나로 잘 묶이지?’라는 느낌을 받았다. 신기했다.

- 세편의 단편영화가 어떤 점들을 공유하고 교환한다고 느꼈나.

이종필 미리 의도한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는 대목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서 <자연스럽게>를 놀이처럼 대했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작중 감독 역을 맡은 고아성 배우를 보면 항상 지쳐 있지 않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게 참 힘든 일이란 거다. 또 <영화의 시간>의 첫 장면을 보자마자 ‘아차!’ 싶었다. 예전에 한창 좋아했던 프랑스 누벨바그영화의 면모를 <침팬 지>에 예쁘게 만들어서 넣었다면, <영화의 시간>엔 그런 포장 없이도 그 시절 우리가 누벨바그영화에 환호했던 요소가 정확히 들어가 있다. 뭉쳐서 보니 이런 지점들이 자연스레 연결되었던 것 같다.

장건재 의미를 연결한다기보단, 오히려 각기 다른 영화가 만들어져서 더 재밌었다. 다들 그간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자유로운 환경에서 꺼낸 것 같았다. 난 서울극장이 폐관할 때부터 극장에 관한 이야기를 구상했었다. 더군다나 극장 내부를 마음껏 활보하며 촬영할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종필, 윤가은 감독의 작품에서도 초기작이었던 <불을 지펴라>(2007)와 <손님>(2011)의 활력을 느낄 수가 있어서 반가웠다.

이종필.

- 세 영화 모두 사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연출상의 차이가 있더라. <침팬지>에선 영화에 빠진 이들이 띄엄띄엄 앉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자연스럽게>에선 인물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호응하며 영화를 본다. <영화의 시간>에선 관객들이 다 잠들어 있다. 이종필 감독에게 영화를 보는 순간이란 홀로 만끽하는 것이고, 윤가은 감독은 어찌하건 함께하는 것이고, 장건재 감독은 어쨌든 영화를 트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달까.

이종필 정확히 본 것 같다. 난 명백한 개인주의자인가 보다…. 윤가은 감독님처럼 공동체를 생각하고 그래야 하는데 갑자기 반성하게 된다. 장건재 감독님은 아예 그 극장의 기운을 형상화한 것 같고.

윤가은 어라…? 당연한 거 아니었나? (웃음) 그냥 그런 의식이 내재해 있는 것 같다. 극장이 좋은 이유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더라도 주변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자연스럽게>에선 작중 제작진과 배우들이 자기가 만들고 출연한 영화를 보는 것이지 않나. 더 무섭고 불안할 거다. 그러니 누구라도 옆에 있어줘야 이 경험을 같이한다는 힘이 들 테니 사람들을 더 가깝게 붙여놓은 것 같다.

이종필 심지어 한 자리 살짝 비어 있는 것도 막 채우라고 하지 않나.

윤가은 그러게. (웃음) 그런데 실제로는 다 함께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한 적은 드문 것 같다. 아마 그런 풍경을 꿈꾸기 때문에 그렇게 찍은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론 프레임 안쪽이 좀 차 있어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장건재 저런 마음이 연출자로서는 아주 큰 배짱이다. 씨네큐브는 워낙 극장 내부가 커서 여러 사람을 다 채워야 한다는 현실적 부담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때의 극장, 지금의 영화

윤가은.

- <극장의 시간들> 속에서 극장을 대하는 태도는 감독들의 개인적 기억에 기반해 있는 듯하다. 장건재 감독은 예전에 하루 1만원으로 하루를 때울 수 있는 곳이 극장과 목욕탕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예전엔 극장이 느긋하고 느슨한 장소로 여겨졌다. 요즘은 영화관이 모든 관객에게 엄격한 장소가 된 것 같다.

장건재 극장뿐 아니라 도시 전반에 사회적 결벽증이 더 심화한 건 맞는 것 같다. 영화뿐 아니라 공연장이나 전시장 등 다른 곳들도 비슷해 보인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목적이 있지만, 사회가 완전히 개인화되는 쪽에 가까울 듯하다.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건 아니다. 예전보다 훨씬 쾌적하고 안전한 곳이 되었으니까. 다만 이럴수록 최근의 비상설 극장이나 상영회, 소규모 예술영화관이 주는 자유로움이 더 잘 느껴지기도 한다.

윤가은 극장에서만큼은 자기만의 온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도 커진 것 같다.

이종필 언젠가부터 ‘관크’(관객 크리티컬의 준말. 소란을 유발하는 관객의 행동을 일컫는 말.-편집자)라는 말이 흔히 쓰이고 있다. 사실 관객으로서 영화를 볼 땐 조용한 게 좋긴 한데, 내 영화를 틀 때는 관객들이 막 떠들썩거리면서 봐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웃음)

윤가은 확실히 예전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 같다. 요즘 극장에 관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리클라이너 의자에 대한 거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라는 마음이 자주 든다. 너무 잠이 잘 오니까. (웃음) 나도 정말 자주 잔다. 다 함께 보는 경험이 극장의 중요한 요소이고, 옆에 누군가 있다는 긴장감도 필요할 텐데. 되게 좋아하는 극장 에피소드 중 하나는 어떤 꼬마 아이가 <E.T.>의 중요 장면에서 스크린 앞으로 나가 손가락을 내밀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공동의 즉각적인 반응을 감지하는 것도 극장의 재밌는 점이다. 그런데 리클라이너 좌석이 들어오면서 점점 옆 관객과 멀어지게 되더라. 다른 관객의 웃음소리나 훌쩍거림도 관람의 작용인데 그런 걸 느끼기 힘드니 만큼 만드는 사람도 고민이 생기더라.

장건재 그래서인지 90년대생들이 주도하는 언더그라운드 상영회 등을 보고 있으면 예전 90년대에 시네마테크 운동이 일어나던 시절의 풍경이 떠오른다. 10년 뒤가 궁금하다. 저런 상영 공간에서 고전영화나 컨템포러리한 작가들의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10년 뒤에 어떤 영화를 만들지 궁금해지는 거다.

윤가은 심지어 고전영화를 봐도 디지털보다 필름 상영을 선호하더라. 아마 모두가 어느 정도는 옛날 영화의 손맛과 정신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창작자든 관객이든 정교하게 다듬어진 안전함이 아니라 위험함의 미덕이나 실험적인 자유를 원하나 보다.

장건재 그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만드는 사람으로서도 용기를 얻는다. ‘조금 더 마이너해도 할 만하겠구나, 쫄지 말아야겠다’라는 마음이 드는 거다.

장건재.

- 이제는 고루한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영화의 위기론이 계속하여 불거지고 있다. 어떻게 느끼나.

장건재 돌이켜보면 한 30년 전부터 한국영화계가 위기라는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다. 중요한 건 위기 자체보다 위기를 느끼는 경각심, 즉 위기의식이지 않나 싶다. 항상 위기가 오고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오늘이라도 충실하게 보낼 수 있지 않겠나.

윤가은 아무런 위기의식이 없을 때가 정말 위험한 때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렇게 계속 위기를 부르짖는 게 희망이 있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