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버] 왜 그렇게 좋았을까 - <극장의 시간들> 소개와 세 감독의 추천사

<극장의 시간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극장의 시간들>은 세편의 단편을 이은 앤솔러지 영화다. 이 묶음의 문을 여닫는 것은 이종필 감독이 씨네큐브에서 촬영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다. 씨네큐브 개관부터 현재까지 26년 동안 근속 중인 홍성희 영사실장이 출연하는 논픽션이자, 심해인 배우가 젊은 영사기사 역을 연기한 픽션이기도 하다. 아주 담담하게 극장의 시공간을 지키는 홍성희 영사실장의 손끝이 극장과 영사실의 이곳저곳을 스치고, 젊은 영사기사는 그의 등 너머로 영사 기술을 배우며 극장의 시간을 건네받는다.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

2000년, 세명의 친구가 극장에서 만난다. 군인 제제(홍사빈)는 예술영화의 맛을 일깨워준다며 친구 고도(원슈타인)를 극장에 데려오고, 어느새 누구보다도 영화에 푹 빠지게 된 고도는 우연히 마주친 관객 모모(이수경)와 가까워진다. 그러던 중 셋은 한 침팬지를 찾아나서게 된다. 먼 나라에서 한국까지 왔다는 어느 침팬지의 이야기를 고도가 헌책방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애상의 기운으로 가득 찬 침팬지의 흔적을 쫓다보니, <침팬지>의 감성은 20세기의 끝 무렵 한국을 점령했던 그 시절 예술영화, 예술영화관에 대한 향수로도 자연스레 번진다. 이어 25년 뒤 영화감독이 되어 있는 고도(김대명)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과거에의 그리움은 현재 우리의 마음에 포개어진다.

장건재 감독의 추천사 근래 이종필 감독의 영화들 사이에 수놓인 책갈피 같다. 감독의 사적인 메모가 잔뜩 적혀 있는 책갈피. <파반느>등 최근 이종필 감독이 열정적으로 내놓는 작품들 사이에서, 감독의 세계관에 대한 힌트를 던지는 부록 같기도 하다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

어린이 연출의 대가 윤가은 감독이 어떻게 촬영 현장을 진두지휘하는지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어느 감독(고아성)이 7명의 어린이 배우와 한나절 동안 영화를 찍고 있다. 영화와 현실의 선을 가볍게 뛰어넘어다니는 어린이들의 활력이 화면을 채우나, 감독은 걱정이 크다. 카메라가 찍는 아이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아이들과 논의하고 그들이 원하는 장소로 옮겨다니는 등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찾아내기 위해 애쓴다. 그 끝에서, 마치 놀이처럼 모두가 뒤섞여 함께하는 이상적인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이종필 감독의 추천사 어렸을 때는 해질 때까지 정말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놀이터에서 놀지 않나. 가족들과 외식을 가면 식당 놀이방에서 놀기도 하고. 대체 뭐가 그렇게 신났었나 싶은데, <자연스럽게>가 그런 즐거움을 다시 경험하게 해줬다. 놀이로서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윤가은 감독의 태도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

영화가 시작하면 영화감독 역을 맡은 이주원 배우가 오프닝크레딧을 낭독한다. <영화의 시간>에 참여한 제작진과 배우의 이름들을 천천히 호명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영화의 바깥을 인식하던 관객들은 이어지는 단 하나의 패닝숏으로 인해 영화 안쪽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아주 간결하게 마법 같은 순간의 감흥을 자아내는 장건재 감독 특유의 손짓이다. 영화 안쪽에는 몇십년 만에 서로를 만나게 된 중년 여성 영화(양말복)와 우연(장혜진)이 있다. 두 사람은 말 그대로 ‘극장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소박하고 산뜻한 재회의 날을 맞이한다. 이들의 만남 곳곳에 극장 매니저 세정(김연교), 영사기사 주연(권해효), 직장인 관객 넥타이(문상훈) 등이 연결되며 극장이라는 공간의 전반적인 상이 그려지기에 이른다. 누군가는 노동하고,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어 이야기하며, 누군가는 잠시 쉬어가는 그런 곳으로서 우리가 알던 극장의 모습이 살아난다.

윤가은 감독의 추천사 대개의 단편영화는 5분만 봐도 ‘아, 이게 어디로 갈지 알겠다’라는 감이 잡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영화의 시간>은 웬만한 예측을 완전히 비껴가는 이야기다. 우연의 연속이 연쇄하여 일어나는데, 돌고 돌아 그 끝에선 어떤 필연으로 당도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덕분에 ‘그래, 이런 게 내가 좋아하던 영화였지!’라는 설렘을 떠올렸다.

사진제공 티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