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장건재, 이종필 감독에게 물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다시 지피는 영화 세편을 알려주세요.” 지금 바로 대답해야 하냐며 놀라던 윤가은 감독,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시원하게 선수를 채간 이종필 감독, 손가락을 턱에 괸 채 깊이 고민하더니 막힘없이 세편의 제목을 읊은 장건재 감독의 목록을 공유해본다.
윤가은 감독 - <보이후드> <아무도 모른다> <거울>
“‘영화가 무엇을 다룰 수 있는 매체지?’라는 고민의 답이 ‘시간’이라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만들어진 시간의 변화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시간의 변화가 영화에 담길 때 영화가 진짜에 가까워진다고 느껴져서다. 물론 영화는 가짜다. 인공품이다. 그럼에도 저 세계가 진짜처럼 믿어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오고, 그럴 때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솟는다. 이런 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아무래도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일 것 같다. 1년에 걸쳐 찍은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훌쩍 자라 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자파르 파나히의 <거울>까지 세편이 떠오른다.”
이종필 감독 - <회오리 바람> <세계의 주인> <극장의 시간들>
“장건재 감독님의 <회오리 바람>! 그리고…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 마지막으로 <극장의 시간들>. (다른 두 감독의 원성이 터져나왔다.) 당연히 이유도 있다. <회오리 바람>을 보면 인물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주유소에서부터 터널을 쭉 통과하는 장면이 있다. 이걸 보면서 ‘와, 영화는 저렇게까지 제대로, 열심히 찍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촬영이 너무 고되고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냐?’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영화에 대한 열정을 되새기는 기억이다. (장건재 감독은 16년 전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거들었다.) 비슷하게 <세계의 주인>을 보면서도 이렇게까지 하나의 세상을 치밀하게 바라보고 만들어낼 수 있음을 깨달았고, <극장의 시간들>은 이런 두 감독의 영화를 한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장건재 감독 - <후쿠시마의 벨라 타르> <너무 기대하지 마라> <아빠의 영화학교: 모흐센 마흐말바프>
“영화 만들기는 공동체적인 작업이다. 이 작업을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행위로 이끄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의미 있는 공부이면서 수업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면에서 영화 작업과 교육이 동시에 수행되는 세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얼마 전 오다 가오리의 기획전에서 본 <후쿠시마의 벨라 타르>는 벨러 터르가 남긴 마지막 유산, 마지막 수업 같은 작품이었다. 니컬러스 레이 감독이 마지막 영화 <우린 집에 돌아갈 수 없어>(1973)를 자기 학생들과 만들려던 때의 이야기를 다룬 <너무 기대하지 마라>(2011), 모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가족들과 함께 출연한 <아빠의 영화학교: 모흐센 마흐말바프>(2014)까지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