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친숙하지 않은, 특히 물리학과 거리를 두고 살아온 관객은 우주 배경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근심이 앞선다. 영화를 보기 전엔 내가 이야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 긴장하고, 영화를 본 후엔 내가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한 게 맞는지 걱정한다. 구성원 모두가 문과 졸업생인 <씨네21>기자들 또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특집으로 선정하며 이마를 짚었다. 그래서 한국천문연구원에 급히 구조 신호를 쏘아 올렸다. <씨네21>과 함께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감상한, 문홍규 천문학자와의 일문일답을 전한다. 참고로 문홍규 천문학자가 바라본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과학적 정밀성은 다음과 같다. “<그래비티>는 거의 다큐멘터리고, <인터스텔라> 또한 다수의 학자가 자문한 만큼 엄밀한 우주영화다. <마션>은 작가 앤디 위어의 말마따나 픽 션적 상상력이 강한 작품이다. 같은 작가가 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마션>이후에 출판된 작품이니 이 사람도 그새 나이가 들었을 것 아닌가. 그래서 과학적 고증보다는 인류애의 존엄과 가치가 보다 중요했던 것 같다. 그래도 재밌게 봤다!”
Q. 아스트로파지 같은 미생물이 정말 태양 같은 항성을 죽게 만들 수 있나요?
A. 작중 묘사에 따르면 아스트로파지는 포자의 형태로 우주공간을 떠돌며 극고온과 저온, 진공상태나 우주방사선을 모두 견디는 강력한 병원균으로 보입니다. 그간 고등 생명체가 인류를 공격하고 식민지배를 시도했던 SF영화를 생각하면, 하등한 단세포생물이 인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 재밌습니다. 그렇지만 미생물이 태양을 멸망시키긴 어렵습니다. 태양은 표면온도가 절대온도 5800도, 중심 온도는 1500만도인 별입니다. 이런 극한 환경 안에서 살아남아 번식하고, 별의 에너지 생성률까지 떨어뜨리는 미생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 태양은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드는데, 1초 동안 뿜어내는 에너지는 지구의 모든 인류가 100만년을 쓰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합니다. 그런 항성이 30년 안에 미생물로 사멸할 확률 또한 희박합니다. 물론 태양은 언젠가는 멸망합니다. 태양 같은 G2V형 주계열성은 수명이 100억년 정도 됩니다. 지금 태양이 50억년 정도 살았으니, 인간으로 치면 중장년 정도의 나이입니다.
Q. 아스트로파지와 유사한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 바 있나요?
페트로바선과 그 안에 뿌려진 아스트로파지는 다이슨의 구(Dyson Sphere)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이슨의 구는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말한, 고도의 기술문명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태양 같은 별에서 에너지를 뽑아 쓸지도 모른다는 개념입니다. 우리 태양 지름은 지구 109배, 다이슨의 구는 지구 공전궤도를 감싸는 거대한 구(球)라서 지름 3억km에 해당합니다. 그 구 안쪽에 태양전지판을 달면 엄청난 태양에너지를 쓸 수 있겠죠. 아스트로파지는 자가증식하며 별이 만든 에너지를 섭취하고, 자기들끼리 군집을 이룹니다. 다이슨 구의 생물체 버전이네요. 다만 다이슨 구는 인공구조물이고, 아스트로파지는 생존을 위해서 증식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Q. 우주에서 원심력을 활용해 인공중력을 만들 수 있나요?
A. 원심력을 일으켜 인공중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굳이 이 방법을 쓰지 않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거대한 동체를 돌리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데다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쉽게 표현했지만요. 저는 중력이 주인공의 심리적 궤적을 나타내는 장치로 쓰였다고 봅니다. 무중력상태에서 막 깨어난 그레이스는 극심한 혼란을 겪지만, 중력을 회복한 뒤에 생각과 감정이 자리를 잡고 미래를 고민할 여유를 찾게 되죠. 실제로도 중력이 있어야 우주인의 근골격계 퇴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결국은 중력이 우주인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전하게 유지해주는 셈입니다. 중력은 우주인의 건강과 심리 상태를 안정시켜줍니다. 인공중력은 우주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미세 중력 실험에서 쓰입니다. 미세 중력에 노출된 세포나 식물이 지구와 다른 성장을 관찰하는 바이오 실험이 그 예입니다. 최근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원심분리장치로 설치류의 골밀도 변화를 보거나 식물의 뿌리가 자라는 방향성을 연구한 일이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지구와 비슷한 중력 환경을 만들고 무중력이 생체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대조군과 비교하는 방식입니다. 결국 인공중력은 사람이 장기간 우주에 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생명체의 적응 방식과 물리적 반응을 알아보는 중요한 도구인 셈입니다.
Q. 에이드리언은 우리가 아는 행성 중 무엇과 가장 가까울까요?
A. 그레이스와 로키는 타우메바 표본을 채취하려고 에이드리언 행성 대기를 저공비행합니다. 거대한 목성형행성이고 시료가 상층대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체가 격렬한 대류를 일으키는 장면처럼, 목성형행성에서는 강한 중력과 대기 마찰이 맞물려 비행체 고도를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시료를 채집하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고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레이스가 대기권에 진입할 때 밝은 섬광이 번쩍이는 장면 역시, 우주선이 고속 비행 시 바로 앞 공기가 급격하게 압축돼 온도가 수천도까지 올라가 빛이 생기는 현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주선의 속도를 말씀드린 김에 그 이후 내용도 짚어봐야 할 텐데요. 타우메바의 표본을 담은 우주선이 지구에 제때 도착하는 설정은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를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Q. 그레이스처럼 우주에서 면을 먹을 수 있나요?
A. 보통 고형의 면류를 우주로 가져가지는 않습니다. 우주선 안에 면 부스러기가 날린다고 생각해보세요. 골치 아픕니다. (웃음) 이소연 박사가 우주에서 먹었던 신라면도 튜브로 흡입하는 형태였으니까요. 따라서 영화 속 면류도 상징적 존재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아르테미스 2호가 우주로 발사되지 않습니까. 아폴로 계획 당시의 우주왕복선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실린다고 합니다. 중국의 유인 우주정거장 텐궁엔 이미 180여종의 식품이 구비돼 있다고 하니, 면 요리가 당연히 있을 겁니다. 작중 야오 사령관이 중국인으로 설정된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국가별로 우주선에 반입하는 음식의 형태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으나, 나사의 우주비행사들은 비닐 튜브에 든 음식을 짜먹고, 러시아 로스코스모스의 우주비행사들은 통조림에 음식을 넣어 먹습니다. 당연히 중력이 없으니 통조림 아래 자석을 부착해 취식하지요.
Q. 영화 속 그레이스와 로키처럼 원소기호, 또는 행성 위치로 비지구인과 소통할 수 있을까요?
A. “공통의 언어가 수학입니다”라는 대사도 있지만, 언어 체계가 다른 두 생물이 물리법칙과 과학적 사실을 공통분모로 소통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로키가 철사를 이용해 바다에 사는 성게처럼 생긴 모형을 만들었잖아요? 태양 주변 별들의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표현한 모형이었고, 그래서 그레이스와 대화가 가능해지지 않습니까. 그레이스가 기억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과학자인 만큼 그걸 금세 알아본 거죠. 태양 주변 별들의 3차원 배치를 화면에 띄워 로키가 만든 모형과 같다는 걸 알고 외계 지성체가 어디서 왔는지 깨닫는 그레이스의 눈빛이 기억에 남습니다. 천문학자로서 로키가 만든 모형을 보고 저거다 싶었죠.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