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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No to War, and Free Palestine” - 동시대 전쟁에 관한 영화제·시상식의 반응

지지하느냐, 침묵하느냐. 지난 한해 동안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에선 전쟁에 대한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극명하게 갈렸다. 최근 치러진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지난해 5월 개막한 칸영화제까지 지난 1년간 전시 상황에 관해 영화제·시상식에서 오간 대화와 사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전쟁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는 매번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발언하거나, 불참하거나 -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나선 하비에르 바르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정치적 논평을 배제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했지만 하비에르 바르뎀은 달랐다. 국제장편영화상 시상자로 나선 그는 옷깃에 ‘전쟁 반대’ 핀과 ‘팔레스타인 지지’ 핀을 달고 시상대에 올랐다. “전쟁에 반대하며,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운을 뗀 하비에르 바르뎀은 자신이 “시네마를 사랑하는 이유는 서로 다른 문화 속 인간의 경험을 연결해주는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며 연설을 시작했다. 시상식 이후 진행된 <버라 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도 “가자 지구에서 자행되는 학살을 규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학살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상업적, 외교적 봉쇄와 제재를 요구한다.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고 외쳤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지난해 마크 러펄로와 함께 팔레스타인 가족의 대서사를 수십년에 걸쳐 전하는 셰린 다비스 감독의 <올 대츠 레프트 오브 유>(All That’s Left Of You)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바 있다. 한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숀 펜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 이어 아카데미에도 불참했다. 대신 그의 발걸음은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지지 표명의 의미로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철도 CEO 올렉산드로 페르초프스키와 조우했으며 페르초프스키는 러시아 미사일로 인해 파괴된 열차의 금속 조각으로 만든 ‘아이언오스카’를 숀 펜에게 선물했다.

가장 격렬한 비판 -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감독들.

모든 것은 심사위원장 빔 벤더스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경쟁부문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서 독일 정부의 이스라엘 지원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사태에 관한 질문이 들어오자 빔 벤더스는 “(영화 제작자는) 정치에 관여해선 안된다. 우리는 정치의 정반대에 있으며 정치인의 일이 아닌 보통 사람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답변의 파장은 컸다. 소설가이자 시민운동가 아룬다티 로이는 직접 각본을 쓰고 출연한 <애니는 그들을 어떻게 대했나> 4K 복원판 상영 참석을 철회했다. 그는 “예술가, 작가, 영화 제작자들이 전쟁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때, 예술이 정치적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정말 경악할 일이다.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대화를 차단하는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틸다 스윈턴, 하비에르 바르뎀, 애덤 매케이, 마이크 리 등을 포함한 80명 이상의 감독, 배우, 제작자가 “영화제작이 ‘정치의 반대말’이라는 심사위원장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팔레스타인 학살 규탄을 외면하는 영화제의 침묵에 참담함을 느낀다”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크로니클스 프롬 더 시즈>로 최우수 장편데뷔상을 수상한 뒤 시리아-팔레스타인 감독 압달라 알카티브는 수상 소감을 전하며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주민 학살에 가담 중”이라고 독일 정부를 비난했다. 이에 카르스텐 슈나이더 환경·자연보호·핵안전부 장관이 시상식장을 떠났으며, 아무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연유로 트리샤 터틀 집행위원장을 해임하기 위한 임시 회의가 소집됐다. 올해 황금곰상을 수상자인 일케르 차탁 감독, 틸다 스윈턴 등 2500명이 넘는 전 세계 영화인이 터틀의 해임에 반대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고 볼프람 바이머 문화·미디어 장관이 그를 칭송하는 인터뷰를 내보내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팔레스타인에 귀 기울이며 -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힌드의 목소리>

개막 직전 베니스국제영화제에도 공개 서한이 도착했다. 감독 켄 로치, 셀린 시아마, 오드리 디완, 배우 토니 세르빌로 등 1500명 이상의 영화인·문화계 인사가 서명한 이 공개 서한 역시 가자 지구 전쟁에 관해 ‘이스라엘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강력한 입장을 취할 것’,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더 적극적으로 다룰 것’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일부는 <단테의 손>에 출연한 갈 가도트와 같이 공개적으로 친이스라엘 입장을 표한 배우 초청을 재검토하길 요청하기도 했다. 알베르토 바르베라 집행위원장은 갈 가도트의 초청을 취소하진 않았다고 밝혔으나 결과적으로 갈 가도트는 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밖에도 영화제 기간 동안 행사가 치러지는 리도섬 일대와 레드카펫 근처에서 “Free Palestine”을 외치며 팔레스타인 깃발, 현수막을 든 현장 시위도 진행되었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의 <힌드의 목소리>는 지난해 베니스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영화 중 하나다. 가자 지구를 탈출하려던 6살 소녀 힌드 라잡과 그녀의 가족, 이들을 구하려던 구급대원이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월드프리미어 상영 직후 23분50초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일부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고 외쳤고 출연 배우인 모타즈 말히스는 객석에서 받아 든 팔레스타인 국기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강한 지지와 함께 <힌드의 목소리>는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더 이상의 침묵은 없다 - 제78회 칸영화제

지난해 치러진 칸영화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크 러펄로, 리처드 기어, 수전 서랜던, 하비에르 바르뎀, 페드로 알모도바르 등 350명 이상의 영화인들이 가자 지구의 인명 피해에 관한 침묵을 지탄하는 공개 서한을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을 통해 발표했다. 칸영화제 개막 전날 발표된 이 서한엔 가자 지구 출신 사진기자 파티마 하수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그의 삶을 다룬 세피데 파르시 감독의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는 칸 사이드 섹션 ACID에서 상영됐다). <알자지라>의 한 기자가 쥘리에트 비노슈 심사위원장에게 이 서한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를 질문했으나 그는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그리고 이어진 개막식에선 “파티마 하수나가 오늘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했어야 했다”며 그녀를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