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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00년대 이후 발발한 전쟁을 소재로 한 17편의 작품 소개

2000년대 이후 일어난 전시 상황을 다룬 장단편 영화들을 가장 근시일에 발생한 전쟁부터 차례로 정리했다. 미얀마 내전 등 아직 영상·영화로 옮겨지지 않은 전쟁·내전은 제외했다. 17편의 작품들은 편집된 단신 뉴스 영상으론 접할 수 없는 현실을 생생히 고발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2023년~)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Put Your Soul on Your Hand and Walk)

세피데 파르시 / 프랑스, 팔레스타인 / 2025년

이란에서 유럽으로 망명한 세피데 파르시 감독은 팔레스타인 가자에 사는 20대 여성 파트마와 영상통화를 나눈다.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난 적 없으나 서로의 아픈 기억을 공유하며 금세 친밀해진다. 그렇게 2024년 4월부터 1년 넘게 연락을 주고받으나, 연락의 시기와 빈도는 비정기적이다. 파트마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며칠 동안 몸을 숨겨야 할 때도 있고,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힘을 내기 어려운 날들도 있다. 그럼에도 파트마는 사진과 이야기로 가자의 낱낱을 기록하고 공유하려 애쓴다. 그 결과 두 사람의 영상통화를 기반으로 만든 이 작품이 2025년 칸영화제에 초청됐지만, 파트마는 영화제에 오지 못했다.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너머로 보이는 저곳에 닿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 이미지에 개입하기 어려운 현실의 무력함을 절감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럼에도 파트마가 가자에 살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우빈

<낯선 곳을 향해>(To a Land Unknown)

마흐디 플레이펠 / 영국, 팔레스타인, 프랑스, 네덜란드 외 / 2024년

제77회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서 첫선을 보인 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디아스포라영화제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소개된 <낯선 곳을 향해>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놓인 풍경을 재현한 극영화다. 주인공은 사촌지간인 차틸라와 레다. 두 사람은 아테네로 피난을 왔지만, 베를린으로 건너가 식당을 차리고 싶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온통 범죄의 영역에 그친다. 도둑질로 연명하던 그들은 급기야 같은 처지인 동포들마저 위험에 빠뜨리고, 형제 중 한명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덴마크에 머물며 다큐멘터리 작업을 지속해온 마흐디 플레이펠 감독은 과거 난민캠프에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각본을 썼다고 한다. 누아르, 스릴러, 때로는 블랙코미디의 필치까지 가미한 이 작품은 존재의 조건을 되물으며 깊어진다. /남선우

<팔레스타인을 위한 두 대의 카메라>

이예진 / 한국 / 2025년

여기 두대의 카메라가 있다. 하나는 가자 지역 청소년들이 쓴 글을 재구성한 연극 <가자 모놀로그>를 공연하는 한국인 배우들을 다른 하나는 청계광장에 나온 팔레스타인 출신 유학생들을 향해 있다. 연극에 참여한 이예진 감독은 둘 사이의 거리감을 의식하되 무력감에 지지 않기 위해 두 장면을 병치한다. 그 틈새로 얼굴을 비춘 여성들은 “누군가에게는 온전히 이해되기 어려운 그런 일”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회고한다. 학살의 현장에서 멀어져 자유를 누리는 데서 오는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얘기하는 게 저항”이라 믿는 이들의 목소리가 흐르는 동안, 관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이예진 감독이 책 <응답하는 이미지들>에 제작기를 쓰기도 한 이 단편은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이어 오는 6월 제27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남선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2014년~ 전면전 2022년~)

<나의 불온한 친구들 1부-모스크바의 마지막 공기>(My Undesirable Friends: Part I-Last Air in Moscow)

줄리아 로크테프 / 미국 / 2024년

러닝타임이 343분에 달하는 다큐멘터리다. 감독 줄리아 로크테프는 2021년 말 모스크바에 당도한다. 러시아에 마지막으로 남은 독립 언론사 ‘TV 레인’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푸틴 정권은 반정부적 의견을 피력하는 시민과 언론을 범법자로 낙인 찍으며 억제하고 있다. 감독은 TV 레인의 기자들을 비롯한 관련 언론인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을 좇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상황이 급변한다. 감독과 출연자들은 정치적 탄압을 피해 갑작스러운 망명길에 오른다. 21세기 전쟁과 미디어의 상관관계를 포괄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통제되는 매스미디어, 자유로운 듯했으나 역시나 억제의 대상이 되는 소셜미디어, 끝없이 서로의 안부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전시에 터지지 않는 모바일데이터. 언제든 연결될 수 있다는 초연결시대의 감각이란 위로와 함께 그것이 끊겼을 때의 불안감까지 가중한다. 출연진들의 망명 이후 삶을 기록했다는 영화 2부가 국내에도 곧 소개되길 바란다. /이우빈

<마리우폴에서의 20일>(20 Days in Mariupol)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 우크라이나, 미국 / 2024년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남쪽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이 러시아에 포위된다. 학교, 병원, 시가지 할 것 없이 폭격을 맞는다. 시민들은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지하실로 대피한다. 응급실은 만원을 이뤄 영안실에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다큐멘터리상 수상작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이 전쟁범죄의 현장을 촬영해달라고, 세상에 알려달라고 외친 이들에게 응답한 기록이다. <AP통신> 취재팀, <사마에게> 프로듀서 등이 힘을 합쳤다. 영화는 그들이 영상을 찍고 전송하는 과정을 포함해 그 결과물이 어떻게 보도되는지까지를 목도한다. 어딘가에서는 가짜 뉴스라고 손가락질받아도 카메라는 긴박하게 움직인다. 그 이미지는 차분한 음성의 내레이션과 대비돼 비극을 더 사실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희생자들의 모습에서 자기 가족을 보는 감독의 시각이 관객에게도 전이된다. /남선우

<파편들의 집>(A House Made of Splinters)

시몬 레렝 빌몽 / 덴마크, 핀란드, 우크라이나, 스웨덴 / 2022년

전작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2017)에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에 사는 한 소년과 그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시몬 레렝 빌몽 감독은 궁금했다. 할머니마저 함께할 수 없다면 소년은 어떻게 될까. 미리 염려하며 향한 곳은 동우크라이나 리시찬스크의 아동 청소년 쉼터다. 최전선으로부터 20km 남짓 떨어진 그곳은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며 최대 9개월간 머물 수 있는 장소. <파편들의 집>은 전쟁 외에도 가정내폭력과 방치로 집을 떠나야 했던 아이들의 한때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핀다. 반투명한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을 아낌없이 머금은 화면이 그 증거다. 그 빛을 받는 에바, 사샤, 알리나, 콜랴는 각자의 방식으로 우정을 키우고, 존엄을 지킨다. 그들은 화면 너머로 소리 없이 말한다. 어른들의 싸움이 결코 길어져서는 안된다고. /남선우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2001~21년)

<칸다하르>(Kandahar)

모센 마흐말바프 / 이란, 프랑스 / 2001년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2001년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에 시작됐다. 21세기 초엽에 일어나 2021년에야 종전이 선언됐다. <칸다하르>는 이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인 2001년 5월 칸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시기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으나, 그 시대 아프가니스탄의 정치·문화·사회적 배경을 선행적으로 살필 수 있는 창구인 셈이다. 캐나다로 망명하여 사는 나파스는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 남겨진 여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개기일식이 있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내용이다. 나파스는 칸다하르로 가서 여동생을 구하려 하지만, 여정은 쉽지 않다. 여성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쓰고 이동의 자유마저 억압받으며, 칸다하르 근처의 민간인들마저 군사 통제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칸다하르로 가는 길엔 굶거나 사지를 잃은 사람들이 즐비하다. 모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도 피어나는 작은 선의와 희망의 목소리를 포착하려 애쓴다. /이우빈

<인 허 핸즈>(In Her Hands)

타마나 아야지, 마르셀 메텔지에펜 / 아프가니스탄, 미국 / 2022년

서방 군대가 철수했어도 평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치하에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인 허 핸즈>는 2021년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함락하기 전후 상황을 기록했다. 카메라는 카불에서 40km가량 떨어진 도시 마이단와르다크의 최연소 시장이자 첫 여성 시장인 자리파 가파리에게 초점을 맞춘다. 촬영 당시 20대였던 그는 시민들을 향해 무기를 내려놓고 펜을 들라고 호소한다. 성평등과 언론의 자유를 위해 뛰는 그의 활동이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무리에 의해 잦은 살해 협박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고국의 안정을 꾀하는 여성 리더를 비추는 한편 영화는 탈레반의 본거지로도 시선을 옮긴다. 총칼로 무장한 그들의 논리가 어떻게 한 나라를 좀먹는지까지 전하는 것이다. 자리파 가파리는 끝내 독일로 망명했다. 그는 여전히 활동가로서 국제사회를 누비며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알리고 있다. /남선우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아프가니스탄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참상을 에둘러 묘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고통을 다룬 애니메이션들만큼은 부드러워질 수가 없다. 2018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브레드위너>라는 제목으로 상영되는 등 국내에서도 소개된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도 그렇다. 앤젤리나 졸리가 제작에 참여한 이 영화는 가족을 위해 남자로 살아가기로 한 소녀의 이야기다. 폭압 아래 뻗친 상상력은 어떻게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어떠한지 들려준다. 2022년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그런 풍파에서 빠져나온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여정을 따라간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거처가 불분명한데 내면의 거처는 찾을 수 있는가. 흐릿한 그림만이 그 혼란을 담아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남선우

시리아 내전(2011년~)

<화이트 헬멧: 시리아 민방위대>(The White Helmets)

올랜도 폰 아인지델 / 영국 / 2016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5년간 약 40만명이 사망했다. 새로운 터전을 찾지 못해 군사통제구역에 남은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의존해 생명을 유지 중이다.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시리아 민방위대, 일명 ‘화이트 헬멧’이다. 2013년 설립 이래 “한 생명을 구하는 건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이라는 일념을 가슴에 새긴 그들은 폭격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해 부상자들을 구한다. 때로는 시신을 수습하고, 폐허를 정돈하며, 지인들과 이별하기도 한다.

이 40분 분량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시리아 알레포시를 중심으로 구호 활동을 벌이는 이들이 잠시 고국을 떠나 튀르키예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는 과정을 비춘다. 과거에 대장장이나 재단사로 일했던 대원들이 타지에서 전문적인 구조 지식을 쌓는 동안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가 타는 이들 곁에, 카메라는 가만히 함께 있어줄 뿐이다. 그 끝에 언젠가 자신들이 구한 아이를 보며 미소 짓는 화이트 헬멧 대원은 말한다. 희망이 없으면 살아갈 수도 없다고. 폐허에 솟아난 희고 단단한 모자들이 등대처럼 빛나는 이유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남선우

<로스트 인 시리아>(Rebel

아딜 엘 아르비, 빌랄 팔라 /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2022년

폭력은 어떻게 전이되고 유지되는가. <로스트 인 시리아>는 이슬람국가 ISIS의 영향력이 어떻게 먼 타지에까지 퍼졌는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그린 극영화다. 2013년 벨기에에 살던 모로코계 무슬림 가족의 이야기이며, 여러 실화에 기반했다. 래퍼의 꿈을 키우던 카말은 ISIS에 속아 시리아의 전장에 내던져진다. 그의 10대 초반 동생마저 ISIS의 수중에 놓이기 직전이다. 무슬림들을 위한 봉사 활동이라는 속임수 등으로 ISIS가 타지의 청년들을 끌어모은 것이다. 소년병으로 착출된 이들에게 잇단 비극이 이어진다. 카말과 같이 실제 모로코계 벨기에인인 아딜 엘 아르비, 빌랄 팔라 감독이 연출해 당대의 현실감을 더한다. 할리우드적인 관점에서 아주 매끄럽게 다듬어진 웰메이드영화는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렇기에 현실의 단면을 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던 작품이다. 2022년 칸영화제 초청작이다. /이우빈

이라크 전쟁 2003~11년

<리댁티드>(Redacted)

브라이언 드 팔마 / 미국, 캐나다 / 2007

2006년 발생한 미군의 이라크 일가족 살인사건을 페이크다큐멘터리로 재구성했다. 미군 병사 살라자가 군대에서의 나날을 카메라로 기록한다. 영화학교에 가고 싶어 포트폴리오를 만들 목적이다. 카메라에 담기는 것은 군인들의 지저분한 일상이 대부분이다. 검문소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현지 주민들을 억압하며 조롱하고, 도박에 빠져 놀다가 싸우기나 한다. 한심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영화의 중반이 지날 무렵 사태는 선을 넘는다. 살라자와 동료 군인들이 무고한 이라크 일가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것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주동자의 행위를 방관하던 이들은 “보고 있었으나 한편은 아니다”라는 말을 내놓는다. 이처럼 <리댁티드>는 카메라가 폭력의 민낯을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며, 이를 찍고 보는 이들의 의무가 무엇인지 문제시한다. 전쟁범죄의 실상이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로 퍼지는 현상까지 더하면서 영화를 포함한 21세기 미디어 전반의 윤리적 책임을 화두로 던지는 것이다. /이우빈

<전장의 A.I.>(A.I. at War)

플로랑 마르시 / 프랑스 / 2021년

플로랑 마르시 감독이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로봇 ‘소타’를 데리고 이라크와 시리아의 전장을 누비며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2003년 미국이 시작한 이라크 전쟁은 문서상 2011년에 종전됐지만, 전쟁의 여파가 뻗친 정치적 불안정이 이라크 내의 끝없는 분쟁과 유혈 사태를 일으키는 중이다. 소타는 2015년에 만들어졌다. 근래 챗GPT나 제미나이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소타의 알고리듬은 무척 기본적이며, 그의 말도 인류의 상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서로를 죽이고 터전을 파괴하는 이들의 행위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분석하진 못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진일보한 기술이라 해도 전장의 불가해한 사태에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전쟁터란 인간의 온갖 잔혹한 상상력과 최신 기술이 뒤섞여 만드는 SF적 혼돈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생성형 AI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작금의 온오프라인 전쟁터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전장의 A.I.>가 말하려는 바는 간명하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적어도 소타가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이다. /이우빈

미국이 만든 이라크 영화들

<허트 로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을 때부터 이에 관한 다수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홈 오브 더 브레이브>(2006), <렌디션>(2007), <허트 로커>(2008), <그린 존>(2010),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 알렉스 갈런드가 연출한 A24의 영화 <워페어>(2025) 등이다. 전장의 스펙터클을 소비하는 데 그치는 영화, 희생의 숭고함을 기리는 쪽, 참전군인의 개인적 심리를 파고드는 부류, 미국의 의도와 행위를 비판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가해국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과연 어느 정도의 당위와 설득력을 보이는지는 여전한 의문을 남긴다. 반성을 위한 기록과 재현은 누가, 어디까지, 어떤 형태로 수락하는가. 오래된 질문이며, 현재진행형의 물음이다. 여하간 이에 대한 미국의 답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이우빈

아프리카 내전(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여러 내전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Beasts of No Nation)

캐리 후쿠나가 / 미국 / 2015년

아프리카의 수많은 내전들은 이들의 독립, 민주화의 역사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됐다. 1960~90년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식민지에서 독립국으로 전환되면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빈번한 완력 다툼을 벌인 탓이다. 그 과정에서 10대 소년병들은 강제로 전쟁에 동원됐다. 주인공 아구(에이브러햄 아타)는 다행히 평화협정이 유지되는 구역에서 지내고 있었으나 결국 아구의 동네마저도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에 휩쓸린다. 가족을 잃고 도망친 아구가 마주한 건 코먼댄트(이드리스 엘바)가 이끄는 반군 부대였다. 생존과 복수를 이유로 소년병이 된 아구는 잔인하게 착취당한다. 극한의 공포와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마약을 복용해 환각 상태에 빠진 채 전장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다. 천진난만했던 아구는 무감히 살상을 저지르는 스스로를 ‘괴물’이라 칭한다. 우조딘마 이웨알라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으로 2002년까지 진행된 시에라리온 내전을 위시한 서아프리카 내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제7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상 수상작. /조현나

<르벨>(Rebelle)

킴 누옌 / 캐나다 / 2012년

12살 소녀 코모나(레이철 므완자)에게 반군이 총을 쥐어주며 외친다. “부모를 사살하라”고. 제 손으로 가족을 살해한 코모나는 ‘전쟁 마녀’(War Witch)라 불리며 반군 부대 소속으로 살아간다. 반군 부대에서 전투 방식, 생존법을 익히던 코모나는 ‘주술사’(세르지 카닌다)라 알려진 15살 소년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서 코모나는 반군 최고 우두머리인 ‘강한 호랑이’(미징가 므윙가)에게 보내지고, 14살에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특정 배경을 밝히진 않았으나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상황이 강하게 반영된 영화다. 킴 누옌 감독이 실제 소년병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현실감 있게 전시를 구현했고 아프리카 내전을 다룬 영화 중 드물게 소녀 병사를 주인공 삼아 서사를 전개한다. 피와 사체가 낭자한 전쟁터와 대비해 가족을 살해했다는 코모나의 죄책감, 트라우마를 환상에 가깝게, 그리하여 더 서글프게 아이의 삶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제6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 장편데뷔상 특별언급,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됐다. /조현나

<조니 매드 독>(Johnny Mad Dog)

장스테판 소베르 / 프랑스 / 2008년

‘매드 독’이라 불리는 소년병 조니는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대가를 제대로 치러주겠다는 ‘네버 다이’ 대령의 명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그는 또 다른 소년병들을 통솔해 전장으로 향한다. 그러면서도 반군을 피해 도망가던 아이들을 살려주는 의외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10대에 불과한 소년병들은 기관총, 바주카포를 손에 든 채 거쳐가는 모든 지역을 초토화시키며 정부군에 정면 대응한다. 장스테판 소베르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실제 전쟁 경험을 지닌 청소년 병사들을 캐스팅해 카메라 앞에 세웠다. 이 비전문 배우들은 6주의 촬영 기간 동안 실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가상의 전장에서 무자비한 학살을 재현한다. 이들을 경유해 도덕적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기보다 승리를 위해선 살생도 마다않는 전쟁의 법칙을 그대로 흡수한 아프리카 청소년들의 날것의 현실을 그대로 직시한다.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아프리카 내전의 현실까지 상상케 하는, 서늘할 만큼 직설적인 영화다.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조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