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착한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내어줄 만큼 사랑이 많은 사람. 그러면서도 밝은 미소 뒤편에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며 은근한 시샘을 받는 사람. 영화 <새벽의 Tango> 속 주희는 바로 그런 인물이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쉽게 물들지 않는 그 얼굴 위로, 우리는 배우 권소현의 또 다른 결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며 주목받는 권소현은 이번 작업을 통해 “결국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고 말한다. 그가 빚어낸 주희는 세상이 덧씌운 편견을 담담하게 걷어내며, 의심의 눈초리를 되레 부끄럽게 만든다. 바다처럼 깊고 넓은 사랑을 지닌 배우 권소현을 만나 이번 신작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 처음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주희의 첫인상은 어땠나.
꽤 판타지적인 인물로 다가왔다. ‘현실에 정말 이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평소에는 캐릭터의 결핍부터 파고드는 편이라 접근이 쉽지 않았는데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인물은 결핍이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인물이라는 데서 출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캐릭터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돌아보게 되더라. 어쩌면 내가 사람을 편협한 시선 안에 가두고 이해하려 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이후에는 주희를 설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다.
- 주희는 지원에게 ‘땅고’를 가르쳐주지만, 정작 본인이 땅고에 빠진 계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와의 서사도 생략되어 있는데, 이런 여백은 어떻게 채워나갔나.
감독님과 함께 구체적인 상상을 많이 덧붙였다. 주희에게 땅고는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와 TV프로그램을 보며 약속했던, 일종의 버킷 리스트 같은 기억으로 설정했다. 주희는 늘 함께 발을 맞춰볼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지원을 만난 건 우연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졌다.
- 주희는 상대에 따라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지원 앞에서는 한없이 천진하다가도 한별이 앞에서는 엄마 같은 면모를 보인다.
주희는 사랑의 폭이 굉장히 넓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먼저 떠올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연스럽게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다. 그 마음이 지원과 한별에게 각각 다르게 작동한 것뿐이다. 한별을 대할 때는 실제로 ‘엄마 같음’을 계속 떠올렸다. 특정한 감정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상대에 따라 스스로의 온도를 조절하는 인물에 가깝다.
- 밝은 모습 이면에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도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주희를 조금 의심했던 것 같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그 의심 자체가 내 시선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희도 기대와 다른 반응을 마주하면 속상함을 느낄 것이다. 다만 그 감정을 ‘상처’로 고정해버리면 너무 안쓰러운 사람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 ‘일시정지’ 같은 감정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춤 장면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무대 경험이 많은 만큼 안무에 대한 부담은 덜했을 것 같다.
단순히 춤을 잘 추는 것보다 함께 발을 맞춰 걷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땅고’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 사람들이 서로 발을 맞춰 걷던 데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상대방과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점이 영화 속 관계와 닮아 있다.
- 쉼 없이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고 있다.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주변 스태프 분들이 잘 이끌어주신 덕이 크다. 한 작품이 다음 인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일을 할 때 가장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불행하게 느껴질 정도라 아직은 쉬면서 에너지를 채우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지점이 있다면.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정말 ‘사람’처럼 보였으면 한다. 사회적인 문제나 결핍을 다루는 작품을 많이 해왔는데, 그 감정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하려면 무엇보다 인물이 우리 주변의 누군가로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한 표현이지만 결국 ‘사람 냄새’가 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작품 속 주희처럼,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나.
예전에는 여행이나 취미로 풀려고 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편이다. 회피하려고 하면 감정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더라. 차라리 끝까지 받아들이고,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들여다보는 게 더 맞는 방식인 것 같다. 그렇게 충분히 겪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 앞으로의 계획과 차기작 소식도 궁금하다.
하반기에 <공감세포>로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할 예정이다. 그동안은 비교적 힘든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이번에는 안정된 삶을 사는 인물이다. 그래서 여태껏 출연했던 작품 중 가장 예쁘게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웃음) 다양한 장르와 결을 가진 작품에 계속 도전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