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 통장 피해로 하루아침에 먹고 잘 곳을 잃고 공장에 취직한 지원(이연)은 공장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따뜻한 심성의 룸메이트 주희(권소현)를 만난다. 그러나 한별(박한솔)의 등장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이를 한별 입장에서 보자면? 지원이야말로 ‘굴러들어온 돌’이다. 그것도 공장에 오랫동안 함께 다니며 의지해온 자신과 주희 사이에 낀. 그래서 한별은 두 사람을 떼어놓는 데 골몰한다. 그것이 조금 비겁한 방식일지라도. 이런 한별을 단순히 빌런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건, 22살 어린 나이에 산재사고가 빈번한 공장에서 반장을 맡을 만큼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단히 증명하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서다. <휴민트>의 클라이맥스에서 조 과장(조인성)과 황치성(박해준) 사이에 고립돼 황치성의 총알을 맞는 소녀(박한솔)에게 연민을 느낀 관객이라면, <새벽의 Tango>속 한별에게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기울 것이다.
- 동생을 부양하는 고등학생을 다룬 단편영화 <오토바이와 햄버거>를 인상 깊게 본 김효은 감독이 박한솔 배우의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내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일본에 놀러 가는 날 인천공항 화장실에서 DM을 받았다. 정성스레 쓴 편지 같은 DM이라 감동이었다. 빌런 역을 많이 맡아보지 못했는데, 감독님이 내게서 그런 모습을 봤다는 게 감사했고 시나리오를 보니 한별 역에 도전하고 싶었다.
- 한별은 첫 등장부터 인상 깊다. 눈에 띄는 핑크색 의상을 입고 “조장을 어떻게 같이해요!”라고 소리 지르며 등장한다. 그런 다음 다른 캐릭터들과 끝까지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배우로서 한별을 어떻게 분석했나.
한별은 분위기를 전환하는 캐릭터다. 연극과 뮤지컬 <레미제라블> 속 테나르디에 부부는 웃음을 담당하는데, 두 캐릭터가 있기에 작품을 끝까지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연극 수업 때 배웠다. 작품 전체 구조로 봤을 때 한별이 그같은 역할이었으면 했다. 그럼 영화도 재밌어지고 캐릭터도 더 매력적일 것 같았다.
- 22살 공장노동자인 한별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다. 모두가 동일하게 착용하는 공장 작업복 머리 부분을 머리끈으로 묶어 동그랗게 만들고, 빨간색으로 ‘한☆’이라고 이름까지 써놓았다. 다른 캐릭터와 갈등할 때 천연덕스럽게 고데기로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대사 이외의 많은 것들이 한별을 설명한다. 직접 아이디어를 낸 소품도 있나.
한별은 내적 결핍으로 소유욕이 강한 캐릭터고, 모든 물건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사실 한별은 공장을 벗어나면 평범하디평범한 사람이다. 그 점을 감추고자 드센 말투와 행동을 일삼는다. 미술팀과 의상팀에서 그런 한별을 표현해주는 소품과 의상을 잘 준비해주셨고, 내가 아이디어를 낸 건 펜이다. 한별이 주희를 다단계에 포섭시키는 장면의 경우, 시나리오엔 소품으로 서류만 등장하는데 미술팀에 붉은 펜 하나를 부탁했다. 공장 사람들을 설득해 많이들 가입시켜봤을 테니까 서류 여기저기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대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 패키지 선물 나갈 거고…. 의무 금액 꼭 해야 된다? 포인트 금액 두배니까!”라면서.
- 최근 대학 동문인 권소현 배우 유튜브에 출연했다. 학교에서의 인연을 영화 촬영 현장에서 만나니 어땠나.
학교에서 접촉한 적은 없었지만, 언니가 진정성 있고 좋은 배우란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언니가 주희 역에 캐스팅됐을 때 같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라고 밝히고 친해져야지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현장에서 친해졌고 영화제들을 돌면서 더 돈독해졌다. 현실과 유사하게 영화 속 주희는 한별이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다.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선 엄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비록 한별은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 반면 지원과는 갈등 관계다.
지원에게 조장 자리를 뺏겼는데 주희까지 뺏길까 걱정한다. 그래서 지원을 도발하고 주희와 지원 사이를 이간질하려 든다. 그만큼 한별에게 지원은 눈엣가시이자 자신의 마음대로 안되는 사람이다.
- 공장 숙소에서 조촐하게 술과 건어물을 먹을 때도 지원에게 “언니는 친구한테 통장 왜 빌려준 거예요?”라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도 왜 대포 통장 피해자가 됐냐고 물으며 긴장감을 높인다.
당시 감독님이 건어물 씹는 소리를 아주 크게 내달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웃음) 지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 위해.
- 지원과는 은근하게 기싸움을 하다가 후반부에 본격적인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연이도 액션을 많이 했고 나도 연극영화과 출신이라 이렇게 저렇게 주고받으며 무난하게 소화했다. 다만, 발 밟히는 등 까다로운 장면은 무술팀에서 도와주셨다.
- <휴민트>에선 액션 연기가 더 고됐을 것 같다.
<새벽의 Tango> 이후에 <휴민트>를 촬영했는데 컷마다 피를 새로 다 분장해야 해서 까다로웠다. 촬영지인 리가의 날씨가 몹시 추워서 한번에 잘해내고 싶었다. 그에 비하면 <새벽의 Tango>의 액션은 말 그대로 ‘땅고’였다!
- <새벽의 Tango>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박한솔 배우의 세 번째 영화다. 배우 전체 필모그래피에서 이 작품은 어떻게 기억될까.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 촬영 현장 모두 정말 재밌었다. 함께 준비해 연극무대를 완성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이 작품 이후로 <휴민트>와 다른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영화의 작업이 이어지기도 했다. <새벽의 Tango>는 나에게 연기를 새롭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 차기작 계획도 들려달라.
또 다른 KAFA 장편 과정인 <그날의 태주>에서 태주 역을 맡았다. 한별과 180도로 다른 캐릭터라 쉽지 않았지만 행복하게 촬영했다. 그리고 단편영화 한편을 직접 쓰고 연출했다! <걸스카우트 하고 싶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지난해 10월 촬영했고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걸스카우트에 가입하고 싶은 딸과 반대하는 아빠가 주인공인데, 딸 캐릭터는 아빠의 반대 이유를 직접 듣지 못하지만 일련의 일들로 집안 사정을 깨닫고 자신만의 걸스카우트를 만든다. 아빠 역에는 <휴민트>에 함께 출연한 이신기 선배가 맡았다! 첫 연출작인데 초호화 캐스팅이다.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