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의 ‘혜란’은 은혜 혜(惠)에 난초 란(蘭)을 쓰나.
그렇다. 내 동년배에선 흔한 이름인데 성이 염씨라 희귀하게 들린다. 내 이름으로 온전히 불린 지가 얼마 안됐다. 주로 별명으로 불렸던 것 같다. 아직도 ‘염혜란씨 모십니다’와 같은 말을 들으면 괜히 어색하다.
- 연기할 때 배역명에서 캐릭터의 성정을 유추하기도 하는지.
<비밀의 숲>을 보면서 이수연 작가가 ‘황시목’처럼 쉽게 각인되는 이름을 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라이프>에 출연했을 때 이수연 작가에게 내 배역, 강경아의 뜻을 물어봤다. 답을 들었는데도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큰 의도는 없는 이름이었던 것 같다. (웃음) <빛과 철>의 영남이나 <더 글로리>의 현남처럼 ‘남’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전사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어떤 세대는 딸 뒤에 태어날 존재를 위해 여성의 이름에 ‘남’을 붙였으니까.
- <내 이름은> 또한 이름의 원류를 찾는 영화다. 4·3에 제대로 된 명칭을 부여해 개인과 사회의 아픔을 위로하는 영화인데.
서정성이 큰 시나리오였다. 우리가 타인의 이름을 기억 못할 때는 있어도, 그 사람에게 이름이 없는 경우는 없지 않나. 그런데 4·3에겐 이름이 없다. 이 사실을 중심에 둔 채 정순이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여기에 아들 영옥으로 대표되는 다음 세대의 이야기가 합류한다는 점이 문학작품처럼 읽혔다. 또 4·3을 다룬 영화라고 하면 과거의 고통에 집중하지 않을까 속단하기 쉬운데, 두 모자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4·3의 비극을 되짚는 점이 좋았다.
- 언급한 대로 정순의 평범한 일상에 집중하는 영화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정순을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고약한 노인이 아닌, 아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어머니이자 제자들의 존경도 받는 무용 강사로 그린다.
4·3 피해자들의 증언집을 보면, 자료 속 피해자들은 처참한 슬픔을 진술하는 동시에 이어지는 삶을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본인이 겪고 들은 비극을 말하면서도 양녀로 입양간 가정의 기운 가세를 물질로 일으켰다는 증언을 덧붙인다. 피해자들은 고통을 넘어 삶에서 쟁취한 힘을 고백한다. 영화의 선택이 옳다. 참사와 비극을 편협하게 응시할 일이 아니었다.
낯선 감정을 맞닥뜨리고 싶을 때가 있다
- 지난해 4월3일 크랭크인했고, 올해 4월3일 제주에서 개봉 전 시사회를 열었다.
세상에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영화다. 내가 시나리오를 받은 시점도 꽤 오래전이니까. 크랭크인도 하기 전인 2024년 12월엔 영화의 제작발표회를 위해 제주를 찾았다. 제주 지역 언론의 한 기자는 이 작품이 대중영화로서 반드시 완성되길 바란다는 소감을 전했고, 어느 식당 주인은 4·3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이야기만 듣고도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모든 제주 도민들이 이 영화를 응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막중한 책임감이 들더라. 하지만 이 마음으로 연기를 하면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중한 응원은 가슴 한쪽에 잘 담아두고 보통의 작품을 대하듯 이야기에 접근해갔다.
- 정순의 외양을 직접 스타일링했다고. 영화를 보고 나면 실크 소재의 스카프와 선글라스,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스커트 등 정순만의 룩이 각인되는데.
미디어가 재현하는 피해자의 전형을 피하고, 자기만의 멋을 아는 여자로 그리고 싶었다. 정순은 자신만의 일상이 있고, 경제활동도 하는 집안의 가장이다. 더군다나 한국무용을 가르치는 사람이니 행색이 멋지길 바랐다. 정순은 쿨한 여자고, 그 쿨함은 정지영 감독님과 닮았다. 그래서 감독님을 열심히 관찰했다. (웃음) 선글라스는 스타일도 드러내지만 과거를 직시하지 못하는 정순의 방어기제를 은유하는 느낌으로 써봤다. 스카프의 경우 제주의 바람을 표현하는 소재가 있었으면 했다. 살풀이의 천을 언제나 몸에 지닌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것도 염두에 뒀고. 늘 제주 갈옷을 입는 설정도 후보에 있었다. 그런데 갈옷을 입으면 의도 이상의 맥락이 덧붙을 것 같아 제외했다.
- 이전에도 배우 본인의 물리적 나이보다 연령이 높은 배역을 연기한 적 있지만, 이번 작품은 정교한 특수분장 없이 신산한 세월을 통과한 장년 여성을 그려야 했다.
세월을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사람의 연륜은 분장으로 커버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 연륜엔 세월에 마모한 상처가 있다. 나는 아직 상처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아 모든 게 아픈데, 어떻게 인생 선배들의 “아무것도 아니야”의 깊이를 따라가겠나. 그저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굳은살 위로 다시 새살이 돋았지만, 그 밑에 자리한 상처에 가닿기 위해 노력했다.
- 스치는 대사나 행간을 통해 짐작해본 정순의 전사가 있나.
어린 정순이 4·3을 겪은 후 밥도 안 먹고 온종일 울어 양아버지가 귀신이 씐 줄 알고 무당에게 보낸다. 그 문장 한줄이 유독 눈에 밟혔다. 그 어린아이가 자기가 목도한 학살을 전부 기억했다는 것 아닌가. 아픈 기억을 홀로 감당하기가 얼마나 괴로웠겠나. 정순은 담담한 어조로 과거를 회고하지만 내뱉는 단어마다 회한이 응축돼 있다.
-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살풀이 독무 못지않게 쉽지 않은 장면이 정신병원의 상담 시퀀스 아니었을까. 영화에선 교차편집으로 플래시백이 덧붙지만 이 시퀀스만 따로 떼어보면 오직 독백만으로 화면의 장력을 만들어야 했다. 정순이 과거를 구술한 이후 사라진 기억을 직면하기로 결심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도 중요한 장면이다.
연극을 경험한 것이 도움이 됐다. 무대가 만든 인습이 아직 몸에 남아 있어 ‘한번 더 가겠습니다’가 아직도 어색하다. 연출자나 외부 상황으로 연기가 중단되는 건 익숙한데 배우가 자의로 장면을 끊는 건 용납이 안된다. 영화를 볼 땐 플래시백이 들어가겠지만 나는 목소리만으로 영상을 그려내야 했다. 긴 대사를 읊으며 정순의 감정 속으로 조금씩 들어갔다. 그런 때가 필요하다. 멈추지 않고 쭉 감정을 몰아가는 경험.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기진맥진한 김경자를 보여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 장면을 사흘에 걸쳐 나눠 찍었는데, 사흘째엔 그만 내가 기력을 회복해서 현장에 갔다. (웃음) 배우에게 긴 시간이 허락되면 종종 예상치 못한 감정에 가닿곤 한다. 들어가지 않으려 했던 심연에 끝내 도달하기도, 미처 준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배역에 집중하기도 한다. 평소 나는 대본을 읽으며 천천히 캐릭터의 이야기를 속으로 곰삭히는 편이다. 하지만 집에서 철저히 준비해가도 현장에서 최대한 낯선 감정을 맞닥뜨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의외성을 만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춤추려고 하지 마
- 정순은 “좋으나 궂으나 춤추면 그만”이라고 말하며 무용을 삶의 일부로 체화한 채 살아간다.
한국무용은 느린 호흡을 요한다. 이 점이 연기와 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한국무용 선생님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뭔지 아나. “춤추려고 하지 마”였다. 나는 무용을 배우러 왔는데 춤을 추지 말라니. 약간 화가 났다. 그러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연기 레슨을 하지 않는데, 한동안 입시생들을 가르칠 때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연기하려고 하지 마”였다. (웃음) 기술로 접근하기 이전에 오롯이 감정을 느끼라는 요지였다. 결국 무용 선생님도 같은 말을 하신 거다. 기본 숙지도 안됐으면서 자꾸 동작에만 가닿으려는 자신을 반성했다.
- 많은 관객들이 훗날 정순의 살풀이로 <내 이름은>을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감독님 이하 모두와 합심해 만든 장면이다. 바람이 무조건 필요한 장면인데 지형 자체가 폭 안기는 구조라 바람이 닿지 않았다. 살풀이는 발동작이 중요한 춤이다. 그런데 보리밭 내부가 걷기조차 힘들어 발을 사용하기가 용이치 않았다. 와중에 동작에 집중하려니 자꾸 내 안으로 골몰하지 못한 채 감정을 놓치는 것만 같았다. 장소를 바꾸거나 시간대를 바꿔가며 여러 번 촬영한 신이다. 정지영 감독님은 정확한 동작보단 정서 위주로 표현하길 원하셨다. 춤추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정서를 담으려 하셨다.
- 이 장면이 영화의 절정이 될 게 명백하다면 정확한 콘티나 분명한 동작 순서가 있는 편이 마음이 편하지 않나.
처음엔 살풀이 이외의 춤을 고려했다. 살풀이가 4·3을 자동연상할 법한 춤이라 식상할 것 같았거든. 북춤과 같이 격렬한 춤사위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연습을 할수록 살풀이가 정답이라는 걸 체득했다. 아기를 안듯 천을 품안으로 가져오거나 하늘을 향해 천을 벗길 때면 해원의 마음이 곧바로 몸에 동화됐다. 여의치 않은 현실에서 춤이 그나마 기도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영화에선 편집됐지만 어떤 테이크에선 울분을 과격하게 해소하고 싶었다. 마치 절정에 달한 무당처럼 하늘을 향해 뛰기도 했다. 총 7분 길이의 안무를 준비했다. 진혼과 해소를 거쳐 한라산을 향해 마무리하는 춤이었고 내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어 움직였다.
- 같은 지역,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폭싹 속았수다>의 광례는 제주 토박이가 아니라 표준어를 사용한다. 반면 <내 이름은>의 정순은 제주 토박이라 지역 사투리 구현이 중요했겠다.
내가 사투리 구사자라 그런지(염혜란의 고향은 전남 여수다.-편집자) 리얼리즘적 사투리가 아니라면 연기하기가 어렵다. 감독님은 이 작품이 4·3에 관련된 첫 대중영화라 자막 없이도 제주 방언이 즉자적으로 관객에게 들리길 원했다. 그래서 제주 사투리의 정교한 구현보다는 뉘앙스 정도만 살리길 요구했는데, 사투리의 코어는 어미의 활용이다. 어미 변화 없이 뉘앙스로만 사투리를 쓰는 게 훨씬 어렵다! 제주도 사투리를 열심히 배웠다. 제주도민들이 듣기에 어색하지 않은 말투를 구현하려고 무지 연구했다. 아들 세대의 배우들은 육지 문화에 익숙할 테니 제주 사투리를 안 쓰더라도, 평생 제주에서 산 정순만큼은 사투리를 구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영화의 엔딩에 직접 김민기의 <친구>를 불렀다. 처음엔 이를 거부했다고.
정순보다는 김민기 선생의 잔상이 먼저 떠오를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을 바꿨다. 젊은 보컬 트레이너를 만났는데, 그분은 이 노래를 모르더라. 그러니까 이 곡을 모르는 세대도 분명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원곡이 지닌 상징성을 모르고도 관객들이 <친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응했다. 불러보니 경지를 요하는 노래였다. 춤을 배울 때처럼 “노래하려고 하지 마”의 노래였다. 이 곡의 정서를 온전히 전하려면 김민기 선생처럼 시를 낭독하듯 읊조려야 하는데 나는 왜 음정과 박자에만 정신이 팔린 채 담담하게 부를 수 없는지 자책하며 녹음했다.
- 언젠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릴리 프랭키를 두고 “연기하지 않는 순간에도 그저 인물로 존재하는 게 아름답다”라고 평한 적 있다. 배우 염혜란의 연기도 언제나 지극한 현실을 포착해낸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만 추구하지 않고, 혹은 추구하지 못하고 생활인으로서 현실도 산다. 그 현실에 발붙인 모습이 긴요한 역할로 자주 분했던 터라 과분한 칭찬도 받았다. 분명 배우로서 내가 지닌 강점이겠지만, 배우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땐 지극히 일부이길 바란다. 현실감만 가지고는 좋은 배우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의 내겐 일상을 뛰어넘는 감각이 종종 필요하다. 일상적 인물을 연기하다 보면 내게 친숙한 현실의 모습을 가져다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캐릭터의 일상과 자연인 염혜란의 삶은 또 다르다. 그의 일상을 잘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