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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황동만은 정말 데뷔할 수 있을까 - 중예산 담당자가 말하는 드라마 <모자무싸>와 신인감독들의 현실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의 주인공 황동만(구교환)은 20년째 장편영화 감독 데뷔를 준비해온 인물이다. 1화에서 그는 ‘영화진흥협회’의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이하 중예산) 최종심까지 올라갔으나 고배를 마신다. 하지만 8화에서 그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예비 후보작이었던 그의 시나리오 ‘날씨를 만들어 드립니다’가 후순위로 지원 확정을 받은 것이다. 영화사 고박필름의 대표 고혜진(강말금)이 “야 김 PD, 제작부 꾸려”라고 말하는 순간, 황동만은 자신이 감독으로 데뷔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한다. 나는 속으로 응원했다. ‘야, 황동만, 축하한다. 너 진짜 감독으로 데뷔하는구나.’

바로 그 순간, 현실 속 중예산 담당자이기도 한 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중예산 지원이 확정되는 바로 그 시점부터 황동만은 더 냉혹한 현실과 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중예산 지원을 확정받고 제작사가 정해졌다고 곧바로 영화가 제작되는 게 아니다. ‘나이 든 신인감독’이란 리스크, 주연배우 캐스팅 난항, 손익분기점과 배급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황동만은 메인 투자계약 거절이라는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모자무싸>의 황동만을 현실 속 중예산에 굳이 대입하자면 ‘가군’ 지원작의 연출자에 가깝다. 중예산 가군은 순제작비 20억~30억원 규모의 작품군이고, 실제로 신인감독이 가장 많이 포진한 구간이다. 우선 지원약정 체결 이후 황동만은 제작자인 고혜진과 함께 4개월 안에 모든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가군의 신인감독 작품이 메인 투자배급사의 투자심의 테이블에 오르려면 당연히 캐스팅이 선결돼야 한다. 그러나 그 투자배급사들이 선호하는 리스트에 오른 배우들은 이미 정해진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쁠 가능성이 높다. 혹여 그들에게 황동만의 시나리오가 전달되더라도 출연을 검토하고 결정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게 캐스팅 답변을 기다리는 사이, 한두달은 쉽게 지나간다.

중예산을 통해 순제작비의 40%가량을 지원받더라도 황동만은 나머지 60%의 순제작비와 P&A 비용(홍보마케팅비용)을 투자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대개 투자배급사들은 제작비 20억~30억원대 규모인 신인감독의 영화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한국영화 메인 투자조합을 운용하는 창투사(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의 줄임말로, 통상 벤처캐피털을 의미한다.편집자)를 찾아가도 마찬가지다(정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한국벤처투자주식회사가 운용하는 모태펀드에 국고 또는 영화발전기금을 출자한다. 창투사들은 공공자금을 기반으로 한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사업에 참여해 일반 투자자들의 자본을 추가로 끌어들이고 한국영화를 투자·제작한다. 창투사는 배급사가 아니므로 작품을 개봉하려면 배급사와 별도로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편집자). 이들은 배급 계약, 특히 P&A 비용을 투자할 배급사가 따라붙지 않는다면 쉽게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캐스팅, 투자 및 배급계약까지 모두 운 좋게 맞물려야만 총제작비 조달계약 서류의 퍼즐이 마침내 완성된다. 그 서류를 영화진흥위원회에 제출하고 지원사업 부속합의 약정서를 체결하면 드디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그러나 영화는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제야 제작부와 연출부를 꾸릴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을 뿐이다. 만약 메인 투자배급사 또는 창투사의 투자심의 단계에서 탈락하면 지원금은 ‘그림의 떡’이 되고, 영화는 결국 엎어진다. 20년 만에 감독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던 황동만은 다시 ‘감독 지망생’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현실의 황동만이 위에서 언급한 관문들을 모두 통과할 확률은 채 50%가 안될 수도 있다.

<모자무싸>는 ‘무가치함’과 싸우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가치’란 무엇인지 묻는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를 두고 “그때 감독 데뷔 못하면 바보 소리 들었지”라는 말이 지금도 회자되곤 한다. 과장이 섞여 있지만, 적어도 당시 감독 지망생들은 한번은 ‘링’ 위에 올라 “액션”을 외칠 기회가 있었다. 적어도 ‘데뷔’란 걸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 속 황동만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훨씬 더 불리한 구조 속으로 밀려나 있다. 지금 한국 영화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단순히 영화 한편의 흥행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극장 관객 감소와 투자 위축, 배급 양극화로 중·저예산 영화들이 점점 더 불리해져가는 구조이다. 이런 가운데 중예산 가군은 신인감독들이 장편 데뷔에 도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에 가깝다. 하지만 가군 구간과 비슷한 규모의 영화들 중 지난 10여년간 손익분기점을 넘긴 비율은 한해 평균 10%대에 불과하다. 즉 투자자들이 거의 돈을 잃게 되는 구간이란 뜻이다. 이런 가운데 신인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두고 투자심의가 열린다면 메인 투자배급사나 창투사가 축적한 데이터에 따른 영화적 재미와 높은 관객 동원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드라마 <모자무싸> 속 황동만은 제작자 고혜진의 선택을 통해 링에 오를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넘치는 애정으로 봐주는 변은아(고윤정) 같은 프로듀서나 승부사 기질이 강한 고혜진 같은 제작자를 만나지 못해, 끝내 링 위에 오르지 못한 채 사라지는 황동만이 훨씬 더 많다. 성인이 된 이후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영화에 걸었던 사람. 20년째 영화만 바라보며 버텨온 사람. 끝내 자기 이름 석자가 크레딧에 오른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 악다구니처럼 싸우고 있는 사람. 어쩌면 드라마와 현실 속 황동만 모두가 단순히 감독 ‘데뷔’만을 꿈꿔온 사람들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끝내 영화로 증명하기 위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황동만이 동네 뒷산에서 자기 이름을 종종 외치던 장면을 잊지 못할 것 같다. 한 영화감독 지망생의 절규가 아니라, 아무도 자신의 ‘가치 있음’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계 안에서 끝내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우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이의 처절한 외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를 만들어야 감독이고, 영화가 완성되어야 가치가 발생한다. 만든 영화는 없는데 감독 호칭만 남은 사람인 황동만은 시장이 매길 수 있는 가격표 바깥에 서 있는 존재다. 바로 그 모순 때문에 황동만은 가장 쉽게 ‘무가치한 존재’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아직 감독이 되지 못한 감독 미수생이 쓴 시나리오와 그들의 삶을, 쉽게 무가치하다고 폄훼할 수 있을까. 시장은 영화로 완성되지 못한 시나리오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지만, 끝내 영화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황동만이 견뎌낸 시간을 시장가치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어쩌면 IMF와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숱한 위기 속에서도 한국 영화산업이 완전히 폐허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감독 데뷔를 준비하던 숱한 황동만들이 책상 위에서 버텨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신인감독들이 등장해 한국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부디, 제작자든 투자자든 그 누구든지 간에 현실 속 황동만의 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번만 잡아주시라. <모자무싸> 속 변은아와 고혜진이 그랬던 것처럼. 그 황동만이 미래의 박찬욱이 될지, 봉준호가 될지, 아니면 끝내 단 한편의 영화로 멈춰 설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끝으로 지난 4월13일 중예산에 선정돼 지원약정 체결 이후 지금도 캐스팅 여부를 알리는 답변을 기다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밤늦게 책상 앞에 앉아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투자사를 찾아다니고 있을 현실의 황동만들에게 응원하는 마음을 전한다. 하필이면 영화를 만나는 바람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직 ‘영화를 쓰고 만드는 일’에서만 찾도록 설계된 모든 영화인들께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그들을 향한 응원문이다.

- 스스로를 정책 ‘엔지니어’로 여기며 사는, 영화진흥위원회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담당 김태형 차장 올림

* 본 글에 기술된 내용에 대한 해석과 의견은 영화진흥위원회의 공식 입장이 전혀 아니며, 필자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특정한 회사나 특정 분야를 폄훼하려는 의도 또한 전혀 없다는 점 양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