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민 아우라픽처스 대표, 오세경 감독, 이화배 배급사연대 대표, 김민혜 KC벤처스 본부장, 김성훈 감독(왼쪽부터).
- 자기소개와 함께 중예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 부탁한다.
정상민 15년 전 <부러진 화살>부터 정지영 감독의 영화를 제작해왔다. 다른 감독의 독립영화들도 제작했고 때때로 배급도 한다. 그리고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중예산을 통해 <내 이름은>을 제작했다.
김성훈 상업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 <공조> <창궐> <나혼자 프린스>를 연출했고, 제작자로서는 독립영화 <결혼, 하겠나?>와 상업영화 <킬링 로맨스>를 제작했다. 최근에는 시리즈인 <골드랜드> <수사반장 1958>도 연출했다. 지난해 중예산 예심, 올해는 결선 심사를 했다.
이화배 지난해 12월에 만들어진 배급사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 커리어 초기에는 시네마서비스에서 극장 배급과 부가판권 유통 업무를 오래 했고, 관리자가 되면서 투자와 마케팅 업무도 했다. 독립해서는 상업영화 이외에 독립영화를 많이 배급했다. 중예산 초기 설계 당시 연구 업무를 담당했고, 첫해에 예심 심사위원이었다.
오세경 감독 데뷔 준비를 오래 했다. 올해 중예산 가군에 뽑혀서 작품을 준비 중이다. 영진위에서 지원 제도에 당선된 게 이번이 네 번째다. 중예산뿐 아니라 여러 공모 사업에서 수혜를 받아 오늘 대담에 온 게 아닌가 한다.김민혜 KC벤처스는 영화계정 모태펀드의 메인 영화 펀드 2개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KC벤처스가 메인 투자한 영화들로는 <노이즈> <만약에 우리>가 있다. 두 작품 다 다행히 성과가 좋았다. 지난해 중예산 지원 확정작 중에서는 <몽유도원도>와 <여섯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을 메인 투자했다. <몽유도원도>는 벤처캐피털인 펜인베스트먼트와 공동으로 메인 투자를 한 작품이다.
- 각 분야에서 경험한 중예산의 면면을 들려달라.
정상민 아우라픽쳐스는 중예산 사업 첫해에 지원을 받았고, 첫 번째 영화로 <내 이름은>을 완성시켰고, 첫 번째로 개봉했다. 투자 과정은 참 힘들었다. 소재 자체에 대한 기피도 있었지만, 코로나19 여파가 컸던 2022~23년 당시 영화 투자 자체가 아예 안 이뤄졌다. 2024년 텀블벅에서 후원을 열고 초기자금 4억원을 마련했고, 배우와 스태프들이 지분 투자로 참여하면서 제작비를 초기 60억원에서 30억원 수준으로 낮췄다. 추가로 기술보증보험에 문화산업완성보증 제도를 통해 10억원을 대출받았고, 순제작비 20억원이 조금 넘는 돈을 확보해놓은 상황에서 중예산 공고를 봤다. 지원해 순제작비 30억원을 맞출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P&A비용(홍보마케팅비용)까지 추가로 마련했었다. 한국영화는 첫 단계인 투자가 잘 안되면 끝 단계까지 어렵다.
이화배 현재 투자 환경에 관해 덧붙이자면, 투자배급사의 메인 투자로 총제작비를 조달해야 하는데 다른 투자자들의 비중이 떨어지다 보니 투자배급사의 자기 자본 비율이 높아졌다. 코로나 전에는 투자배급사가 제작비의 30%를 투자하면 대부분 제작이 진행됐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자계정 30% 프로젝트는 적어지고 50%까지 올라갔다. 투자 때문에 제작이 멈춘 것이라 본 영진위가 투자배급사의 자계정 비율을 30%로 유지할 수 있도록 빠진 부분을 중예산으로 보완하려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면 투자배급사가 원활하게 기존 방식대로 신작을 제작하지 않을까 하고. 막상 지난해 중예산을 진행해보니 현실은 달랐다. 총제작비의 30%를 영진위가 지원하더라도 투자배급사가 좋은 조건이라고 받아들여 결정하지 않은 것이다. 첫 시도부터 이런 문제가 나타났다.
김민혜 중예산이 총제작비를 낮추는 효과가 확실해서 플러스 요인이긴 하지만, 투자를 결정지을 확실한 요인으로 볼 수는 없다. 투자자는 작품만 보지 않고 캐스팅만 보지도 않는다. 배급사가 잘 붙었는지, 나머지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건지, 모든 요소를 보기 때문이다.
- 올해 중예산 지원을 받은 오세경 감독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김성훈 감독의 경험도 궁금하다.
김성훈 우선 중예산을 시도한 영진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이번 중예산 심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문제점은 나군으로 만들어야 하는 영화를 가군으로 서류를 넣는 등 영화의 규모와 섹션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군의 시나리오를 읽을 때 20억~30억원 예산으로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예산서를 보니 못 만들겠다 싶었다. 너무너무 힘들게 짠 예산들이었다. 지원작 절반 이상이 그랬다. 장르적으론 공포영화가 많았다. 하지만 가군은 총제작비의 30%를 영진위로부터 확보하더라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돈을 벌어들이리란 확률이 상당히 낮은 작품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군에 지원하는 작품의 편수를 줄이더라도 제작비를 더 지원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리고 P&A 비용까지 지원해야 한다. 가군은 100만~200만 관객을 동원해도 수익률이 좋다. 투자자 입장에선 적은 돈을 들여서 배당을 많이 받을 수 있지만, 여러 요인으로 인해 전액 손실을 기록하는 게 현실이다. 가군 영화를 투자하는 노하우가 쌓여야 하는데 다들 그 경험치가 없다. 요약하자면 가, 나, 다군 각 섹션의 규모에 맞는 정확한 영화들을 선정하고 관객도 투자자도 다양한 영화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오세경 한국영화계가 코로나 이전에 쌓아온 데이터들을 지금은 못 쓰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지표로 삼을 만한 새로운 데이터가 쌓이지도 않았다.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 <살목지>는 지표가 될 만한 작품이지만, 100억원 이상의 블록버스터영화들과 10억원 미만의 독립영화들 그 사이가 비었다는 위기감으로 영진위가 중예산을 설계했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올해 중예산 당선작 <우리학교 보안관>으로 데뷔를 준비한 지 5년이 지났다. 물론 그사이 다른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권은 안 가져가는 공모전에 당선됐지만, 그 시나리오도 작품으로 제작되지 않으면서 멈춤 상태에 놓인 프로젝트가 쌓여 있다. 그래서 중예산 자체에 정말 감사하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나는 중예산의 최대 수혜자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후 단계를 밟기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캐스팅, 펀딩, 개봉까지 다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보완 장치의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구간별 상황에 맞게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는 게 이 시장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심사를 통해 작품들을 뽑아도 전체 시장의 위기 상황으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기회가 날아갈 수 있다.
김성훈 참고로 지난해 예심에는 연출자 이름이 공개됐었지만, 올해는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기성감독들이 정말 많이 떨어졌다. 나는 이제 신인이냐 아니냐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작품만 찍은 연출자도 기성으로 분류하고, 오세경 감독처럼 몇년간 열심히 글을 쓰고 당선됐지만 영화 시장이 어렵다보니 아쉬운 일을 겪는 사례도 있다. 그러므로 기획력만 가지고 심사하는 게 맞고, 올해 시도된 블라인드 심사는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치열하고 취약한‘가군’
- 오세경 감독이 지원 확정을 받은 가군을 포함해 나머지 구간의 상황도 설명해주면 좋겠다.
오세경 일단 다군은 60억~100억원 규모라 영진위로부터 큰 예산을 받아 집행해야 하기 때문에 캐스팅이나 투자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경우가 많다. 나군 일부도 그렇다. 그래서 나, 다군에는 기성감독이 많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전체 중예산 지원작 수를 보면 가군이 약 절반을 차지한다(올해 중예산 지원작은 총 334편, 그중 가군 지원작이 146편이다.편집자). 예산은 작지만 가군에 지원자가 몰린다. 신인이 많고 경쟁이 정말 치열하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선 가군 규모의 영화가 가장 취약하다. 그렇다면 공공은 반대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시장과 산업이 거들떠보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공공이 가군 영화들에 자원을 더 투입하여 인큐베이팅해서 배급까지 골인시켜야 생태계가 더 빨리 복원될 것이다. 가군은 신인이 많은 구간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작품들이 많은 지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화배 지난해 가군에 선정돼 완성된 작품은 2편이었다. 하나가 <내 이름은>이고 다른 하나가 <도라>다. 지난해 설계로는 가군에 2편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이 구간의 수요가 많아서 영진위가 올해 7편으로 늘렸다. 하지만 이 규모의 영화들이 시장에서 실패가 크고, 제작이 잘 안된다. 그런데도 선정작을 많이 배출해놓으면 어떻게 될까 의구심이 든다. 나는 중예산 설계에 아쉬움을 느낀다. 60억~100억원대 제작비인 다군의 편수를 늘려서 중예산 전체 편수가 줄더라도 시장에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가군 비중을 늘려 전체 중예산 지원작 편수를 늘린 설계는, 시장에서 신작을 많이 못 만드니까 중예산으로 16편을 선정해주면 전체 영화 제작 편수가 그만큼 는다는 식의 발상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선 그 공식이 작동하기 힘들다. 오랫동안 한국영화계는 30억~80억원 사이를 중예산 영화로 규정해왔다. 그런데 가군을 통해 30억원 미만 영화까지 중예산으로 확장하고, 다군으로 100억원 미만 영화도 중예산에 포함시켰다. 대상이 되는 작품의 규모를 확 늘렸고 예산도 전보다는 늘렸으니까 산술적으론 타당해 보일지라도 시장에서 작동할까 미지수다. 김성훈 감독의 아이디어처럼, 최소한 가군이라도 배급까지 확장해서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 시장에 공급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 중예산 두 번째 해를 맞아 오세경 감독같이 선정된 연출자들이 나왔고, 추가경정예산으로 올해 동일한 예산으로 한번 더 지원이 이뤄진다(지난 4월 ‘2026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이 의결되어 655.9억원 추경예산이 확정되었다. 이는 영화 분야에서 역대 최대 규모다. 그중 260억원이 중예산에 투입된다.-편집자). 그만큼 중예산이 중요하고, 영진위가 돌파해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제부턴 사업 보완이 필요하다.
위기 극복 위해중예산만으론 부족
- 투자자의 시각에서 중예산 제도를 어떻게 보나.
김민혜 중예산 제도가 신설되면서 벤처캐피털로 투자 제안이 온 시나리오, 메인 투자배급사에 먼저 간 시나리오를 중예산에 먼저 지원하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역으로 우리가 투자를 거절한 작품을 두고 중예산을 받은 뒤 다시 문을 두드리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화배 대표의 말처럼, 가장 많이 선정되는 20억~30억원 규모의 가군은 사실 개봉까지 갈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 이 구간의 작품 수가 늘어나는 데 염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투자사는 모든 요소를 보기 때문이다. 가군의 경우, 캐스팅이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일 수밖에 없어서, 향후 적극적으로 투자를 받아 제작되기 굉장히 까다롭다. 그래서 김성훈 감독의 말처럼 가군 작품 수를 축소하더라도 지원금을 올려서 진짜 끝까지 책임지는 게 나을 수 있겠다. 더불어 중예산 심사위원 중에는 투자자가 없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결국 투자가 돼서 제작이 이뤄지는 게 목적이라면 투자자 출신 심사위원도 필요하다. <살목지>처럼 메인 투자배급사가 이미 선정되었으나 중예산 지원확정작으로 선정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지원 제도와 시장 사이의 간극이 줄었으면 한다.
이화배 심사 단계에서 탈락한 영화가 시장에서 기회를 얻는 사례가 계속 나올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영화 자체의 내재적 특성이기 때문에 100% 예측할 수 없다. 혹시 KC벤처스가 중예산 가군 작품들에 메인 투자한 사례는 없나.
김민혜 없다. 30억원 미만 규모의 영화 투자 결정이 가장 어려워서다.
김성훈 좋은 영화란 뭘까. 이미 감독 시나리오에서 좋은 요소들이 있는데, 제작자와 투자자들에 의해 무뎌지는 경우를 볼 때면 안타깝다. 이번 심사에서도 어떤 작품을 너무너무 선정하고 싶은데 다른 심사위원들이 반대하여 결국 떨어진 사례도 있었다. 심사 때 감독에게 “감독님이 하려던 게 제일 좋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오세경 엔터 산업의 원천인 창작의 풍토에 대한 말씀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작품성에 대한 기준을 다시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시장의 위기는 사실 코로나 전부터 징후적으로 보였다. 작품성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 되었고, 양극화와 쏠림 현상으로 시장은 점점 과열되었다. 위기의 순간에 코로나가 터졌고, 글로벌 스트리밍 확산의 여파로 한국영화가 오랫동안 쌓아온 인프라와 시장, 인력들이 다 빠져갔다. 이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시장에 내놓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중예산뿐 아니라 창작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도 모색하는 게 숙제다.
정상민 중예산이 출범할 때만 해도 한국영화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른 가능성들을 모색하기 위해 다른 기획을 인큐베이팅하자는 취지가 강했다. 하지만 두 번째 해가 되니까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이 사업을 방어할 수 있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중예산 가군을 보호하기 위해 마케팅까지 지원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내 경험상 그 돈을 지원해도 가군의 영화가 시장에서 버틸 수 없다. 스크린독과점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극장에서 <왕사남>을 재밌게 봤다. 관객들도 그 영화를 보고 극장에 갈 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주에 극장에 가도 <왕사남>만 걸려 있다. 신작 영화를 보려면 2~3개월 뒤에 극장에 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군을 제외한 가군, 나군의 영화들이 극장에 개봉할 때 스크린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관객이 보고 검증하는 시간 없이 극장에서 바로 내려버리고, 큰 영화만 버티는 환경이라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영화들을 지키려면 얼마의 제작비를 주기보다 이 구간 영화에 투자해도 시장에서 회수가 된다는 확신을 투자자들한테 심어줘야 한다.
이화배 이번 추경을 통해 가, 나, 다군 외에도 100~150억원 구간을 신규로 2편 선정하는 방향으로 사업 규모를 키웠다. 이미 결정된 상황이라 조심스럽지만, 이미 트랙에 올라온 아이들을 보강해 주는 방식이 아니고 한 트랙을 더 돌리는 방식이 아쉽다. 내년 예산 기획안은 나왔을 테니 지금 단계에서 구상해서 2028년 사업부터는 제작지원만 하는 걸로는 파이프라인이 연결 안되니 보강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왔으면 한다.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오가는 토론을 열어서 유통 관련 사업 아이디어도 나와야 한다고 본다.
정상민 과연 지금 우리가 과거 메이저 투자배급사라고 부르던 곳들을 메이저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1년에 2편의 신작을 제작하는 곳을 계속 메이저라고 부르면서 그 시장 질서를 기본값으로 인정하면서 중예산이란 이름으로 지원해줄 테니 거기서 투자배급 확약서를 받아오라는 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서는 미래가 없다. 올해 들어 한편이라도 투자와 배급을 해본 배급사가 확약서를 써주면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긴 했지만, 새로운 시도를 인큐베이팅하기보다 지원금을 쓰지 못해 불용이 생겨서 내년 사업에 지장이 있으면 안된다는 방향은 위험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중예산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를 봤을 때 한국영화가 새롭게 도약하는 촉매가 된 영화들이어야 할 텐데, 결국 기존에 하던 영화들 몇개로 먹고살았다는 판단이 들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