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제도(이하 중예산)의 주요 목적 중 하나로 신인 창작자의 발굴을 명시하고 있다. 올해 두 번째로 시행된 중예산 지원 제도에서는 신인감독 쿼터(지원 편수의 최소 30%)를 설정했고, 결과적으로는 최종 선정작의 60% 이상이 신인감독의 작품으로 선정됐다.
이후의 문제는 선정된 신인감독들이 실질적인 영화 제작과 개봉을 이어가 업계에 유의미하게 진입할 수 있는지일 것이다. 기성 영화인들조차 선정작의 캐스팅, 투자 및 배급계약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영진위 중예산 담당자인 김태형 차장의 말처럼 “관문을 모두 통과할 확률은 채 50%가 안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예산은 신인감독들에게 어떤 기회로 와닿고 있을까. 또한 당사자인 신인감독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이에 관하여 중예산에 참여한 심사위원, 감독, 제작자 등의 의견을 청취하여 현재 제도의 장단을 살폈다. 더하여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선정된 창작자들의 이야기까지 들어봤다. ‘영화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중예산의 근간이 혹시 독립과 상업 사이를 오가려는 신인 창작자들에게 모종의 허들로 작용하지는 않을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제 2년밖에 되지 않은 사업의 장단을 함부로 판단할 시기는 아니다. 그러나 중예산의 목적이 ‘신인 발굴’로 공인된 만큼 이해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있어 보인다.
“우리 영역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 관련 지원 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감독 A씨는 중예산 의 신인 발굴 가능성을 다소 부정적으로 타진했다. 사업이 이제 경력을 시작하려는 신인감독에게 실질적인 기회로 돌아가기보다, 이미 업계에서 경력을 쌓거나 주요 제작사와 함께하는 이들의 몫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선정 결과를 보며 정지영, 이창동, 변영주 감독 등이 선정되었고 김초희, 정주리 감독 등이 예비 순번으로 올라와 있음을 확인한 뒤, 주변의 신인감독들은 ‘우리가 비빌 곳은 아닌가보다’라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라는 후문이다.
독립예술영화 지원 사업에 선정된 적 있는 감독 B씨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중예산이 만들어지니 원래 시장의 위쪽에 있던 분들이 이곳으로 많이 내려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분들을 비판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산업 전체가 어렵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해당 제도와 기성감독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처럼 개인 단위의 작업을 하거나 작은 제작사를 꾸리는 신진감독들은 중저예산 사업에 가면 경쟁력이 없고, 넘을 수 없는 허들이 있을 것이란 막연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예산에 진입장벽을 느낀 신진감독들은 결국 영화의 예산을 낮춰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몰리는 경향을 보였다. B씨는 “예산을 더 크게 잡을수록 감독의 비전을 온전하게 실현할 가능성이 커지니 좋은 것은 당연”하지만 “중저예산 지원 사업에서 밀려나는 것보다는 제작비 규모를 낮춰 다음 작품을 하나라도 더 찍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씨의 설명도 비슷했다. “꽤 유명한 배우가 캐스팅된 코미디영화였고, 전형적인 중예산 규모의 기획이었는데도 일부러 10억원 미만으로 제작비를 줄여 개발하거나 독립예술영화 사업에 지원하는 경우”를 보았으며 “주로 독립영화나 상업영화 한편을 찍은 연출자들이 중예산이 아니라 대부분 독립예술영화쪽으로 몰리는 경향”을 느낀 것이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는 지향성도 다르고, 제도적으로 다른 분야인데도 상업영화 시장의 파이가 작아지면서 두 영역의 구분이 더 모호해지는 것 같다.”(A씨)
심사위원들도 신선한 도전을 원한다
몇 가지 한계가 있음에도 올해 중예산에 신인감독 쿼터가 생긴 점에는 거의 모든 이해당사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올해 중예산 결정 심사에 참여한 김윤미 영화사 올 대표는 “제작사가 아무리 공신력 있는 곳이라 해도, 신인감독의 작품에 투자하는 일엔 투자자들의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신인 쿼터로 난점을 보완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제도”라고 설명했다. 예비 심사의 블라인드 심사 형태에도 긍정적이었다. “시나리오에 연출자와 제작사의 이름을 가렸더니 도전적인 신인들의 작품이 실제로 본선에도 많이 올라오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중예산 결정 심사에 참여했던 제작자 C씨도 이 사업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방향성은 바람직하다”라는 긍정의 목소리를 냈다. “이제 2년 된 사업이고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방향성 안에서 조금 더 정교하게 손볼 부분들은 있다”라는 정도다. 개선을 바라는 세부 사항 첫째는 순제작비 규모로 가, 나, 다군을 나누어 선정하는 현행 제도다. “실질적으로 신인감독들은 가군(순제작비 20억원 이상 30억원 미만)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규모의 부문은 기성감독, 제작사의 영역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가군 내에서 신인감독들의 경쟁률이 더 높아지고, 좋은 작품이 탈락”할 확률도 커진다는 것이다. 이어서 C씨는 “각 구간과 무관하게 전체 작품 수 중 몇 퍼센트 이상을 신인감독으로 선정한다는 식으로 사업을 수정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윤미 대표의 의견도 마찬가지의 맥락이었다. 실제 올해 본선에 오른 후보작 중에서도 “가군에 신선한 작품들이 많은 상황”이었지만, “나군, 다군에 넣으면 신인이니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로 가군에 신청한 작품들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30억원 아래로 제작하기 어려운 작품임에도 29억9천만원으로 예산을 욱여넣어 지원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는 것이다. “신진 창작자들에게 지금의 상업영화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완전히는 모르지만, 더 변혁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을 내고 그에 맞는 예산안을 꾸린다면 충분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김윤미)
두 번째 한계는 영진위 사업의 고질적 문제로 여겨지는 의무 기한 문제다. 중예산은 4개월 내 메인 투자배급 계약 체결을 의무 기한으로 둔다. 김윤미 대표는 “좋은 기획을 지닌 신인감독, 신인 제작사들의 작품이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의무 기한 내에 투자 체결을 잘 마칠 수 있을지 논의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문서로만 확인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라는 경험을 들려줬다.
C씨 역시 “요즘 영화의 크랭크인 시기는 주연배우의 스케줄에 달려 있는데, 7~8개월씩 촬영하는 드라마 일정이 있다면 의무 기한을 충족하기 너무 어렵다”라며 “정부 사업이다 보니 회계연도의 절차상 문제가 있음은 알지만, 기본적으로 중예산의 취지가 좋고 지속성도 지녀야 할 테니 보완되기를 바란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의무 기한 문제는 독립예술영화 지원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립영화 사업에 선정된 감독 D씨는 “각본에 맞는 계절과 의무 기한이 맞지 않아, 각본을 전면 수정하거나 지원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중예산이든, 독립예술 지원 사업이든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고, 캐스팅까지 마쳐야만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점이 기본이 된 것 같다. 그러니 일정은 급해지고, 서둘러서 찍고, 결과물의 퀄리티는 낮아지는 경향도 생겼다.”(A씨)
중예산을 두고 신인감독들의 허들을 지적한 창작자들, 제도의 보완점을 제시한 제작자들 모두 이번 사업이 실제로 신인들의 등용문이 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는 같은 의견을 모았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제 2년밖에 되지 않은 제도의 실효성을 마냥 비판하기보다는 거론된 사업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선정작이 끝내 개봉할 수 있도록 논의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