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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리하여 이 믿음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 <군체> 연상호 감독, 배우 전지현

연상호 월드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배우 전지현은 강단 있고 의협심 넘치고 즉흥적 판단이 빠른 권세정의 얼굴이 되었다. 어둠 가득한 둥우리 빌딩 곳곳을 종횡하던 그의 긴 팔다리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레드카펫 위에서 시그니처 이미지로 돌변하며 고혹적이고 화려한 위상을 자랑했다. 연상호이기에 가능한 세계관에 전지현이라 가능한 주인공이 만들어졌다. 2020년대 중반에 당도한, 새로운 단계에 올라탄 이름 모를 화학작용이 칸영화제에 그대로 기록되었다.

전지현, 연상호(왼쪽부터). 사진제공 쇼박스

- 처음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경험은 어땠나.

전지현 칸이라니, 정말 모든 영화인들의 꿈이다. 이제 난 그 꿈을 이룬 사람이 됐다. (웃음) 사실 나이가 들면 여자배우로서 이런 기회가 줄어든다고 매일 생각한다. 일이 주어졌을 때 한없이 귀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세계의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해 늘 고군분투하는데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순간 그 감사의 경험이 두배, 세배로 커졌다.

연상호 레드카펫에 오른 전지현 배우를 봤을 때 정말이지 국제적으로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웃음) 우리에게 이렇게나 아름답고 멋진 배우가 있다는 사실이.

- <군체>는 제2의 인지 혁명을 기본 바탕에 두고 출발한다. 소통 불가로 인한 문제를 짚어낸다거나 좀비들과 인간이 정보 싸움을 하기도 하고. 이 ‘정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확장하고 싶었나.

연상호 <군체>를 처음 구상할 때만 해도 AI가 일상에 보편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에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계속해 들여다보다가 나만의 답을 찾았다. 바로 ‘보편적인 사고의 총합’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의 경험, 대다수 사람들의 감정,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 대다수 사람들의 생애주기. 그것에 따라 AI가 답을 하는 거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보편성과 다수성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바로 거기서부터 새로운 디스토피아를 만들고 싶었다. 개별성이 어떻게 휴머니즘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직관적이면서도 서스펜스로 보여주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아주 친근하고 일상적인 캐릭터를 빌려 납득할 만한 주제로 녹이고자 최규석 작가와 오랫동안 논의했다.

- 모든 공간을 뛰어다니는 권세정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와, 멋지다. 그다음으로는, 이거 어떻게 찍었을까. (웃음)

전지현 권세정이 힘들어 보이지만 사실 촬영 현장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너무 재미있게 촬영했다. 무엇보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심지어 일찍 끝나는 날들도 있었다. 정말 행복하게 촬영했다.

- 어디 하나에 꽂히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권세정 캐릭터는 전지현 배우를 반영한 것인가.

연상호 원래 있던 캐릭터 설정이었다.

전지현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천송희 목소리로.)

- 모두가 격앙돼 있고 화나 있는 와중에 세정은 목소리 톤을 낮춘 채로 차분한 구석을 보인다. 사실 현실로 바꿔 상상하면 비현실적 반응이기는 하다. 전지현 배우가 개인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는데 권세정의 톤 앤드 매너를 어떻게 설정했나.

전지현 나는 극박한 상황에 사람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디스토피아 상황에서 권세정은 유일하게 중심을 잃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점에서 가장 큰 매력을 지녔다. 물론 세정이 과하게 의로운 게 이따금 불만이었다. 너무 정의롭다. 그런 지점은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조율해갔다.

연상호 하지만 세정이 너무 감정적인 것도 이상하다. 전남편 한규성(고수)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권세정의 다양한 리액션 방식을 생각했다. 더 격정적이고 노골적인 방식도 있었지만 최종 버전으로는 세정이 혼자 감정을 삭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전지현 배우가 그 균형을 잡았을 때 전체적인 톤이 잘 잡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첫 테이크에 배우들이 각자의 해석을 만들어온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역할은 그것을 최대한 자연스럽고 성실하게 연출로 녹여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의도가 앞서서 ‘그건 아냐’라고 배우들을 말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시나리오를 보고 배우들이 설계해온 것들을 믿고 받아들인다. 그러면 그 결과물이 마음에 들 때가 많다.

- 자기 믿음과 자기 신격화에 적극적인 서영철(구교환). 지금까지 연상호 월드의 계보가 느껴지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연상호 내가 구현한 빌런의 계보로 본다면 가장 비슷한 게 <지옥>의 정진수일 것이다. 굉장히 강력한 자신만의 철학을 안고 있는 친구다. 그리고 서영철도 엄청나게 두터운 철학이 있다. 소통의 불안정에서 오는 비극을 맞닥뜨리면 보통 소통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교육 받는다. 그런데 서영철은 극단에 서서 자신이 그것을 마음대로 바꾸고 회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보편성의 끝쪽에 있는 것, 앞서 말했던 극에 다다른 AI의 모습이기도 하다. 미묘하게 어긋난 태도와 모습들. 서영철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짐승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그것을 구교환 배우가 정말 잘 표현해줬다.

- 일종의 민폐 캐릭터로 등장하는 여자 고등학생. 영화 안에 반드시 필요한 캐릭터였을까.

연상호 민폐 캐릭터인데 심지어 학교폭력 가해자라고 가정해보자. 나중에 피해자와 화해 모드가 형성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짜증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일까. 그냥 용서하려는 것일까. 그때 관객들에게 복수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장면을 연출한 서영철에게 이입할 수 있도록 그의 철학을 관객에게 가볍게나마 연결하는 게 중요했다. 그게 전적으로 옳지 않더라도 (서영철의) 의도가 그럴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도록.

- 마지막 질문이다. 권세정과 공설희(신현빈)가 마주 보는 엔딩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다음 편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연상호 사실 엔딩 장면은 그런 거였다. <다이 하드>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라이터로 비행기를 폭파시키고 듀오로 있던 인물의 “와이프에게 전화해봐”라는 말에 전화하는 침착한 장면이 있는데 약간 그런 느낌이 나길 바랐다. 단순히 개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지막에 권세정을 혼자 남겼던 것은 아니다. 서영철이 좀비들과 소통하는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두 여성이 연대를 이어나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웬만하면 속편은… 시장 형태상 많이 어려운 것 같다. (웃음)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