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록 감독은 <충충충> 편집에 1년 반이란 긴 시간을 들였다. 점프컷, 이중 프레임, 네거티브 등 다양한 편집술이 시도되었다. 보는 이의 감각을 최대치로 자극해야 했기에 한창록 감독의 감각도 총동원해야 했다. “편집에 매달리다가 감각이 마비된 듯할 때 중간중간 쉬기도 했지만 지난한 시간이었다.” 긴 시간이 쌓인 결과물은 영화제에서 환영받았다. <충충충>은 2025년 부산국제영화제 부산 어워드 심사위원 특별상,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상, 2026년 무주산골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 사이키델릭한 오프닝 시퀀스 편집에 많은 노력을 들인 듯하다. 갓 태어난 유충의 이미지로 시작해 용기, 지숙, 덤보 세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이들은 장난치며 노는 것일 뿐인데 관객이 즉각 거부감을 느끼도록.
시나리오에선 “바퀴벌레 이미지와 생일 파티에서 뛰노는 세 사람의 모습이 겹쳐진다”라고 썼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편집을 통해 많이 변주했다. 지금의 버전이 공격적이지만 전체 영화와 잘 어울렸다.
- 유충은 직접 촬영했나.
어도비 스톡에서 구했다. 운이 좋았다. (웃음)
- 오프닝 시퀀스는 서사인 동시에 박동처럼 느껴진다. 음악의 힘인 것 같다. 음악을 먼저 두고 영상을 얹는 방식으로 편집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맞다. 음악감독인 리비게쉬는 같이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이었다. 제작비가 크지 않아 모든 곡을 작곡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기존 음원들을 두고 가이드 편집을 했는데 잘 어울렸다. 그렇게 완성한 가편집본을 보여드리고 같이 작업하기로 한 다음 기존 음원들을 그대로 쓰거나 조금씩 수정했다.
-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세 캐릭터를 세공하는 건 감독 몫이었다. 용기와 지숙은 동시에 구상할 수밖에 없겠지만, 지숙이 먼저 액션을 하면, 용기가 그에 대한 리액션을 하는 방식으로 구상한 걸까.
아니다. 용기가 먼저, 다음이 지숙이었다. 모티프가 된 실제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CCTV에 포착된 빨간 복면을 쓴 이미지가 인상 깊었다. 스파이더맨의 이미지가 떠올라 영웅 심리였을까 궁금증이 일어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 한국 10대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찰하면서 지숙을 떠올렸다.
- 용기와 지숙 외에 덤보가 필요했던 이유는.
용기가 비극적인 일을 맞이하지만, 그전까지 마음을 둘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아웃사이더에게도 한명의 단짝은 있다. 용기 곁에 그런 친구 한명쯤은 있었으면 했다.
- 용기는 지숙을 위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인내한다. 그의 행동은 지숙과 엄마 등 여성들에게 맞춰져 있다. 감독이 생각하는 용기의 행동 근거는 뭔가.
어떤 관객은 순애보라고 해석하던데, 그런 순수한 감정이라기보다 결핍으로 인한 행동이라 본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타인에게 전적으로 사랑을 쏟아부음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친구가 한 학급에 한명씩은 꼭 있었다.
- SNS 시대에 시선을 받는 자의 위악과 지켜보는 자의 관음증을 동시에 그린다. 인물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팔로’, ‘맞팔’, ‘팔로어’다. 이에 관한 청소년의 감정을 알아가기 위한 선행 조사가 있었나.
요즘 일어나는 사이버범죄를 다루는 팟캐스트를 찾아 들었고, 요즘 10대들이 처한 환경의 위험성을 알게 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가 많이 무너졌고 오프라인에서 인정받기 너무 힘든 시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온라인에서 확인받길 욕망하고 또 집착한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은 너무나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 지금의 디지털 문화는 영상미디어와 맞물려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쇼츠를 보고 촬영한다.
연출자로서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노출하려고 했다.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용기와 우주의 액션신도 스마트폰의 프레임을 통해 표현하기도 했다. 그 장면은 아이폰 5대로 동시에 촬영했는데, 거리를 두고 스마트폰 카메라의 확대 기능을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거친 질감이 좋았다.
- 초반엔 세 주인공의 얼굴 이미지를 왜곡하여 담는다. 그러다 관객이 캐릭터들에 대해 점점 알아갈 때 정직하게 찍었다.
광각렌즈로 찍다가 표준렌즈, 망원렌즈로 넘어갔다. 초반부는 스타일로 밀어붙인다면, 후반부는 조금 더 인물에 집중하고 싶었다. 후반부까지 스타일리시하면 산만해져서 관객이 튕겨나갈 것 같았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덤보가 촬영한 용기의 영상이다.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과장과 위악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카메라가 진실을 포착한다는 모순을 드러냈다. 세 사람의 비극적인 결과는 이미 앞서 제시됐지만 또 다른 이미지가 필요했던 까닭은.
촬영 직전까지도 시나리오를 계속 고치면서 마지막 장면을 고민했다. 콘티 작업 막바지에 촬영감독과 논의하면서 지금처럼 용기 시점으로 끝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타인의 시점으로 용기를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용기만의 영역을 보여주고 싶었다.
- 독특한 영화 이미지를 만들어낸 김기영 감독은 미국 공보원에서 일하며 전쟁과 영화를 한꺼번에 경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창록 감독의 강한 이미지들은 어디에서 왔나.
나는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내성적인 조용한 아이였다. 다만 사춘기 때는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리고 헤비메탈 음악을 들으면서 ‘세상은 썩었어’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그렇다고 일탈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웃음) 그러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이야기가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내레이터(에드워드 노턴), 타일러(브래드 피트) 두개의 자아가 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내레이터처럼 살았지만 빡센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 발포 비타민이 물에 녹는 장면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를, 용기와 지숙, 덤보의 3자 구도는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을 떠올리게 했다. 어떤 결의 영화를 좋아하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사람들은 의외라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와 따뜻한 영화들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내 영화를 만들 땐 계속 불안한 인물, 이상한 사건을 더 알고 싶다. 사람들도 안 좋아하고, 쉽지 않은 길인데 내가 왜 이럴까 고민해봤다. 그건 아마 내가 겁이 많아서인 듯하다. 무섭다는 건 모르는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이기에, 조금이라도 알면 덜 무서워지니 알고 싶은 게 아닐까.
- 차기작으로 생각하는 이야기는.
멀티태스킹이 안돼 <충충충> 개봉과 동시에 다른 창작의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파워풀한 뭔가를 하고 싶다라는 욕망은 있다. 한번 더 힘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