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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분 나쁜 감각의 공유, <미명> 이원영 감독

첫 장편 <검은 여름>(2017) 이후 <희망의 요소>(2021), <절망의 요소>(2023)를 내놓은 이원영 감독에겐 유독 평단의 지지가 잇따랐다. 영화의 이야기적 소재와 제재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만의 형식미와 스타일을 찾아가는 그의 행보에 주목이 이어진 것이다. <미명>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전작들과는 구상부터가 달랐고 사운드디자인이라는 요소에 유독 집중했다. 즉 이원영 감독에 대한 기대는 때마다 변화하는 그의 유동성에 있을 것이다. 아직 자신의 영화적 기호와 지향을 찾아가고 있다는 감독의 말은 그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 소규모 프로덕션이란 점 외에 <희망의 요소> <절망의 요소>와는 또 다른 스타일로 전환했다는 인상이다.

<희망의 요소>를 만들 즈음에는 스크린 표면에 보이는 것들에 집착했다. 이야기를 최소화하면서 표면적 구성만으로 영화가 성립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나 모리스 메를로퐁티(신체의 감각이 세계를 지각하고 연결한다고 본 철학자.-편집자)에 매료돼 있었을 때다. 다만 이번엔 내 경험으로부터 시작했다. 12·3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을 때 경부고속도로를 운전 중이었는데, 마치 내 몸이 세상의 기분 나쁜 감각과 낯섦에 연결되는 듯했다. 세상의 연결성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고, 그때의 감각을 영화로 만들어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다.

- 이야기의 최소화, 감각의 전이 또는 공유를 위해서는 에세이영화나 실험영화, 다큐멘터리영화 등을 택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꾸준히 극영화를 찍는 건가.

글쎄. 다른 형식을 시도해보자는 생각이 아직까진 딱히 들지 않았다. 이야기를 먼저 만들고, 이미지와 사운드를 쌓고, 편집해서 합치는 작업 방식이 익숙하고, 재미있다고 하면 재미있다. 에세이영화도 좋아하니 언젠가 시도해볼 순 있을 거다. 다만 아직까진 내 영화적 기호가 무엇이고 작업의 지향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 <희망의 요소> <미명> 등의 이야기는 무척 통속적이다. 연인이 서로 사랑하고, 상처주고, 죽고, 슬퍼하는 20세기 한국의 통속 멜로 소설 같달까. 그러므로 이야기 외 형식미가 더욱 도드라지기도 한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통속적이고 정형화된 이야기의 재미에 끌리는 면이 있다. <왕좌의 게임>을 가장 좋아한다. (웃음) <화양연화>도 이야기만 따지면 옆집 사는 기혼 남녀가 불륜에 빠지는 것이 전부인 영화지 않나. 이렇게 진부한 이야기들을 이전에 없던 방식과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극영화로 닿아갈 수 있는 도달점이라고 느낀다. 물론 <희망의 요소> 개봉 때는 이야기 측면에서 엄청나게 비판받고 배급사 대표와 함께 여러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 아내를 잃은 남편이 목소리를 잃고 실의에 빠졌다는 설정은 어디에서 기인했나.

단순히 사랑하는 타자가 죽었다기보다 자기 존재의 일부가 찢겨나갔다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내 몸의 일부가 찢겨나갔다는 것은, 세상을 느끼는 어떠한 감각기관도 상실되었다는 뜻일 테다. 유독 사운드가 중요한 영화이니, 감각기관 중에서도 말하는 능력을 잃는다면 강력한 아이러니가 생기겠다고 판단했다.

- 흔히 소리의 감각이라 하면 청력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독특하다.

영화를 완성하고 그 부분도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복기해봤다. 메를로퐁티를 언급했던 것의 연장에서, 남편이 세계를 폭넓게 지각하고 죽은 아내와 맞닿기 위해서 주체적 노력을 해야 한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으려 하는 쪽이 더 합당할 듯했다. 그렇게 주체성을 회복하려 하지만 결국은 세계의 객체가 되어 무언가에 휩쓸리게 되는 결말을 처음부터 정하고 프로덕션을 시작했다.

- 목소리를 되찾는 방법 중 하나로 몽골 전통 창법인 흐미(한 사람이 두개의 목소리를 내는 듯한 배음 창법.-편집자)가 등장한다.

옛날에 몽골 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이 흐미 명인의 CD를 사오신 적이 있다. 한번도 듣지 않고 놔뒀다가 몇년 전에 우연히 꺼내 들었는데, 무언가 근원적인 울림이 느껴지고 참 좋았다. 작업 노트에 언젠가 영화에 활용하고 싶다고 적어뒀고, 이번에 소리라는 주제 아래에서 조합하게 됐다.

- 언급한 작업 노트에 영화미학에 대해서, 또 한국 사회의 구조적 이면에 대해서도 써놓는다고. 이번 영화에 적용한 사회적 맥락은 어떤 것들인가.

왜 주인공이 교수, 즉 지식인인지와 맞닿는 면이다. 계엄처럼 즉각적으로 내 머리가 해석할 수 없는 사태가 눈앞에 떨어졌을 때, 지식이라는 것은 그 순간 가장 무력해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념을 노트에 써뒀었고 반영하게 됐다.

- 그간 써둔 노트를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처럼 출판해도 좋겠다.

그건 너무 부끄럽다. (웃음)

- 사운드디자인뿐 아니라 뉴스의 내용, 부부의 대화 등 대사의 비중과 울림도 크다. 예컨대 오프닝 시퀀스는 노는 아이들이 찍히고, 외화면 어른들의 대화가 쭉 이어지는 구성이다.

친하게 지내는 사촌 형 부부가 집에 놀러왔을 때 찍은 논픽션 푸티지다. 그들이 취하면 매번 하는 얘기가 “임정은(<아워 미드나잇> 감독, <미명>의 프로듀서·배우이자 이원영 감독의 아내.-편집자)이 이원영이를 사람 만들어놨다!”라는 내용이다. (웃음)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고, 찍어둔 뒤에 영화에 쓰겠다고 허락받았다. 어른들의 죽음이 떠다니는 외화면과 달리 내화면엔 아이들의 생명력이 배치되기를 바랐고, 어차피 픽션과 논픽션을 조합하는 영화이니 이 숏을 아예 처음부터 보여주고 싶었다.

- 부부의 대화 중에 자녀 계획에 대한 화두가 등장한다. 남자는 나쁜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던지고, 아내는 사랑의 결과라며 긍정한다. 결국 둘은 이후의 유산을 남기지 못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잃는다. 한편으로는 마냥 비극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다. 끝까지 서로 사랑하며 끝났다면, 좋은 삶이라는 느낌도 든다.

각본을 쓸 때는 두 사람의 과거뿐 아니라 미래가 함께 소멸하는 듯한 대사와 구성을 배치했다. 그게 지금 시점의 세상이라는 생각이었다. 분명히 어두운 이야기였다. 그런데 영화를 몇번 다시 보고, 관객들의 소감을 듣다 보니 비극적으로만 다가오진 않더라. 부부는 같이 있었을 때 충만한 일상을 함께 보냈으니까. 아직 어리다면 어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떠한 기대가 작아지고 사라지는 것 같다. 세상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다. 최근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사 온 뒤에 가장 행복한 일은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하고 달리는 것이다. 원래는 산책 정도였는데 2주 전쯤부터 러닝으로 바꿨다. 이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행복감을 느낀다. 되도록 소박하게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