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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호포리라는 포툠킨 퍼사드,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의 <호프>

1980년대 비무장지대 접경의 포구 마을. 이런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 앞에서 우리는 으레 재현의 성실함을 기대하게 된다. ‘멸공’ 푯말과 낡은 건물, 페인트가 벗겨진 간판처럼 저개발의 흔적이 겹겹이 배어 있는 농촌 골목의 질감 같은 것들, 거기에 <전원일기>에 나올 법한 캐릭터들까지 가세해 사투리 대사로 인간적 정서까지 전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제작진은 20세기 어느 시점에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전남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상가 거리 일대를 통째로 영화 속 배경으로 개조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프>의 카메라가 호포리의 거리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이런 기대는 서서히 헛돌기 시작하고, 대신 이상한 확신이 자리를 잡는다. 이 영화에서 호포리는 누군가가 살아가는 장소가 아니라 무언가가 달리기 위한 무대라는 확신이 그것이다. 나홍진 감독은 시대의 재현 따위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속도의 상연을 위해 이 지역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외계 존재와 벌이는 속도 경쟁을 이 영화의 스케일에 맞게 담아낼 수 있는 일종의 서킷으로 말이다.

일단 단서는 인물들에게 있다. <호프>의 주요 캐릭터들은 엄밀히 말해 인격체라기보다 운송수단과 제각각의 방식으로 결합한 채 공간을 관통하는 ‘비이클’(vehicle)에 가깝다. 순경 성애(정호연)는 1983년식 스텔라 경찰차와 한몸이다. 그는 유턴은 해도 후진은 하지 않는 인물, 즉 전진의 벡터로만 정의되는 인물이다. 백수 청년 성기(조인성)는 말 위에서 자동소총을 갈기고, 종국에는 달리는 경찰차에 올라탄다. 마을 어르신들도 소형 트럭 뒤칸에 각종 총포류를 싣고 기동타격대로 재조립된다. 심지어 외계인 전사 마베이요(마이클 패스벤더)조차 질주를 위해서라면 사족보행 형태로 ‘트랜스폼’된다.

물론 이들에게 내면의 서사가 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누군가에게는 몰입을 방해하는 큰 결함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속도의 쾌감에 몸을 맡긴 관객에게는 그 자체로 설계의 결과로 보인다. 대사의 태반이 욕설이라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그 욕설은 인물들이 운송수단이나 총기류와 주고받는 신호음이자 돌발 상황에 반응하는 비이클 자체의 배기음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중화기나 어촌계 형님들의 ‘랜드로버 디스커버리’가 어디서 왔는지 영화가 끝내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장비의 출처가 아니라 탑승부터 조종, 질주, 장전, 발사로 이어지는 비이클 내외부의 연쇄적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성애의 등장 신이다. 스텔라를 몰고 와 급정거한 성애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괴물을 향해 M203 유탄발사기를 장착한 M16 소총을 조준하고 격발한다. 여기에는 어떤 망설임도 없다. 슬로모션으로 연출된 이 장면이 ‘성애-스텔라-M16’이라는 비이클을 조립하는 공정의 첫 단계이다. 그리고 그 공정은 호포리의 추격 시퀀스에서 마무리된다. 운전대의 성애, 차체의 스텔라, 조수석의 범석(황정민), 총열의 M16, 이 네 가지 요소가 하나의 비이클로 결합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괴물을 뒤쫓는다. 카메라는 이 비이클의 시선으로 질주한다.

물론 이 비이클에는 그에 걸맞은 무대가 필요하다. 인간계의 속도와 외계의 속도가 격돌하는 광경을 관객에게 납득시키려면, 두 유형의 속도를 계측할 눈금이 있어야 한다. 호포리의 도로 폭, 건물의 좌우 너비, 간판의 간격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스텔라와 괴물이 도로를 질주할 때 건물 형태와 간판 글자는 미처 읽히기도 전에 색면으로 늘어진다. 거리에서 주민의 일상이 흔적도 없이 지워지고 시체와 잔해만 남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예카테리나 여제의 시찰 경로에 세워졌다는 18세기 러시아의 가짜 마을처럼, 이 거리도 질주하는 비이클의 시선을 위해 거기에 서 있다. 그것은 일종의 포툠킨 퍼사드(Potemkin facade)인 셈이다.

호포리의 거리가 수평의 무대라면, 다음은 수직의 무대다. 스텔라의 바통을 이어받은 새 비이클의 엔진은 말이고, 무대는 마을 외곽의 원시림으로 옮겨간다. 루마니아 레테자트국립공원의 침엽수림에서 촬영된 이 공간은 언뜻 호포리라는 인공의 퍼사드와 대조되는 날것의 자연처럼 보인다. 그러나 로케이션 선정의 논리는 동일하다. 관객들이 비이클의 속도를 체감할 수 있도록 기능할 것. 그러니까 영화가 필요로 한 것은 숲의 생태가 아니라 촘촘하게 일정한 간격으로 곧게 솟은 나무들, 말과 마베이요의 질주를 계측해주는 수직의 격자들이다. 바로 이 격자들을 뒤로한 채 ‘어촌계 형님-백마-소총’의 비이클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마베이요의 아가리를 피해 성기를 낚아챈다. 이 장면은 앞서 언급한 성애의 등장 신과 대구를 이룬다.

이제 영화는 마지막으로 거대 교각 위로 펼쳐진 직선의 국도 위로 향한다. 호포리의 간판도, 레테자트의 침엽수도 없는, 오로지 소실점을 향해 뻗은 활주로 같은 무대다. 눈금과 격자가 사라진 이 순수한 벡터의 공간 위에서 비이클의 조립은 최종 단계에 도달한다. 달리는 말 위에서 경찰차로 몸을 옮긴 성기가 마베이요를 격퇴하는 것이다. 승리의 환호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는 거대한 우주 함선이 추락하고,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비이클은 멈추어 선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 두발로 달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갑작스레 다른 국면으로 전환된다. 작은 포구 마을의 추격전에서 행성 차원의 대재난으로 그 스케일을 부풀리는 것이다. 외계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속도의 상연에 집중했던 영화는 장대한 우주 서사의 프롤로그였다는 듯 서둘러 막을 내린다. 어리둥절한 상황에 헛웃음을 참기 어렵지만, 두 시간 반의 질주가 남긴 관성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호프>는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워쇼스키 자매의 <스피드 레이서>,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프 코신스키의 <탑건: 매버릭> 등으로 이어지는 21세기 속도광 영화의 계보 어딘가에 아주 기묘한 한국형 변종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변종의 무대는 <추격자>의 망원동 단독주택과 골목길에서 시작된 나홍진 감독의 공간적 여정이 <황해>의 연길과 강남, <곡성>의 산골 마을을 거쳐 당도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