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BREAKABLE : 少年BEAST》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파편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나 단어, 꽂힌 가사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특정 곡이 아닌 ALPHA DRIVE ONE 자체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ALPHA DRIVE ONE이라는 팀이 가진 에너지와 멤버 개개인의 아이덴티티, 이번 앨범의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를 먼저 접했다. ‘少年BEAST’라는 대립하는 단어의 조합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표현할 수 있는 감정과 그럴 수 없는 감정들이 내면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어떤 색으로 물들지를 생각하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 커머셜 작업에서는 기획과 개발 과정을 길게 가져가는 것으로 안다. <21세기 소년 I>의 작업 기간은 어느 정도였고, 어떤 단계를 거쳤나.
연출과 편집, 색보정을 맡아 몇 개월에 걸쳐 진행했다. 다양한 영역의 감독과 작업자들이 함께 프로젝트에 몰두해 하나의 이야기를 그려가는 과정이 좋았다. 몇년 전에 협업했던 인솔 미술감독과 이번에 다시 만난 것도 좋았다. 촬영은 총 2회차였고 후반작업 기간도 꽤 길게 확보할 수 있었다.
- 학교가 주 공간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구체적인 배경은 특정하기 어렵다. 무국적 세계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다만 푸른 하늘의 청량함이 올해 개봉한 <지느러미>의 핏빛 디스토피아와는 사뭇 다르다.
시간적 배경과 구체적인 시대를 일부러 설정하지도, 명시하지도 않았다. 어떤 세대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학교물과는 다른 매지컬 리얼리즘적인 설정을 추가하고 싶었다. 그 설정이 교신 장치인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무시무시한 블랙 슬랩의 존재감을 떠올리면서 구상했다. 이질적이면서도 마법적인 공간이자 사물인 교신 장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빛, 진동, 소음, 파형 등 감각적 요소는 박세영 영화의 주요한 재료다. 푸른 교신 장치가 모든 요소를 품은 핵심 오브제처럼 보인다.
언급해준 재료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과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고유한 무빙-이미지의 특수성을 띤 요소들이다. 트레일러의 첫 이미지부터 마지막 이미지까지 이런 요소들이 끊임없이 나오면서 화면과 소리에 스며들기를 바랐다. 교신 장치는 이런 요소들의 직접적인 총집합이지만 이외에도 영상에 끊임없이 교신 장치의 흔적이 존재하기를 바랐다. 나에게 푸른 교신 장치는 일종의 비밀 상자인 동시에 거울이기도 했다. 거울은 일상생활 속 어디서든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 푸른 교신 장치 외에 눈여겨보면 좋을 오브제가 있을까.
파란색을 띤 형태들이 영상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것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 <21세기 소년 I>에도 박세영 영화의 독특한 질감이 살아 있다. 어떤 촉각적인 느낌을 살리고 싶었나.
자연의 컬러와 인공적인 푸른빛의 컬러가 맞닿는 지점들을 찾고 싶었다. 이를테면 하늘의 블루와 교신 장치의 블루가 같이 읽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한하고 경계가 없으며 끊임없이 바뀌는 하늘의 속성을 교신 장치의 의미에 담고 싶었다. 이런 맥락을 살리기 위해 자연광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이미지를 구성하려 했고,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이 많이 힘써줬다.
- 소년들은 각자가 속한 시공간에서 ‘나를 제대로 봐달라’는 말을 품은 채 혼자가 된다. 세간의 편견 속에 놓인 이들이 서로 떨어져 있다는 설정이 중요해 보인다.
교신 장치를 통해 서로 연결되는 감각을 살리고 싶었다. 각기 다른 공간과 환경에서 겪는 문제와 고민이 시대를 초월하는 하나의 공간에 모여 응축된다는 개념이 매력적이었다.
- 소년들의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나. 먼저 소년들의 설정을 구축한 뒤 멤버들에게 역할을 부여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멤버들을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만든 것인지 궁금하다.
후자다. ALPHA DRIVE ONE의 행보와 멤버들의 고민을 촬영 전에 살펴볼 기회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전문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영화문법대로가 아닌 개개인에게 맞추는 캐릭터 빌딩을 시도했다. 현장에서는 내가 예상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멤버들의 순간적인 감정과 상태에 충실하려 했다.
- 연기한 멤버들에게 공통으로 강조한 부분은 무엇인가.
나 자신에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한데, 실패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촬영할 때는 정답이 없다. 그렇기에 그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있는 게 현장이기도 하다.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후회가 남지 않고, 실패해도 되는 현장을 항상 만들고 싶었고, 이번에도 그랬다.
- 전작 단편영화 <미쉘>(2024)에서는 홍경 배우의 목소리가, <원령공주>(2024)에서는 정회린 배우의 목소리가 작품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에서 ALPHA DRIVE ONE의 목소리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
영상에 ALPHA DRIVE ONE의 내레이션과 대사가 계속 등장한다. 느슨한 서사 위에 멤버들의 목소리는 인물들이 느끼는 답답함, 솔직하고 싶은 마음, 욕망을 대변하기도 하고 충돌시키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일기나 낙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내게 트레일러 작업은 음악을 보충하는 역할이 아닌 아티스트의 복합성과 메시지, 아이덴티티를 밀도 있게 표현해볼 기회였다.
- 영상적 실험을 꾸준히 시도해온 창작자다. 의도한 것이든 우연히 발생한 것이든, 이번 작업에서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나.
거의 모든 숏이 현장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폐 놀이공원에서 촬영했는데, 그곳에 버려진 놀이기구와 장치들이 좋아 미술감독이 화면 안에 담아주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번째 컷도 그렇다. 여기서 카메라가 리오의 뒷모습에서 시작해 반 바퀴 돌아 옆모습을 포착한다. 이때 카메라와 리오 사이에는 일종의 유리가 놓여 있다. 이 유리 표면에는 사람 형체가 도트 형태로 그려져 있다. 카메라와 리오, 이 도트들이 한데 모여 겹치는데, 이 순간의 물리적인 유리의 질감과 그로 인한 빛의 굴절까지 예상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소년들이 완전히 연결되거나 구원받는 결말이 아니다. 소년들에게 어떤 미래를 주고 싶었나.
교신 장치 없이도 연결될 수 있고, 서로를 찾을 수 있고, 미래로 나아갈 힘을 찾을 수 있다는 힌트를 영상이 제시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지막 시퀀스를 구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