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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심이라는 말 그 이상, <인턴> 배우 한소희

<부부의 세계> 이후 배우 한소희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 속 작품 세계는 대부분 빛깔이 어두웠다. 작품 자체의 세계관이 냉소적이거나 인물이 처한 상황이 비극적인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심지어 본인 캐릭터 외에 주변 인물까지도 쉽게 미소 짓기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가 많았다. 이에 대해 한소희는 “과거에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며 작품에 임했다고 말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개인의 삶을 반영할 수도 있기에 조금은 폭넓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매 작품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 시작점이 스스로를 체력의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며 액션을 선보인 <마이 네임>이었다. 작품이란 “배우가 고를 수 있기보다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말하는 한소희가 선택한 <인턴>은 대중이 배우 한소희의 환한 미소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관객 앞에 꺼내놓은 영화다. 이번에도 그녀가 맡은 주인공 선우는 쉽게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른 나이에 패션 회사 WOO22(우투투)를 성공시킨 CEO지만 성공에의 욕구가 그녀 스스로를 자꾸 코너로 몰아넣는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배우 경력 37년차 베테랑 최민식의 지도 편달 아래 일대일 인생 수업 코치를 받는 상황이라는 것. 원작과는 여러모로 다른 해석을 내놓은 이번 영화의 현장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캐물었다.

- <부부의 세계> 공개 당시 <씨네21>과 나눈 인터뷰 말미에 장편영화 작업에 대한 열망을 피력한 적 있다. 그 후 <폭설>(2024)을 시작으로, 올해에만 벌써 와 <인턴> 두편으로 관객과 만났다. 극장에서 직접 관객과 만나 반응을 접해보니 어떤 기분이 들던가.

내가 데뷔하던 시기는 막 OTT가 주목받던 때였다. 당시 만들어지던 시리즈 초반의 몇부 정도를 극장에서 상영하는 일들이 있긴 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극장은 나와 거리가 먼 곳이었다. 내 작품을 극장에서 보는 경험을, 제작발표회를 하던 순간을, 인터뷰를 하는 지금을 생각하면 너무 떨린다. 30년 넘는 경력의 대선배가 옆에 계시고. 다만 확실하게 느끼는 건 영화가 주는 힘이 있다는 것. 솔직히 드라마와 영화를 구분 지어서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 요즘이다. 그럼에도 극장은 관객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 <프로젝트 Y>와 <인턴>은 두 영화의 장르나 스타일, 본인이 맡은 캐릭터의 성격까지도 너무 결이 다른데, 두편의 출연 결정 과정에 어떤 고민이 있었나.

배우는 매번 다른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또 어떤 옷이든 잘 소화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한소희의 여러 가지 색깔을 보여주고 싶었다. <프로젝트 Y>에서는 거친 한소희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이번 영화는 지금껏 보여주지 못한 면이 담겨 있다. 최근까지 장르물에 많이 출연했으니까 그 간격이 크다고 느낄 수 있을 텐데, 어떤 옷이 더 잘 어울리는지 알아가기 위해서라도 다양하게 시도 중이다. 한번 어두운 면을 보여줬다면 다음에는 조금 더 밝은 면을 보여주고 싶고, 또 땅을 딛고 있는 현실적인 역할을 했다면 그다음에는 하늘을 유영하는 역할도 보여주고 싶다.

-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영화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나. 원작 영화가 있기 때문에 레퍼런스가 분명한 상황에서 인물의 방향은 어떻게 설계하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원작과의 가장 큰 차이는 선우와 기호(최민식)가 마치 아버지가 딸을 챙겨주듯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부분이었다. 기호는 사회생활 선배지만 아버지의 역할도 한다. 기호 덕분에 오히려 선우를 좀더 철부지 딸처럼 표현해도 될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다. 게다가 선우가 나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내가 해석한 선우는 좀 부족해 보이고 원작 영화의 캐릭터보다 좀더 감정적이고 실수가 잦은 인물이었다.

- 선우에 대한 본인만의 해석을 전해 들은 김도영 감독의 반응은 어땠나.

감독님은 극 초반에는 많은 직원들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선우의 대표다운 모습을 더 강조하길 원하셨다. 3년 만에 회사 규모를 키운 여성을 마냥 철부지처럼 보이게 할 순 없고, 너무 프로페셔널하면 기호가 도와줄 여지가 사라지게 되니까 밉상이 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게 중요했다. 선우가 회사를 생각하는 불완전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실수라면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겠다는 나름의 해결점을 찾아 연기했다.

- 원작의 줄스(앤 해서웨이)는 워킹맘이지만 선우는 아직 아이가 없다. 그래서 더욱 기호와의 관계가 부녀지간처럼 느껴진다. 이 각본 방향에 대해서 최민식 배우와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것 같다.

선배님과는 촬영 전부터 그룹 리딩을 정말 많이 했다. 연기 경력이 많지는 않지만 배우들끼리 편해야 10개의 아이디어가 나올 상황에서 천 가지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유대관계도 잘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선배님이 방향을 잘 잡아줬다.

- 선우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성공한 CEO이기에 상대적으로 직원들과의 스킨십에서는 부족한 면도 보인다. 시나리오에 미처 담기지 않은 그 이상의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디테일한 설정을 하며 연기한 부분이 있나.

회사에서 가장 많이 부딪치는 인물들과 반말로 대화할지 존대할지를 고민했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존댓말은 억양에 따라 자칫 친절해 보일 수도 있다. 무조건 반말투로 사람을 대하면 감정이 서툴러 보일 수도 있어서 어려웠다. 현장에서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연기했는데 감독님은 대개 반말투로 연기할 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나는 상대를 편하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불편해하는 특유의 까칠한 온도를 포착하신 것 같았다.

- 방금 말한 직원들과의 거리감 조절에 서투른 장면이 하나 떠오른다. 팝업스토어 준비 과정에서 손을 다치자 갑자기 짜증을 쏟아내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선우가 직원들을 다그치는 모습이 자칫 미워 보이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어 존댓말로 연기했다. (해당 장면의 표정을 똑같이 지어 보이며) “우리 시간 별로 없어요.” 그때 선우가 반말로 직원들을 다그치면 너무 미워 보일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이것 좀 수습해요”라고 말할 때 옆의 직원을 톡 건드려주고 가는 액션을 추가하는 식으로 연대감을 표현하려고 했다.

- 반면에 선우가 전혀 다른 에너지를 쏟아내는 장면이 있다. 모두가 퇴근한 회사에서 혼자 블루투스 마이크를 켜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원작에도 없는 설정이다.

여러 번 촬영했던 장면이다. 그때 부른 노래의 가사가 선우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실제로 눈물이 났다. 선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최민식 배우와의 일대일 연기 대결이라 할 수 있는 야근 중 피자 먹는 장면이나 창고에서 둘이 달을 보며 맥주 마시는 장면의 호흡이 참 좋았다.

촬영 현장에서 늘 좌절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웃음) 촬영 시작 전에는 ‘그래도 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함을 품었다가도 내가 감히 올라설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매번 느꼈다. 그분 앞에서는 어떤 편법과 꾀도 통하지 않는다. 상대는 이미 기호가 되어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선우가 될 수 있을까. 이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에게 실망한 순간도 많았고 자괴감에 빠져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 원작의 줄스와 선우는 의상, 헤어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 이 부분의 설정은 어떤 의도가 있었나.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는 옷이 무엇일까. 먼 훗날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촌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물론 선우는 CEO다워야 했다. 추가로 야근할 때 선우가 사무실에서 하이힐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순간을 공들여 묘사했다. 선우가 인턴들과 첫 대면하는 장면에서도 감독님이 힐을 벗고 맨발로 뛰어다니는 걸 보여주자 해서 뛰어다녔더니 슬리퍼 장면과 맥락이 이어지면서 캐릭터가 잘 드러났다.

- 각본에는 쓰여 있지 않지만 현장에서 상대 배우의 연기만으로 만들어가는 힘을 전달받은 장면이 있었나.

영화의 후반부 이자카야 장면이 그랬다. 선우가 눈물을 흘리면서 고민을 토로할 때 기호가 정신 차리라고 조언해주는 장면이다. 시나리오에는 “만약에 제 딸이었으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 같습니다”라고 운을 떼고 이어서 호통을 친다고 쓰여 있었다. 최민식 선배가 현장에서 나 몰래 감독님과 상의해 대사 순서를 바꾸셨다. 그 장면에서의 내 표정은 거의 진심 같아 보인다. 갑자기 “정신 차려”라고 외치는데 그 순간은 선우가 아니라 한소희가 되어 듣고 있었다. 현장에서 많이 울었다. “너는 젊고 유능하니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조언에 한소희로서 수긍하는 표정이 나왔던 것 같다. 선우가 다채로운 감정을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최민식 배우 덕분이다.

- 애초 본인이 계획했던 선우의 캐릭터가 영화에 어느 정도 반영이 되었다고 여겨지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 찍을 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르겠다. 연기를 할 때 무언가를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는다. 오늘 주어진 장면의 연기에 충실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선우의 성장과정을 계산하지 않고 순간의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연기했다. 다만 한 가지, 선우가 마냥 어려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는 있었다. 관객이 선우를 어리다고 받아들이면 그녀 개인의 결혼 생활 표현부터 회사 CEO로서의 면모 모두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는 게 많았지만 관객이 이것만은 꼭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그것이 무엇인가.

관객이 극장을 나서면서 자기만의 본질을 찾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면서 부차적인 것 때문에 본질을 잃기도 한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 내지는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까지도. 그런 본질을 기호가 계속 일깨워준다. 선우에게는 그 본질이 직장이다. 관객 스스로가 진짜 원하는 삶의 방향과 본질이 무엇인지, 선우와 기호를 통해서 찾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실은, 그 본질이 뭔지 몰라도 아무 상관없다, 괜찮다는 메시지도 주고 싶다.

- 앞으로 예정된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있나.

현재 머리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 <나 혼자만 레벨업>을 촬영 중이다. <인턴>홍보가 끝나면 이어서 촬영장을 가야 한다. 그 이후에는 <하트비트>라는 첫 로맨틱코미디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아마도 그 작품에서는 나의 웃는 모습을 많이 보실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기대 중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