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능한 사랑>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아들 철이가 하늘로 둥실 날아가는 과자(콘칩) 봉투를 바라봅니다. 그 순간 <초록물고기>의 오프닝, 달리는 기차에서 날아가던 미애(심혜진)의 장밋빛 스카프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이런 부유하는 이미지로 영화를 연 이유가 있나요.
아… 그러네요. 두 장면을 연결 지어서 생각하진 못했어요. 특별히 어떤 뜻을 전달하기보다는 그냥 느껴지기를 바랐어요. 뭔가 별거 아닌 일상의 물건이, 사실 날아갈 수 없는 것인데, 날아가기를 꿈꿀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 꿈이 좌절될 수도 있을 테고요. 평범한 물체지만 어떤 관객한테는 무언가 꿈꾸고 시도해보는 이미지로 느껴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 오프닝뿐 아니라 <가능한 사랑>은 설경구 배우를 비롯해 유독 <초록물고기> <박하사탕>같은 초기작의 ‘냄새’가 짙고, 전체적으로 그 시절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감독님의 마음가짐도 그러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에 대한 고민을 데뷔 초기에 가장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은 둔해진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영화를 하는 것에 대해서, 영화라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초창기의 에너지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겠죠.
- <버닝> 이후 8년 만의 신작입니다. <가능한 사랑>은 어두운 그믐달 아래 홀로 외롭게 서 있다가 밝은 보름달을 함께 바라보며 끝나는 영화랄까요.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의심, 타인에 대한 실망과 분노, 세상에 대한 냉소와 염려 등 모든 생각과 감정의 바닥까지 쳐본 사람만이 비로소 품을 수 있는 희망의 영화였습니다. 도대체 지난 8년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길래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 모두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통과한 시간이 있었죠. 그 기간 동안 영화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이 극장에 모이기 힘들어졌고 영화를 통해서 서로 나누던 것도, 관계도 끊어졌죠. 그런 상황에서 영화하는 사람들은 다 생각했을 거예요. ‘이제 영화는 뭘 할 수 있지?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뭐지?’ 결국 그건 개인의 노동의 문제와 연결되죠. 내가 원래 하던 일을 못하게 되는 건 결국 노동이 사라진다는 거니까요. 용접공인 호석(설경구)은 아들의 이름을 ‘철’로 지을 만큼 자신의 일이 삶의 중심이었던 사람이죠. 그런데 그 일을 강제적으로 빼앗기게 됐잖아요. 지금까지는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슨 일을 하는가’였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 시대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그 개념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죠.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그냥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기도 하니까요. 결국 노동이 사라져가는 시대 속에서 자기 정체성이 뭔지 모르는 시대가 돼버린 거죠. 그런 시대에 일과 나와의 관계, 노동에 대한 질문을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잖아요. 젊은 영화인들을 가까이서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오는데 아이를 낳은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만들어져야만 하고, 나도 영화를 만들어야만 된다는 거였어요.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그런 근본적인 질문과 고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2022년 단편 <심장소리>는 아들 철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해고 노동자 부모의 이야기였습니다. <가능한 사랑>으로도 이어지는 대기업 집단해고 사태 이야기를 왜 영화화하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당시 사건을 바라보며 그건 한 대기업의 문제 혹은 그 사건이 만든 해고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노동운동,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넘어 우리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분기점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해볼 만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미 그에 대한 훌륭한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졌는데 내가 왜 이걸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지, 그 이상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오랫동안 갖지는 못했어요. 그러다가 2024년 가을부터, <버닝> 때부터 함께 작업하고 있는 오정미 작가가 해고 노동자 부부를 찍는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제안했고, 그렇다면 그것은 내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개인적인 의미를 찾았고 그것이 관객한테도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결국 영화적으로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특히 영화의 영감을 준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데칼로그) 중에서 열 번째 계명이 가장 우리 이야기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죠. 십계 중 다른 계명은 어떤 ‘행동’을 하지 말라는 거라면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건 유일하게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이런 자본주의 시대에 어떻게 남의 걸 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특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의 삶을 탐할 수밖에 없거든요. 어쩌면 내심 내가 다루는 그들의 삶이 더 고통스럽고 더 드라마틱하기를 원할 수도 있고요. 저에게도 소설을 쓰던 젊은 시절부터 항상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내가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고통을 쓰면서 늘 내가 얼마나 그들과 가까이 있는 건지, 얼마나 그들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를 질문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이 시점에도 그 질문이 저한테서 떠나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예지(조여정)도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캐릭터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저의 정체성, 저의 마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죠. 물론 예지 같은 감독들은 그래도 정직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까지도 사실은 탐하면서,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소비하기도 하죠. 그런 것에 대한 계명일 거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결국 이 영화를 통해 내가 작품 속에서 다루는 타인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떤 거리를 유지하고, 내가 그들을 얼마만큼 사랑할 수 있는지 질문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비로소 이제 죽었던 프로젝트가 다시 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배우 설경구가 감독 이창동에게만 보여주는 얼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잔뜩 일그러져 있지만 말갛게 다 비워낸 얼굴이랄까요? 어떤 주문이 설경구의 이런 얼굴을 오랜만에 불러올 수 있었던 건가요.
제가 특별한 주문을 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아마도 본인이 느낄 수 있었을 거예요. 호석이라는 인물은 별로 말이 없어요. 미옥(전도연)과 다르게 예지의 카메라 앞에 오기를 주저하죠. 사실 속에 담긴 이야기하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이에요. 자기 속이 텅 비어 있다고, 자아가 죽었다는 것을 본인이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었겠죠. 언젠가 한번은 폭발이 돼야 하는 시한폭탄 같은 것이 내부에 있는데, 배우 스스로 그걸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되는지 굉장히 민감하게 시시각각 느끼고 있었을 거예요. 다만 그걸 기술적인 연기로 터트리는 건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는 배우인데, 그게 연기가 아니어야만 하기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겠죠. 이것이 자기 속에서 저절로 터져 나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늘 긴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정말 쉽지 않은 연기를 해냈습니다.
- 미옥은 절대적으로 배우 전도연과 함께 완성된 인물처럼 보입니다. 노래 <사랑밖에 난 몰라>는 이미 <너는 내 운명>에서도 불렀고, <밀양> 같은 이창동 감독의 작품뿐 아니라 <하녀> <무뢰한> <일타 스캔들> 등 이 배우의 필모그래피 속 캐릭터들의 삶과 미옥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실 미옥은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여자거든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그러니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고, 노동자의 아내로서 씩씩한 생활인의 모습도 갖고 있죠.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다른 삶을, 자유로움을 꿈꾸고 갈망하는 여자이기도 하죠. 스티브 잡스를 무의식적으로 좋아할 만큼요. 하지만 남편의 고통과는 너무 대조적인 성공에 기뻐하는 상우(조인성)를 보며 그 순간에는 맞서서 지지 않으려고, 심지어 한번 도발까지 해보는 용기도 가진 사람이죠. 배우 전도연에게는 그런 다양한 모습이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 모습을 이 영화가 자연스럽게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미옥과 상우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마주하는 바닷가 신이 꼭 필요했다고 보신 건가요.
그렇죠. 사회적 계급 안에서 봤을 때는 사실 절대 같이 설 수 없는 상대죠. 하지만 상우처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사람 앞에서도 한 개인으로서 마주했을 때 미옥이 결코 지지 않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 상우의 별장 서재에 꽂힌 책들은 모두 할아버지, 아버지의 것입니다. 즉 상우가 자연스럽게 누리는 부와 환경은 모두 대물림된 거라는 걸 알 수 있죠. 할아버지는 일본어 단어를 더 자연스럽게 썼고, 아버지는 호루라기를 불며 누군가를 종처럼 부렸던 사람이고요.
상우의 가족사는 한국 토착자본의 모든 역사를 보여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우는 어느 정도 테이크오프가 됐다고 생각해요. 자기 말처럼 “차원이” 달라진 거죠. 그 자본은 예전 노동운동의 대상, 싸움의 대상이 되었던 그런 얼굴은 이미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상우는 새로운 차원, 새로운 자본을 인격화한 캐릭터죠. 부드럽고 친절하고 인간적이죠. 하지만 끊임없이 자기 증식을 멈추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말하자면 모두가 좋아하는 ‘만인의 연인’인데도 끊임없이 더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려고 하니까요.
- 영화 속 상우처럼 진화한 ‘친절한 자본’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굳건해 보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게 되겠죠. 정의가 더 이상 선이 될 수 없고, 신의의 가치가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으면서 살 수 있을까요.
거대한 자본의 구조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가져야 할 무기는 결국 미옥이 보여준 자존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자유, 지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 같은. 결국 죽은 영혼 같던 남편과 아내가 마주 앉아, 자기들 손으로 만든 대리석 술상에서 보름달을 보며 술잔을 나누는 연대와 사랑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 보름달이 주는 위안이 꽤나 오래 남았습니다.
달 찍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사실 누구나 일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달을 찍는다는 게 오히려 더 힘들더라고요. 달은 망원렌즈로밖에 찍을 수 없는데 그렇게 찍는 달은 사실은 굉장히 드라마틱해요. 우리는 그런 달을 원한 게 아니었거든요. 어떤 날은 밤새 달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어요. (웃음)
- 수상에 대한 기대나 부담은 없나요.
2002년 처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오아시스>를 가지고 왔을 때, 걱정이 많았어요. 논쟁적인 영화이기도 했고 영화라는 매체로 정말로 소통할 수 있을지… 뭐랄까, 시험한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베니스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굉장히 궁금했고 또 긴장하기도 했죠.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굉장했어요. 우호적인 걸 넘어서 기대보다 훨씬 뜨거웠죠. 그리고 아마 베니스에서 상을 받지 않았으면 제가 공직(2003년 참여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에 잠깐 나가는 계기가 찾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거예요. 제 인생에서 기대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변화를 만들어주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영화제의 상은, 스포츠 경기 같은 점수가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운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모든 창조적인 게 만들어지는 과정도 운이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영화의 결과도 사실은 운이죠. 상에 대한 기대라기보다 어떻게 되겠지, 안되면 또 그걸 받아들여야지, 이렇게 생각해요.
- 전도연 배우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상받을 거”라고 확신하던데요. 게다가 조여정 배우가 좋은 꿈을 꿔서 그 꿈을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에게 팔았다면서요.
어떤 꿈인지 내용은 이야기 안 했어요. 밥 먹을 때 하면 안되는 이야기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