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을 향한 공방은 2주째 작품과 무관한 방향으로 비화 중이다. 지난주 1576호의 보도(‘<암살자(들)>, 스크린 밖에서 이어지는 공방’) 이후로도 논란의 불씨는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조직적 관람평 조작을 밝히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주연배우의 자택 앞에서 영화 상영 중단 및 배우 외모에 정파적 의미를 덮어씌우는 위협적 집회가 이어지더니 제작사와 배급사는 배우들이 나서는 개봉 2, 3주차의 무대인사와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보수정당이 우세한 지역에선 영화 상영이 중단되는 일마저 발생했다. 이때 파고들 문제는 누가 불길에 장작을 지피느냐다.
21세기 한국영화 뉴스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독자라면 작금의 사태에서 <그때 그 사람들> 공방을 떠올릴 터다. 2005년 10·26 사건 당일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블랙코미디가 개봉하자 박지만(박정희의 아들)은 영화가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족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서울중앙지법에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박사모( ‘박정희를 사랑하는 모임’의 줄임말)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상영 중단 시위를 벌였다. 2026년의 <암살자(들)>또한 비슷한 문제에 휩싸였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은 싱가포르국제영화제(SGIFF) 조직위원회에 <암살자(들)>의 개막작 선정 철회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추후 다른 국제영화제 출품 여부도 면밀히 파악해 동일한 수준의 대응을 불사하겠다고까지 첨언했다. 이에 영화제는 “제작진이 본 작품을 역사적 사건에 허구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한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설명해왔”으며 “역사적 결론을 내리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했”으므로 “SGIFF의 독립적인 프로그래밍 과정을 통해 선정”된 <암살자(들)>을 “하나의 창작물로 선보이고자 한다”라는 공식입장문을 발표했다. <암살자(들)>을 개막작으로 상영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유지한 것이다.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 피격 배후에 박정희 전 대통령 혹은 중앙정보부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영화 안으로 들어가보자. 박철구 형사(유해진)의 수사, 김재환(박해일), 한영일(이민호) 그리고 동성일보 사회부 기자들의 취재는 사건 당일 경호 지침이 바뀌었고, 총성의 횟수와 탄흔의 개수가 일치하지 않았으며, 문태광(박정민)의 출입국 기록에 논리 관계의 오류가 있음을 발견한다. 이들은 문태광 이외의 공범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추정한다. 그리고 작중 기자들은 이 보도를 막으려는 중앙정보부에 항거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다. 영화는 유신치하의 검열로 음모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시대의 억압과 그 속에서 “외압에 저항하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가는”(<씨네21> 1575호 허진호 감독 인터뷰) 이들을 그리기 위해 육영수 피격 사건과 자유언론실천선언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음모론과 언론 자유 투쟁 사이의 인과성을 만들기 위해 픽션의 맥락을 추가하지만, 그마저도 사자 명예훼손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도, 작중 기자들도 영부인의 죽음을 대통령이 사주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진실 은폐와 언론 검열이 한배를 탄 시대에 벌어진 폭력이 개개인에게 불어넣은 정의감을 적시할 뿐이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제기하는 ‘패륜적 조리돌림’은 <암살자(들)>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사회적 규범을 위배한 사람을 처벌하는 사회통제 방식’인 조리돌림의 정의에 입각해 이들의 주장을 해석하자면, <암살자(들)>을 패륜적 조리돌림이라 말하는 건 결국 영화가 묘사하는 독재정권이 자행한 사상 및 표현의 자유 탄압과 같은, 사회적 규범을 위배한 '헌법적 민주주의 훼손'의 역사를 보수진영 스스로 인정하는 일에 다름없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영화계는 이 사태에 “비판과 비난이 아닌, 인신에 대한 선을 넘은 공격”을 자제해달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암살자(들)>의 상영과 행사가 취소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취재진은 행사를 찾는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영화를 둘러싼 소요를 질문한다. 10월8일, 영화제 기간 중 해운대 이벤트광장에서 열린 ‘영화인 긴급 기자회견’의 입장이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이 정리되어야 할 길을 제시한다. “영화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마십시오. 관객의 판단을 정치가 대신하지 마십시오. (중략) 정작 영화를 보지 않은 채 작품의 의미와 의도를 먼저 규정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고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까지 정치가 판단하려 한다면, 누가 관객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까?”
개봉 이후 벌어진 일들 -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 타임라인
2026년 9월23일 <암살자(들)> 개봉
9월24일~26일 - 보수 단체를 중심으로 영화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배후에 박정희 전 대통령, 중앙정보부 등 당시 권력기관이 개입한 것처럼 묘사했다는 비판 제기
9월26일 - <암살자(들)> 100만 관객 돌파
9월28일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주진우 의원, 한동훈 무소속 의원 등 SNS와 원내대회 등지에서 <암살자(들)> 비판
- <암살자(들)>제작진, 공식 입장문 발표 “본 작품은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닙니다. 또한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9월29일 -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감독과 제작진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
- 이동진 영화평론가, 유튜버 지무비, 최태성 역사 강사 등 유튜브 내 <암살자(들)> 리뷰 영상 비공개 전환
-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 ‘중국 자본 유입설’에 관한 입장문 발표 “당사 및 영화 <암살자(들)>의 제작과 투자 과정에 중국 자본이 유입된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암살자(들)>은 국내 제작진과 창작자들의 주도 아래 국내 자본으로 독립적으로 기획·제작된 작품입니다.”
9월30일 -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암살자(들)> 네이버 실관람객평과 네티즌평 차이를 두고 ‘매크로 공격 및 정치세력 개입’ 주장
10월1일 - 배우 이민호, 부산국제영화제 ‘액터스 하우스’ 행사 취소
-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육영재단, 박정희학술원 등 <암살자(들)>에 공식 사과 요구
- 신자유연대 및 극우단체, 배우 유해진 자택 앞에서 집회 신고
-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암살자(들)> 입장문 발표
10월2일 - <암살자(들)> 부산국제영화제 일정 전면 취소
-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암살자(들)> 입장문 발표
10월3일 - <암살자(들)>200만 관객 돌파
- 하이브미디어코프, <암살자(들)> 개봉 2주차 무대인사 일정 취소
-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암살자(들)> 입장 발표
10월4일 - 배우 유해진 소속사 VAST엔터테인먼트, 허위사실 유포와 인신공격에 대한 법적 대응 예고
- 네이버, <암살자(들)> 리뷰의 기계적 어뷰징 확인 후 <암살자(들)>의 관람평에 한해 임시로 최신순 정렬을 기본 방식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힘
- 메가박스, <암살자(들)> 잔여 오리지널 티켓 전량 폐기
- 한국영화감독조합, <암살자(들)>입장문 발표
10월5일 -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배우 신변 위협 등 불법 행위에 대한 강경 대응 시사
- 영화인연대, <암살자(들)> 공식 성명 발표
10월6일 - CGV 구미점, <암살자(들)> 상영 중단 결정
- 고범석 서울경찰청장,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자택 앞 시위 및 협박 행위에 대해 범죄 혐의 확인 시 엄정 대응 발표
-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2대, 네이버가 의뢰한 관람평 매크로 조작 사건 수사에 착수
-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싱가포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암살자(들)> 개막작 선정 철회 요구 서한 발송. 향후 다른 국제영화제 출품 여부도 면밀히 파악해 동일한 수준으로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힘
10월7일 - 최휘영 장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영화에 대한 평가는 자유이나 창작자에 대한 신변 위협은 민주주의의 파괴”라고 재차 입장 밝힘
-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국민의힘 <암살자(들)> 개막작 선정 철회 요구 거절
10월8일 - 정지영·이명세 감독,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등 영화인 20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긴급 기자회견 개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