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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뒤늦고 설익은 반항 vs. 퇴행적 극우 백래시 - 독재의 후과로 만들어진 한국 사회 ‘반감의 정치학’

<암살자(들)>이 개봉 직후 ‘또 하나의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자, 국민의힘 등 자칭 ‘보수’세력은 대대적인 백래시(반발)를 시작했다. 그들의 세 가지 콤플렉스가 동력이 됐다. 첫째 역사 콤플렉스. 그들은 ‘좌파’가 역사를 독점한다고 믿는다. 그 피해의식은 스타벅스코리아와 배재고 야구부가 야기한 논란을 거치며 근래 더욱 짙어졌다. 둘째 영화 콤플렉스. 그들은 영화가 여론과 정치를 움직인다고 믿으며, 그 영화판을 ‘좌파’가 장악했다고 여긴다. 가령 후쿠시마 참사 이후 논쟁 결과 월성1호기 하나가 폐쇄됐는데도 ‘영화 한편(<판도라>) 때문에 탈원전 정책이 시작되었다’는 서사를 만들었다. 셋째 ‘유가족’ 콤플렉스. 그들은 반정권 투쟁으로 나아간 세월호 참사·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 이번엔 자신들이 ‘육영수(박정희)의 유가족’처럼 처신한다. 실제 유가족인 박근혜씨가 유영하 국회의원을 통해 입장문을 내자 그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의 개입으로 이내 논란의 지형은 바뀌었다. 세 갈래로 진격하던 백래시가 모두 암초를 만난 탓이다. 첫 번째 백래시는 사법적 압력과 상영 중단 요구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배후로 설정하지 않았다”라는 감독의 해명에 힘을 잃었다. 극 중 문태광이나 실제 문세광이나 박정희를 일관되게 노린다. “박정희가 저 죽을 짓을 했겠는가”, “그 밖에도 배후를 특정한 바 없다”고 하면 사자 명예훼손 혐의는 가볍게 벗겨진다. 둘째는 ‘때는 이때다’ 싶어 튀어나온 역사왜곡과 음모론이다.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전두환도 윤석열도 내란 아니다”라고 했다. 같은 당의 주진우 의원은 중국계 자본과 중국공산당의 영화 투자를 의심했다. 제작사는 중국 자본이 유입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들에게는 비판할 자격이 없다, 고 많은 이들이 판단하게 됐다. 셋째는 영화 관계자를 향한 인신공격과 위협이다. 주진우 의원은 배우 유해진씨에게 “북한상(相)”을 운운했고, 10월4일 극우단체 신자유연대는 유씨의 집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스타벅스코리아에 대한 불매운동이 폭력적이라 떠든 이들이 “보기 싫다”를 넘어 “그 얼굴 좀 보자”라는 식으로 나온 것이다. 그들은 결국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제 수준을 폭로했고, 그에 힘입어 쟁점은 ‘역사왜곡’에서 ‘예술의 자유’로 옮겨갔다.

이제 논쟁은 진영 대립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거리를 두는 듯하던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영화의 전면적 변호인으로 가담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또 이를 전열 정비의 찬스로 활용할 것이다. 박근혜씨의 입장이나 수사 담당자였던 김기춘씨의 등장은 진영 대립을 더욱 굳힐 뿐이다. 이 대립은 다양한 시민들을 밀어낸다. 또한 내용도 모르면서 공격하는 자와 덮어놓고 방어하는 자의 다툼이 치열해질수록 영화에 대한 진지한 검증은 묻힐 수밖에 없다. 공론장이 진영 대립에 잡아먹히는 것은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을 방치하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논리적이고 사실지향적인 ‘레드팀’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오직 당국의 탄압과 방해를 받을 뿐 추리에 막힘이 없다. 별다른 혼란을 느끼지도 갈림길에 서지도 않는다. 레드팀은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 극장의 바깥에서라도 결성되어야 한다.

레드팀이 부재한 이 영화는 유보하거나 접어야 할 의혹들도 주요 단서로 배치해두었다. 대표적인 것이 문태광이 입원했던 병원에 관한 의혹이다. 병원에서, 그것도 인근에 민가가 있는 병원에서, 사격훈련을 했다는 데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문세광의 입원(1974년 2~3월)은 권총을 훔친 시점(같은 해 7월18일)보다 이르다. 문세광은 악력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었다(범행 당시 그는 무거운 더블액션 방아쇠를 연달아 당기는 속도가 빨랐다). 그 ‘사격훈련’이 실탄 훈련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일본 경찰이 문세광이 한국에서 자백한 내용을 참고해 야마토강 바닥에서 권총 부속품을 찾아냈다는 사실도 영화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행사 직원이 문세광의 호텔방에 전화를 걸었을 때 한국어가 들렸다는 증언도 ‘동행자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 당시 이미 알려진 바, 문세광은 국립의료원 의사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등 간편한 한국어는 할 줄 알았다. ‘영화는 총성과 탄환’에 관해서도 이견을 손쉽게 배척했다. 총성 중 일부가 에코일 가능성에 대해 영화는 “같은 공간에서 한발에만 에코가 생길 수는 없다”고 곧바로 답한다. 그러나 같은 공간, 같은 위치에서 총구의 방향만 바뀌어도 반사음의 상대적인 크기 등 총격 녹음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총성 녹음 분석 전문가인 로버트 C. 마허 몬태나주립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과 교수의 연구 참조). 또한 총성이 아닌 소리(가령 마이크 접촉음)가 총성처럼 들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지적들을 “영화를 다큐로 받지 말라”며 넘길 수 있는가. (사회적 책임을 따지기도 앞서) 이들은 작품성이나 극적 재미와 작품성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이 영화가 허구로 첨가한 설정에서도 중대 문제가 노출된다. 그동안 박정희 정권을 다룬 여러 영화들은 허구를 적극적으로 동원하면서도 진실성을 담보했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 전복된 캐릭터들은 남근주의 블랙코미디를 빚어냈다. <효자동 이발사>의 고스톱 간첩단 사건은 인혁당 사건을 비틀어 재현한 것이다. <암살자(들)>은 김형욱 사망에 관한 가장 유력한 설에 토대를 뒀고, 박정희의 분할 통치 계략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반면 <암살자(들)>의 허구적 설정 가운데는 실화와 견주어지는 순간 영화의 에너지와 신뢰도를 급격히 떨어트리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급하게 대통령의 연단이 방탄용으로 교체되었다는 건 그간의 의혹 목록에도 없었다. 대통령 경호계장이 경찰을 폭행하면서까지 문태광의 입장을 도운 장면도 실화와 다르다. 문세광의 입장 과정에서 지근거리에 있었던 서울신문사 권영길 기자의 회고에도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기야 위세가 높았던 경호실이 굳이 폭행까지 할 이유가 없다. 정말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면 대놓고 수상한 지점을 남길 리 없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에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공작’을 그린 영화답지 않다는 것이다. 공작은 권력 핵심부의 다수조차 모르고, 바로 옆의 동료마저 속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의심을 자초하거나 은폐에 가담하는 주체들은 여러 기관에 걸쳐 너무 넓은 전선을 형성한다.

문태광 사건이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이어지는 설정은 이 영화에서 가장 나쁘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수사 당국의 속도를 빠르게 따라잡으며 의혹을 겹겹이 쌓아놓았다. 그럼에도 끝내 “진상 규명 이상으로 언론 자유가 중요하다”고 강변하는 것은 시시하거나 교활하다. 1970년대 언론 탄압을 묘사하는 데 문세광 사건 이상으로 적합한 실화는 숱할 것이다. 이 여러 사건들에서 기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감시를 따돌리고 진실을 송고하는 줄거리였다면? 배우들의 치열함도 더 돋보였을 것이다. 때로는 의혹 제기만으로 가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의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20여년 전 몇몇 언론이 의혹을 제기한 이후 딱히 의혹 제기가 진척된 것도 아니다. 독재정권기 사건과 의혹의 백과사전 격인 김충식의 개정증보판에도 문세광 관련 음모론은 없다. 김대중 납치사건과 문세광 사건의 연결 고리, 사건 이후 박정희가 가진 회한은 소개되는데도 말이다. 문세광 사건 음모론은 흘러간 시간이 무색하도록 너무 설익고 너무 뒤늦었다.

필자는 1990년대 중반 청소년기에 문세광 사건 음모론에 이끌렸었다. 독재자와 그를 무턱대고 찬양하는 기성세대에 반감이 컸다. 이 영화의 설익고 뒤늦은 반항과 이 영화에 대한 퇴행적 극우 백래시도, ‘반감의 정치학’에 젖은 한국 사회를 폭로한다. 아마 이런 진단에 “저쪽이 잘못했으니 저쪽부터(저쪽만) 욕하라”라는 말이 쉽게 튀어나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진실과 윤리와 논리를 좇고 자기 책임부터 지는 일은 뒷전이라는 자백이다. 여기서는 상대를 반대하는 운동마저 제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자신이 짜놓은 서사에 함몰되니 상대의 진짜 문제를 잡아내지 못한다.

이 ‘반감의 정치학’의 기원에는 ‘독재’가 있다. 독재는 언론을 옥죄고 시민 참여를 봉쇄하고 인간을 고문한다. 과정에 대한 불신 때문에 국가가 사실을 발표해도 국민이 믿지 못하게 만든다. 민주화된 세상이라면 실화와 영화에서처럼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발사된 탄환이 수거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되었을까. 언론은 연이은 추적 기사와 팩트 체크와 탐사보도를 내놓았을 테다. 국회는 청문회 정국으로 돌입했을 것이다. 음모론이 완벽히 해소되지는 못했더라도, 반세기 동안 구천을 돌다 전 사회적인 논란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를 역이용한 극우의 준동도 없었을 것이다. 독재는 자정을 앗아갔다.

참고문헌

중앙일보. 1974. 「의혹에 싸인 문세광의 행각」. 『중앙일보』, 8월20일, 6면.

정천수. 1974. 「문세광 수수께끼」. 『중앙일보』, 8월26일, 3면.

중앙일보. 1974. 「악력기로 1년 전부터 격발연습-문은 속사수」. 『중앙일보』, 8월26일, 7면.

警察庁. 1975. 『昭和50年 警察白書』.

第7章「公安の維持」, 1(1)イ「朴韓国大統領そ撃事件」.

Maher, Robert C. 2011. “Acoustical Modeling of Gunshots Including Directional Information and Reflections.” 131st Audio Engineering Society Convention, Paper 8494, pp. 1–7.

권박효원. 2005. 「[비화] 문세광 사건 당시 죽다 살아난 권영길」. 『오마이뉴스』, 1월21일. 김경환, 『권영길과의 대화』(일빛, 1997)의 관련 대목 재인용.

대통령경호실 교리발전부. 1998. 「8·15사건 사례연구」. 내부 연구보고서(연구담당: 이선기). 조갑제닷컴, 「8·15 사건 사례연구」, 2005년 2월14일 전재. 1999년 관련자 면담자료 함께 수록.

정순태. 1999. 「대통령 경호실, 서거 25년 만에 陸英修 피격 사건의 현장 復元·反省·교훈 도출」. 『월간조선』, 8월호.

김충식. 2012. 『남산의 부장들』. 개정증보판. 폴리티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