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에서 눈밭으로 던져진 작은 아기. 한 나무꾼의 아내가 아이를 발견하고 품에 안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한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은 죽음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살아남은 아이와 그를 돌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장클로드 그륑베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은 참혹한 역사를 동화적인 그림체로 옮겼다. 제84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5관왕을 수상한 <아티스트>에서 무성영화의 형식을 되살렸던 그는 이번에는 고전적인 2D애니메이션을 선택했다. 폭력을 낱낱이 재현하는 대신 몇개의 선과 색채로 비극을 암시하고, 그 안에서 인간이 지켜낼 수 있는 선의를 발견한다. 제28회 BIAF를 찾아 처음 한국을 방문한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에게 역사적 진실과 상상력 사이에서 애니메이션이 할 수 있는 일을 물었다.
가장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되는 순간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이 원작에서 발견한 것은 극한상황에서도 인간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우리 안에는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알려주는 나침반이 있다. 세상의 기준이 뒤바뀌는 혼란 속에서도 그나침반을 지키며 행동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도 의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진정한 영웅이 누구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의 인물들은 처음부터 영웅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과 마주한 순간 잠재된 선의를 끄집어내 온기를 전했다. 그가 원작 속 특정한 장면보다 이야기 전체에 매료된 이유다.
이러한 믿음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과도 맞닿아 있다. 실사영화에서 배우의 목소 리와 몸짓은 인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결정하지만 애니메이션의 그림은 더 많은 것을 암시하며 관객의 상상력을 불러낸다. “극영화 대비, 애니메이션은 적은 요소로도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관객이 스스로 상상하면서 이야기의 의미를 받아들이게 하는 데 적합한 형식이다.”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에게 애니메이션은 역사적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의 관객이 인간의 보편적인 양심을 발견하도록 돕는 매체다.
첫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경험한 자유로움도 남달랐다. 날씨와 거리, 건축물부터 인물의 의상과 외모까지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어려움을 동반했다. 수많은 애니메이터가 각기 다른 장면을 동시에 제작하는 만큼 개별적인 그림들을 하나의 일관된 세계로 통합해야 했다. “실사영화는 한 장면을 촬영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만 애니메이션은 수백개의 장면이 동시에 진행된다. 전체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두고 각각의 작업을 긴밀 하게 살펴야 했다.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영화로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이 동시에 주어지면서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진실을 감추지 않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은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다루면서도 폭력의 순간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눈 덮인 숲과 동화적인 인물들은 잔혹한 현실을 잠시 가리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죽음의 기차와 강제수용소의 역사가 놓여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 진실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폭력의 재현을 절제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은 그 균형점을 이야기의 본질에서 찾았다. “끔찍한 진실을 모두 보여주면 아이들 에게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그렇다고 동화라는 이유로 역사적 사실을 걷어내면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 원작은 진실을 전하면 서도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는 균형을 절묘하게 지키고 있었기에 그 지점에 집중했다.”
그의 고민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강제수용소의 시신들을 보여주던 장면. 감독은 움직임을 멈추고 색채를 제거한 목탄화로 죽음을 표현했다. “애니메이션은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그래서 그 장면은 오히려 채색을 빼고 정지시킴으로써 의도적으로 ‘생명을 걷어냈다’. 사실 그림 한장만 떼어놓고 보면 지나치게 자극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그러나 앞서 펼쳐진 이야기를 따라온 관객에게 그 정지된 그림은 수많은 생명이 파괴됐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폭력의 강도는 화면에 드러난 잔혹함의 양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무엇을 보여주지 않았는지, 그 빈자리를 관객이 어떤 기억과 감정으로 채우는지가 중요하다.” 여기서 동화는 현실을 순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현실에 접근하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 어린 관객이 감당할 수 있는 표현의 범위를 고민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삭제하지 않는 것. 그 선택에는 비극을 기억하는 방식뿐 아니라 그것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관한 윤리적 질문이 담겨 있다.
과거의 예술로 오늘의 이야기를 만들다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와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의 2D애니메이션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술적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있는 시대에 오히려 오래된 표현 방식을 선택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에게 고전적인 형식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아니다. “과거의 예술가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새로운 기술만으로 작업하고 싶지는 않다. 이전 세대의 고유한 스타일을 흡수하고 새롭게 창조하면서 예술은 발전해왔다. 마치 역사적 정서와 친밀한 음성, 사운드와 규칙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힙합처럼.”
역사와 예술의 유산을 현재로 가져오는 일에는 창작자의 태도도 중요하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반대편에 선 사람을 쉽게 적군으로 낙인 찍고 공격하는 세상에서 예술가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까. “각자가 처한 상황과 감수해야 할 위험은 모두 다르다. 결국 자신의 양심에 따라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의견 차이가 극단적인 적대로 이어지는 현실은 무척 유감스럽다. 서로 다른 생각이 존재하는 것은 민주주의사회에서 당연하고 건강한 일이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파시즘이다.”
첫 장편애니메이션의 여정을 마친 그에게 다음 애니메이션의 활로를 물었다. “아직 알 수 없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웃음)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을 작업하는 과정은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정말 길고 고통스러 웠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특정 형식을 고수 하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사랑하게 된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표현 방식을 찾는 것이다. 만약 다음 작품의 이야기에 애니메이션이 걸맞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