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맥도나의 카메라가 1973년의 칠레에 좌표를 찍는다.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세계 최초로 자유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자, 중남미의 좌경화를 견제하려던 미국 닉슨 행정부와 중앙정보국(CIA)은 정권 초기부터 비공식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미국은 국제 금융 기구의 지원과 대외 원조를 차단해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한편 반정부 언론과 트럭 운송업자 파업에 자금을 지원하며 사회적 혼란을 유도했다. 정부의 국유화 정책을 둘러싼 국내 정파간 대립에 미국의 외압이 더해지면서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물류 차질, 정권 찬반 시위로 수도 산티아고의 기능은 점차 마비되었다. 결국 1973년 9월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도시를 장악했다.
폭풍의 바깥에서
파트리시오 구스만의 <칠레 전투> 3부작을 떠올려본다. 아옌데 집권 말기의 정국을 산티아고 거리에서 직접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에는, 체제의 향방을 두고 맞선 시민들의 격앙된 얼굴과 통제 불능의 소란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노미상태가 찾아온 도시의 이미지는 카메라가 혼란의 역사를 호명할 때 가장 먼저 응시해온 현장이다. 그러나 <와일드 호스 나인>은 산티아고 내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체제 교란 임무를 마친 두명의 미국 요원을 칠레 서쪽으로 3700km 떨어진 이스터섬으로 데려다놓는다.
<와일드 호스 나인>이 다루는 시간대는 산티아고가 쿠데타에 휩싸이기 직전이다. 파국이 터져나오기 바로 앞의 임계점에서 카메라는 사건의 중심부를 화면 바깥에 두고 인물을 절해고도에 위치시킨다. 이러한 구성은 극작가로 출발한 마틴 맥도나의 작업 방식에서 기원한다. 맥도나의 희곡은 거대한 외부 사건을 무대 위에서 재현하지 않고, 실내 공간에 인물을 가둔 채로 진행된다. <필로우맨>이 전체 주의국가의 폭력을 창문 없는 취조실 안의 심문 과정만으로 드러내고, <뷰티 퀸>이 아일랜드 사회의 침체를 낡은 주방 안에서 벌어지는 모녀의 갈등으로 압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무대의 제약을 역이용해 바깥세상의 구조적 문제를 몇평 남짓한 공간의 언어적·신체적 마찰로 치환하는 극작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할 때도 인물의 활동 반경을 먼저 제한하는 원리는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매체가 바뀌면서 실내의 벽은 인물의 이동을 가로막는 지리적 경계로 확장된다. 보스의 지시를 기다리며 발이 묶인 중세 도시 브뤼허 (<킬러들의 도시>), 외부와 단절된 소도시 에빙(<쓰리 빌보드>), 내전의 포성이 바다 건너 에서 들려오는 가상의 섬 이니셰린(<이니셰린의 밴시>)이 그 변주의 궤적이다. 카메라가 탁트인 야외 풍경을 비추더라도 인물들은 밀실에 갇힌 것처럼 자신이 있는 땅을 벗어나지 못한다. 거시적인 사태를 화면 밖의 조건으로 묶어 두고, 고립된 구역을 만들어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삼아 그곳에서 터져 나오는 인간의 폭력 성을 관찰하는 것이 맥도나 영화의 핵심 문법이다.
카우보이의 말로
칠레 지부장 MJ(스티브 부세미)의 지시를 받은 베테랑 요원 크리스(존 말코비치)와 그의 젊은 파트너 리(샘 록웰)가 이스터섬에 도착한다.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둔 채 모르핀에 의존하는 크리스는 녹음기에 자신의 회고록을 남기면서 그동안 수행한 비밀 작전을 되짚는다. 나아가 섬으로 향하던 도중 우연히 마주친 칠레 대학생 모니카(마리아나 디 지롤라모), 알리시아(아일린 살라스)에게 CIA가 칠레 정국에 개입했다는 기밀을 발설한다. 이때 인물들 사이에는 두 갈래의 긴장이 형성된다. 하나는 삶의 끝에 선 가해자가 뒤늦은 죄책감 속에서 정작 자신의 공작으로 인해 미래를 빼앗길 피해자 세대와 유대를 맺으려는 역설적 관계다. 다른 하나는 통제를 벗어난 멘토 크리스를 제거하라는 조직(MJ)의 명령과 그와의 개인적 우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리의 딜레마다.
두 갈래로 뻗는 관계의 긴장은 이스터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적 조건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산티아고의 정치적 소음이 차단된 폐쇄성과 사방이 트여 있는 지형적 개방성을 함께 가진 이곳에서 크리스의 신체적 쇠락과 리의 윤리적 갈등이 부딪친다. 외부인의 유입이 가능한 초기 관광지라는 특성 덕에, 아옌데 정부를 지지하는 칠레 대학생들은 요원들의 동선에 우발적으로 끼어든다. 이스터섬은 본토에 심어둔 폭력의 결과를 마주하는 장소로 전환된다. 카메라는 모르핀에 취해 비틀거리는 크리스의 노쇠한 육체를 광활한 태평양의 해안선 및 모아이인상과 한 프레임에 배치한다. 침묵하는 거대한 돌덩이들이 화면을 장악할 때, 한때 이름을 날렸던 첩보원의 위상은 죽음을 앞둔 초라한 노인의 초상으로 변모한다.
마틴 맥도나의 첫 미국 배경 영화였던 <세븐 싸이코패스>는 할리우드를 무대로 각 본가가 폭력적인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을 다룬다. 각본을 다 쓴 주인공이 집을 나서는 모습이 담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인물을 찍지 않는다. 대신 시선을 위로 옮기며 불에 타 반도 남지 않은 성조기가 펄럭이는 곳을 바라본다. 성조기를 태운 것이 마틴 맥도나였다는 사실은 <와일드 호스 나인>에서 다시금 입증된다. 맥도나는 거대한 권력 앞에 놓인 개인들이 행하고 또 마주하게 될 폭력의 서사를 파고들어왔다. 칠레 쿠데타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지났음에도, 미국은 여전히 군사 작전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직접 축출한다. 강대국이 타국의 운명에 개입해 체제를 뒤바꾸는 힘의 논리는 현재진행형으로 작동하고 있다. 시대마다 명분은 달라졌을지언정 주권국가의 체제를 외부의 물리력으로 재편하려는 제국의 습성은 변하지 않는다.
섬 곳곳에는 야생마가 활보하고 있다. 평생 국가라는 마주(馬主)에게 길들여진 채 명령을 수행하던 크리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그는 침묵의 규칙을 깨고 자신에게 씌워졌던 제약을 벗어던진다. 그러나 이윽고 말의 시체가 그의 앞에 놓인다. 폭력으로 세계를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냉전기의 카우보이들은 결국 자국 시스템에 의해 폐기된다. 크리스가 리와 비밀리에 맺은 언약이 이행되는 순간에도 이스터섬의 풍경은 아무런 동요가 없다.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이미 가동된 미국의 공작 시스템과 칠레의 쿠데타는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사람을 좀 덜 죽이고, 말들과 시간을 더 보낼걸 그랬다”라는 크리스의 독백은 아무런 구원을 선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마주의 굴레를 벗어던진 그의 참회만큼은 진실하게 남는다. 폭력의 시대 한가운데 놓인 우리가 끝내 바랄 수 있는 것은, 그저 말들과 시간을 보내는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