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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죽음과 그 모든 문제들에 관한 이야기, <와일드 호스 나인> 마틴 맥도나 감독 인터뷰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공개할 때 ‘죄책감’과 ‘후회’라는 단어를 시나리오 첫장에 써두고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순서를 따지자면 시나리오를 쓰면서 두 키워드를 떠올렸다고 보는 게 맞다. 먼저 극중 배경인 라파누이를 시네마틱한 캐릭터로 포착하는 일이 중요했고, 그다음엔 크리스(존 말코비치)와 리(샘 록웰), 두 남자가 왜 그곳에 존재해야 하는지 나 스스로 납득해야 했다. 지금의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까지 여러 버전의 대본이 있었다. 주인공들이 CIA 요원인 점도 여러 수정고를 거친 후에 결정됐다. 하지만 그들이 CIA 요원이 되자, 1973년 칠레에서 CIA가 벌인 모든 슬픔과 참상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한번 감이 잡히니 죄책감과 후회라는 작품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딸려나왔다.

- 당신의 전작처럼 두 인물의 수많은 대화로 이루어진 영화라 특히 존 말코비치와 샘록웰은 촬영 전부터 호흡을 맞추는 데 주력했을 것 같은데.

존과 샘은 리허설을 시작하기 몇주 전부터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둘뿐만 아니라 스티브 부세미, 파커 포시, 아일린 살라스, 마리아나 디지롤라모도 함께였다. 라파누이에 도착해서도 우리 모두는 같은 호텔에 머물렀다. 존과 샘이 거의 매일 저녁 식사 때마다 식당 구석에서 대사를 맞추며 다음날과 그 주에 촬영할 장면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논의하더라. 작품을 향한 존과 샘의 헌신이 감독인 나는 물론 영화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작업을 보다 쉽게 만들었다. 그들은 촬영 당일 아침에 이미 자신이 정확히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았고, 찍을 장면에 완벽히 몰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킬러들의 도시> <이니셰린의 밴시>처럼 이번 영화 또한 나이와 경력 차이가 큰 남성 짝패의 우정을 다룬다. 스토리텔러로서 남성간의 우정과 진한 감정의 교류를 다루는 일이 중요한 작업 동력 중 하나인가.

우정의 표면만 취하는 피상적인 버디무비나 남성 콤비의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모습만 보여주는 경찰영화는 많지 않나. 남성들 사이에 오가는 내밀한 우정을 깊고 섬세한 방식으로 살피는 영화는 여성영화에 비할 때 그 수가 훨씬 적었다. 그래서 더욱더 남성들끼리 나누는 우정의 민감도를 영화로 탐구할 필요성을 느낀다. 두 인물의 나이 차이는 일종의 부자지간 같은 기운을 풍기지 않나. 부자 사이를 고찰하는 동시에 세상만사에 지친 남성의 초상을 두 사람 중 연장자를 경유해 그리고 싶었다.

- 그간 당신의 작품에서 남성의 우정을 다룰 땐콜린 패럴이 연기한 젊은 쪽이 서사의 주체 자리에 위치했다. 한데 <와일드 호스 나인>에선 서사의 초점이 나이 든 쪽, 즉 존 말코비치가 연기한 크리스에게로 이동했다. 스크린 밖에서 시간의 흐름을 겪은 감독 겸 작가의 변화라고 보아도 되나.

변화를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심 이전 작품과 완전히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크리스는 극 중 겪고 있는 질병 등 여러 상황 때문에 치밀할 정도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발화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크리스의 언행이나 태도는 나이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연령이라는 단일한 요소가 아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통찰과 관련이 깊다. 이 점이 크리스의 회한과 죄책감을 영화 안으로 운송하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했다. 젊은 캐릭터에겐 이같은 충격이나 무게감을 부여할 수 없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1973년의 칠레를 다루다 보니 <와일드 호스 나인>은 자연스럽게 죽음과 그 모든 문제들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다. 영화가 소재로 취하는 이야기들이 무겁긴 하지만, 여전히 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상이한 두 요소를 가지고 작업하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킬러들의 도시>의 브뤼허, <쓰리 빌보드>의 작은 마을 에빙, <이니셰린의 밴시>의 섬마을 이니셰린, <필로우맨>의 취조실 등 당신은 언제나 외따로 떨어져 외부자와 교류할 일이 적은 지역을 공간 배경으로 삼았다. 이번 영화의 주요 공간인 이스터섬 역시 같은 궤에 놓을 수 있겠다.

연속으로 섬을 배경으로 한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자기가 처한 끔찍한 현실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고 갇혀 있는 자에 대한 이야기다. <와일드 호스 나인> 역시 어느 정도 세상과 단절된 섬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은연중 자각하는, 억류된 이들의 정념을 다룬다. 적어도 등장인물 중 한명은 이 상황을 어느 정도 내면화하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고립감이 영화의 폐소공포적인 분위기까지 더한다. 하지만 동시에 섬은 공간 자체로 매우 아름답고 영화적이다. 장소가 비치는 시네마틱한 아름다움 역시 이야기의 배경을 고를 때 중요하게 작용한다.

- 삽입곡 각각이 영화의 특정 장면과 알맞게 조응한다. 특히 존 말코비치가 극 중에서 <Both Sides Now>와 <I’m So Lonesome I Could Cry>를 흥얼거리는 순간이 심금을 울린다. 두 음악의 활용 경위가 궁금하다.

우선 그 두곡은 시적인 가사와 선율이 훌륭한 유기성을 이루어 좋은 노래들이다. 행크 윌리엄스의 <I’m So Lonesome I Could Cry>는 특히 가사가 기묘하다. “울새의 흐느낌을 들은 적 있나/ 고엽이 죽기 시작할 때/ 나처럼 울새도 삶의 의지를 잃었네”(Did you ever see a robin weep/ When leaves begin to die?/ Like me, he’s lost the will to live)라는 구절이 언제나 나를 낯선 감각으로 매료해왔다. <Both Sides Now>는 주로 환희의 순간에 찾게 되는 노래라 이를 슬픈 장면에 사용하면 다소 직관에 어긋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이 부조리한 효과를 낸다. 친구들의 행동이 이상해졌고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한다는 <Both Sides Now>의 가사(“But now old friends are acting strange, They shake their heads, they say I’ve changed”)를 아예 크리스의 대사로 차용하기도 했다. 마치 그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회고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말이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작품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12곡 정도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곤 한다. 영화에 쓰인 롤링 스톤스의 <Out of Time>도 시나리오를쓸 때부터 플레이리스트에 있던 노래다. <와일드 호스 나인>에 삽입된 사운드트랙은 단지 내가 좋아하고 영화에서 듣고 싶은 종류의 음악일 뿐만 아니라, 1970년대를 시간의 지축으로 삼는 곡들이기도 하다. 음악을 통해 관객이 즉시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