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말코비치는 <와일드 호스 나인>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의 볼피컵(배우상)을 안았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결과가 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연기한 크리스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떠버리다. 자신이 방첩요원이라는 걸 만천하에 드러내고 누굴 만나도 나이가 벼슬인 양 무례를 일삼는다. 또 이 남자는 믿을 수 없는 화자라 서사 내부의 말과 영화 전체의 진실 사이에 계속 간극을 벌려 관객을 의심하게 만드는 허풍선이다. 말기암과 경미한 치매까지 앓느라 밤낮으로 회한에 잠겨 “나는 살아 있어. 아직 살아 있어”를 읊조리다가도, 누군가 자신을 기습할 기미가 보이면 언제 아팠냐는 듯 민첩한 속도로 반응하며 공격권을 손에 쥔다. 그 안엔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 그는 어떻게든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고 다음 세대가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도록 애쓴다. 존 말코비치는 고작 116분의 러닝타임 안에 이 모든 레이어를 힘 하나 안 들이고 설복해낸다. 와중에 그의 오랜 경력을 지탱하던 매력은 풍화되지 않았다. 총기 어린 눈동자, 어절 사이에 남기는 희한한 휴지, 남다른 의상 소화력이 펄떡이며 크리스를 감싼다.
존 말코비치의 필모그래피에서 <와일드 호스 나인>의 크리스와 가장 맞닿은 배역은 <사선에서>의 미치 리어리일 것이다. 미치 역시 CIA 출신이고, 크리스와 미치의 영화 속 행보는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두 영화 모두 두 남성의 긴 대화로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채운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선에서>의 주동 인물은 단연 프랭크 호리건(클린트 이스트우드)인데도 미치는 대화 시퀀스에 한해서 액션을 주도하고 여기서 프랭크는 철저히 리액션을 도맡는다. 대화 시퀀스 전체가 존 말코비치의 장기를 만나 영화와 함께 날아오른다.
존 말코비치는 <사선에서>의 앤태거니스트로 마지막 오스카 후보 지명(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관객은 존 말코비치가 영화의 빌런으로 분할 때 특히 찬사를 보냈다. 이를테면 <사선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총구를 입안에 집어넣으며 도발하는 존 말코비치의 한숏으로 기억된다. 밈까지 만들어낸 악역으로는 39년의 인생 중 25년을 수감됐다던 <콘에어>의 하이재킹 우두머리 사이러스 ‘더 바이러스’ 그리섬, <라운더스> 속 오레오 쿠키를 먹으며 포커를 치던 마피아 보스 테디 KGB가 있다. 그가 영화, 연극, 뮤직비디오를 오가며 창조해낸 <위험한 관계>의 발몽 후작 역시 타인의 감정과 평판을 멋대로 유린하던 명백한 가해자다. 존 말코비치표 F. W. 무르나우(<뱀파이어의 그림자>)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동료를 괴수의 공물로 바치는 걸 주저하지 않는 사이코패스였고, 그는 문어(<마다가스카의 펭귄>)일 때조차 생명윤리에 아랑곳않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였다. 따지고 보면 <와일드 호스 나인>의 크리스 또한 선악이 모호한 인물형이다.
빌런은 개성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를 잊기 어려운 빌런으로 만드는 특색이 곧 배우 존 말코비치의 존재감을 만든다. 먼저 존 말코비치에겐 경계를 허무는 신비가 있다. 183cm의 큰 키와 한때 야구 투수를 꿈꿨을 정도의 건장한 체격이 있지만 그의 연기엔 이른바 마초성이 결여돼 있다. 존 말코비치 자신과 그가 표현하는 남성들은 황제의 권능보다는 황후의 냉소를 휘두른다. 고함치기보다는 속삭이며 거만하기보다는 새침하다. 모두가 강력범보다 지능범이고, 전면에 나서기보다 배후에서 조종하길 택하는 점도 전술한 속성과 궤를 같이한다. 스크린과 무대 바깥에서 존 말코비치가 보이는 자아 역시 그의 남성상에 다른 차원을 입힌다. 존 말코비치는 스스로를 “전형적인 남성들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어 동성보다 이성 친구가 훨씬 많은 이성애자 남성이라 정의했고, 작품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남자들로 가득한 <콘에어>의 현장을 “굳이 집으로 초대하지 않을 법한 녀석들과 일한 첫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사진가 산드로 밀러와 수십년간 함께한 작업을 보아도 그는 살바도르 달리, 체 게바라, 앨프리드 히치콕으로 분장한 만큼 베티 데이비스, 매릴린 먼로, 메릴 스트리프를 소환했다. 레드카펫 위의 존 말코비치를 참고해도 좋다. 그는 <와일드 호스 나인>의 상영을 위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 머무는 동안 17세기 유럽풍의 디올 커스텀 룩, 화이트 슈트, 업사이클링 셔츠 등을 입으며 판에 박힌 남성 배우의 레드카펫 룩에 파란을 일으켰다. 옷을 향한 존 말코비치의 경애는 그에게 패션 디자이너의 직함까지 달아줬다. 21세기 들어 존 말코비치는 엉클 기모노, 테크노 보헤미안이라는 패션 라인을 론칭했다. 두 브랜드의 남성복을 보면 주름이 많이 들어가는 스트라이프 울 슈트나 밑단이 슬림한 팬츠가 많다. 디자이너 본인이 입었을 때 가장 잘 어울릴 법한 옷들이다.
존 말코비치는 어디서든 존 말코비치가 된다. 한번 들어선 절대 잊을 수 없는 그의 성씨보다 확실한 건 얼굴과 목소리다. 숱 없이 반짝이는 머리, 약간 폭이 작은 눈꺼풀과 꽤 큰 귀, 얇은 입술이 채 가리지 못하는 큰 윗니와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비음 섞인 저음까지. 존 말코비치는 장르와 시대, 캐릭터의 성격과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선다. “스타니슬랍스키식 메서드의 의붓자식인 메서드 연기가 말하는 정서적 환기니 하는 것들을 난 하나도 믿지 않는다”(<씨네21>)라거나 “스타니슬랍스키인가, 브레히트인가, 라고 묻는다면 브레히트다”(<레딧> Q&A)라고 답할 정도로 그는 외양과 어조의 정교한 변용을 통해 배역에 닮아가기보다 자신을 캐릭터에 입혀 관객에게 제시하는 유형의 연기자다. 그래서 <존 말코비치 되기>와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존 말코비치 되기> 속 존 말코비치는 존말코비치의 페르소나를 일부 가져왔지만 미들 네임이 다른 허구의 존 말코비치다. 작품이 차용한 건 그의 도상이다. 기꺼이 내부를 들여다 보고 싶게 만드는 개성의 소유자인 동시에 그특질 이외의 것들은 덜어내 수용자가 흔쾌히 자신을 대입하게 유도하는 배우. 덕분에 관객은 존 말코비치가 캐머런 디애즈와 존 큐잭이 각자 빙의된 존 말코비치를 연기해도 무리 없이 납득한다. <리플리스 게임>도 이 특징을 십분 활용한 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5부작 속 3권의 톰 리플리를 연기했다. 변장 없이도 타인을 흡수하는 모방 재능, 자기 내면을 통째로 비워내고 그 자리에 타인의 정체성을 집어넣어도 본연의 매혹은 버리지 않는 심지. 일순간 공기를 바꾸는 우아한 말투와 태도까지. 이 배우는 톰 리플리를 연기하기 위한 자질을 타고났고 그 매력으로 지난 40년간 할리우드를 굴복시켰다. 그리고 그 정점이, <와일드 호스 나인>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