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이룰 수 없는 밤에, 혹은 혼자 멍하니 있을 때 그렇게 빈 시간이 있을 때마다 문득 죽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와, 라고 하자 친구는 놀라서 힘든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딱히 힘든 일이 없어도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누구나 하지 않나. 아니, 그런 생각을 모두가 하진 않지, 라는 대답에 도리어 내가 놀랐다. <말라가의 밤>의 엄마는 밥을 먹다가, 소파에 누워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아, 여행 가고 싶다’ 정도의 뉘앙스로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 혼잣말이었지만 혼자 있을 때만 하는 말은 아니었다. “우리 다 같이 죽을까?” 형우와 은우, 두 아들에게 엄마는 묻는다. 어린 동생 은우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형우)는 단호하게 말한다. “싫어, 난 안 죽을 거야.” 엄마는 같이 죽자는 말을 다신 하지 않았지만 몇년 후 동생과 함께 울릉도로 가는 배 위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선택한다.
친밀한 이가 자살한 후 그 사건을 견뎌내야 하는 이들을 자살 사별자라 한다. 어린 시절 아빠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형우는 어른이 되어 엄마와 동생이 동반자살하는 일을 겪는다.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해 대기업에 입사한 나는 회사와 집이 멀다는 이유로 독립한 후 의도적으로 엄마, 동생과 거리를 둔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을 등한시하던 어느 날, 엄마와 은우는 울릉도로 단둘이 여행을 떠나고 며칠 뒤 나는 엄마와 동생이 배에서 뛰어내렸다는 연락을 받는다. 이후 회사도 그만두고 화물트럭 운전사로 살며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던 나는 아홉살, 열아홉살, 스물아홉살의 나를 만난다. 엄마를 지켜주고 싶던 나를 만나 현재의 나는 되묻는다. 내가 어떻게 했어야 엄마와 동생을 살릴 수 있었을까. 자살 사별자는 많은 ‘만약’들을 되새기며 죄책감과 무기력 사이를 오간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지금은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함. <말라가의 밤>은 자살을 터부시하지도, 자살을 선택한 이들을 무책임하다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슬픔은 그들의 몫이었고, 남은 이는 그 슬픔에 가닿아보려 노력할 뿐이다. 사랑하는 이를 연이어 잃은 자살 생존자가 다시 제대로 살아내기까지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오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 엄마는, 아빠는, 은우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살아남은 나는 영영 알 수 없는 죽은 사람들의 슬픔. 그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살아남은 나는 이별을 뒤로하고 다시 숨을 쉬어본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땐 함께 숨을 참는 것도 방법입니다’(55쪽)라는 프리다이버의 글귀와 함께.
착하고 여린 사람은 나쁜 사람을 상대할 힘이 없거든. 선한 사람이 힘을 가져야 하는데, 대개는 악한 이에게 빼앗기지. 나쁘게 사는 게 언제나 더 쉬우니까. 부끄러움을 모르면 살기 편하거든. 이기기 쉽거든. 속이고, 거짓말하고, 말 바꾸고, 뒤집어씌우고, 뻔뻔하게. 30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