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사고팔고 원하는 신체에 기억을 주입해 새 삶을 살아가는 플롯은 SF영화에서도 유구한 소재다. <토탈 리콜>이나 <셀프/리스>와 같은 영화는 물론이고 로맨스인 <이터널 선샤인>이나 최근작인 Apple TV+ 시리즈 <세브란스: 단절>도 기억과 신체의 복잡한 관계를 다루고 있다. 무엇이 나를 나답게 하는가, 라고 했을 때 어쩌면 외모나 신체적 특징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 진짜 나를 증명하는 특질이기에 무수한 작가들이 기억을 소재로 미래 세계를 그리는 것일 테다. <데드 헤드 대드>는 2057년 인간의 뇌를 스캔해 기억 정보를 저장해두는 시냅스 칩을 개발해 인류가 죽지 않고 살게 된 근미래를 그린다. 신체가 병들어 사망 선고를 받더라도 자신의 기억을 칩에 저장해두면 복제된 신체로 기억을 옮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인공 현은 의체 개발을 하는 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하며 전투용 의체를 개발하고 있다. 능력을 인정받아 커리어는 탄탄대로를 걷는데, 우연히 범죄 조직이 아락실이라는 유흥업소를 통해 죽은 이들의 신체를 부활시켜 성매매에 이용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중엔 아동의 의체까지 있었다. 현은 위험을 무릅쓰고 법정에서 증언을 한다. 커넥션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상상도 하기 힘든 범죄 조직 ‘도마뱀’은 현의 가족을 살해하고, 그 역시 목숨을 잃게 되지만 기억을 이식한 새로운 전투용 의체에서 깨어나게 된다. 깨어난 현이 아내와 딸을 죽인 도마뱀의 우두머리를 찾아내 복수를 한다… 이게 전부였다면 <데드 헤드 대드>의 플롯과 전개가 지금처럼 몰입감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 이 소설은 하나의 설정을 더 주입시킨다. 현이 부활한 신체엔 두억시니라는 연쇄살인마의 의식이 깃들고, 현은 두억시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오르바사(도마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현이 뛰어난 해킹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두억시니는 육체를 살인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시시때때로 말을 거는 두억시니와 함께 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범죄물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점차 연쇄살인마에게 동화되어가는 현이 ‘무엇이 진짜 나의 생각인가’라는 고뇌에 빠져들면서 소설은 ‘나를 이루는 것의 핵심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으로 나아간다. 어려운 과학적 소재와 미래적 배경을 지녔지만 <데드 헤드 대드>는 무엇보다 범죄 추리 소설로서도 탄탄한 복수 서사를 지니고 있어 장르적인 쾌감을 준다.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뻗어가지만 현과 두억시니의 기억 속 대화들은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아저씨는… 누구예요?”누구냐는 그 질문에, 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문장으로 완성되지 못한 단어의 파편만이 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현은 잠시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대답이 될 만한 말을 생각해낸 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23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