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러 터르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각인된 것은 <사탄탱고>이후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1955년부터 생을 마감한 2026년까지, 그는 다양한 단편과 장편영화, 믹스 미디어 프로젝트를 작업했다. 느린 속도의 시각을 견지하며 인간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벨러 터르의 생애 주기와 필모그래피를 엮어 살펴보았다. 번호가 함께 표기된 장편작의 세부 정보는 이어지는 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55
7월21일 헝가리 페치 출생. 무대디자이너인 아버지와 극장의 프롬프터인 어머니와 함께 부다페스트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965
10살 되던 해, 어머니의 권유로 배우 캐스팅 오디션에 참가했고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각색한 동명의 TV영화에 주인공 아들 역으로 출연했다. 헝가리 국영방송에서 제작한 이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영화 현장을 경험했으나 이후 배우 활동을 이어가진 않았다.
1969
아버지가 14번째 생일 선물로 준 8mm 카메라로 단편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71
친구들과 영화 제작 그룹을 결성하고 <이주 노동자>라는 8mm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일자리를 찾는 소외된 로마인 노동자들에 주목한 이 영화로 인해 공산당 당국의 심문을 받았고, 지망한 여러 대학 철학과에서 입학을 거절당했다. 벨러 터르는 대학 입학이 취소된 이후 완전히 영화로 진로를 결정했고 국립 문화·휴양회관의 관리인으로 일하며 꾸준히 개인 작업을 이어나갔다.
1977
장편 ❶<패밀리 네스트> 제작. 벨러 터르는 그의 작업에서 가난한 헝가리 노동자의 삶을 주로 다뤄왔는데 이를 눈여겨본 ‘벨러 벌라주 스튜디오’가 <패밀리 네스트>의 제작을 지원했다. 그럼에도 넉넉지 않던 예산과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 단 6일 만에 찍은 단편이며 만하임하이델베르크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같은 해 부다페스트의 연극영화예술대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1978
단편 <호텔 마그네지트> 제작. 한 노인 노동자가 공장의 모터를 훔쳤다는 혐의를 받고 해고당한 뒤 공장 기숙사를 떠나게 되는 내용이 담겼다. 룸메이트들과 갈등을 겪던 그는 울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1979
단편 <시네마르크시즘>제작. 화류계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과 사무직 남성.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는 청소부. 욕실에서 샤워하고 청소하는 이들의 독백, 대화로 구성된 실험영화다. 영화학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1981
장편 ❷<아웃사이더> 제작. 벨러 터르의 영화 중 드물게 제작된 컬러영화다. 그는 2015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아웃사이더>가 “당시 헝가리영화계에 대한 반발이자 정치체제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영화계에는 온갖 쓰레기 같은 것들, 거짓이 가득했다. 우리는 문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그저 부숴버렸다. 신선하고 새롭고 진실된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반(反)영화 말이다.”
1982
장편 ❸<불안한 관계> 제작. 헝가리의 유디트 포가니, 로베르트 콜타이 등 전문 배우가 처음으로 벨러 터르 영화의 주연으로 협업했다. 35mm 필름으로 촬영됐으며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부다페스트의 연극영화예술대학교를 졸업했한 벨러 터르는 TV영화 <맥베스>의 각색, 연출, 편집을 맡았다. 이 영화는 단 두개의 숏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메인타이틀이 뜨기 전의 첫숏은 5분, 두 번째 숏은 57분이다. 2001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벨러 터르 회고전, 20211년 모스크바국제영화제 회고전에서 상영됐다.
1983
가보르 보디 감독의 <개의 밤 노래>(Dog’s Night Song)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1984
장편 ❹<가을 연감> 제작. 폐쇄적인 아파트 거주자들의 비밀을 담아냈으며 정교한 미장센과 촬영, 독특한 컬러 조명으로 호평받았다. 벨러 터르 초기작과 다르게 사실주의가 아닌 형식주의가 강조된 작품이다.
1986
미클로시 얀초 감독의 <괴물들의 계절>(Szörnyek évadja)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이후 벨러 터르는 배우로선 어떤 작품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1988
장편 ❺<파멸> 제작.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와의 첫 협업작으로 공동 각본을 썼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미니멀한 미장센, 느린 화면, 인간성 탐구 등 벨러 터르의 연출적 특징이 구축되었다.
1994
장편 ❻<사탄탱고> 제작. 벨러 터르의 대표작이자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린 영화다. 크러스러호르커이 라슬로의 동명 소설을 각색했으며 상영시간은 439분. 탱고의 구성을 따라 12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시간순으로 전개되지 않으며 대부분 즉흥연기로 완성된 점이 특징이다. “대본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재단과 프로듀서들을 위해 쓸 뿐이고, 자금을 모을 때만 활용한다. (…) 스토리는 영화 전체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센시스 오브 시네마>)
1995
단편 <평원에서의 여행>제작. <사탄탱고><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에 등장한 헝가리 대평원의 다양한 장소를 재방문한다. 벨러 터르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삶과, 죽음, 역사에 관해 성찰한 단상이 담겼다.
2000
장편 ❼<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 제작.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소설 <저항의 멜랑콜리>가 원작이며 같은 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2003
제작사 T.T. 필름뮈헤이(T.T. Filmmuhely)를 설립했다.
2004
장편 ❽<런던에서 온 사나이> 제작. 아그네시 흐러니츠키 감독과 공동 연출했지만 느린 전개, 롱테이크 등 벨러 터르의 연출적 특징은 유지됐다. 조르주 심농 작가의 1934년 동일 제목의 소설을 바탕으로 틸다 스윈턴이 주연을 맡았다. 프랑스, 독일, 헝가리 공동제작으로 프랑스 제작자가 제작 도중 스스로 생을 마감해 작업에 차질을 빚었다. 2007년, 벨러 터르의 영화 중 처음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2011
장편 ❾<토리노의 말> 제작. 벨러 터르의 은퇴작이다.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 대상, 경쟁부문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수상했다. 2011년 <시네유로파>와의 인터뷰에서 <토리노의 말>은 “인간 존재의 무거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전했다.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삶의 단조로움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죽음과 같은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저 여름이든 겨울이든 매일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와야 하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끔찍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의 세상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2012
국제영화학교 ‘필름 팩토리’ 설립. 2016년까지 필름 팩토리의 학사·석사·박사 과정의 프로그램 설계자이자 책임자, 교수로 재직했다. 5월, 재정 문제로 자신의 제작사 T.T. 필름뮈헤이의 문을 닫았다.
2017
암스테르담의 아이 필름뮤지엄(Eye Filmmuseum)에서 영화, 연극무대, 설치미술이 결합된 전시 <세상의 끝까지>(Till the End of the World)를 진행했다.
2019
‘비엔나 페스티벌’의 의뢰로 퍼포먼스, 설치미술, 영화를 결합한 프로젝트 ‘실종자들’(Missing People)을 제작했다. 비엔나의 노숙자 250명이 참여했다.
2021
필름 팩토리에서 수학한 발디마르 요한손 감독의 영화 <램>의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다.
2026
1월6일, 지병으로 70살로 부다페스트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