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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여기서 나가>

김진영 지음 반타 펴냄

요즘 같은 경기에 창업을 택하는 건 큰일 날 소리라고 하는데, 사실 창업을 결심한 사람들이 정말 그걸 모를까.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영화 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는 상황에 내몰린 가운데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일을 무언가에 홀린 듯 덥석 저질러버리는 상황도 있지 않을까. 이 이야기에는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돈 쓸 곳은 많은데 그만 실직한 남편과 앞날을 걱정하는 아내가 등장한다. 남편은 죽은 형이 남긴 군산의 땅이 ‘돈이 되는 땅’이라는 말에 솔깃한 나머지, 그곳에 적산가옥풍의 건물을 짓고 베이커리 카페를 열어서 돈을 벌자는 계획에 꽂힌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공간이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서울 아파트 청약까지 포기하여 아내를 실망시킨다. 거기다 예전 같으면 하지 않을 탐욕스러운 짓을 벌인다. 토지 구매 대출금의 이자를 형수에게 떠넘기고, 공사비를 위해 전세금을 쏟아붓고도 모자라 부모님의 땅마저 담보로 잡아버린다. 아내는 남편의 변화가 낯설고 불안하다. 예감이 좋지 않다.

땅에 저주가 먼저 걸려 있었기에 남편이 변해버린 것일까, 아니면 땅에서 한몫 잡겠다는 사람의 욕심이 저주를 불러온 걸까. 사실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형의 죽음도 그렇고, 아버지의 땅에 나타난 낯선 이도 그렇고, 문을 연 카페에서 벌어지는 일도 그렇고 저주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들이다. 일제강점기의 상처가 이제는 관광자원이 되었다고, 돈을 벌어주는 공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과거의 흔적이 남긴 끈끈함은 그냥 이용만 하고 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 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두 여자가 손을 잡는다. 사실 두 여자는 친한 사이가 아니며, 오히려 서로를 의심하는 쪽에 가깝다. 그렇 지만 각자 목표가 있기에 실용적 차원에서 한팀이 되어 조사에 나선 다. 작가의 전작이자 드라마화된 바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각자 불행에 빠진 가운데 일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서로를 불신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며 상황을 헤쳐나가는 여성 콤비의 이야기가 반가울 것이다. 관광지의 매끈한 이미지, 투자와 자산 같은 긍정의 단어들 너머로 실패 앞에 선 중년들이 성공 혹은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몸부림치며 치열하게 다투는 이야기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악을 쓰다간 파멸할 수밖에 없을 텐데, 누구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상황. 저주에 걸렸다고 운명을 탓하고 싶겠지만 사실 모든 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불에서 고개를 내민 형의 얼굴은 무덤에서 나온 듯 부패해 무너져 내린 모습이었다. 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