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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만이 맛본 영화 한 조각 - 책 <시네마 쿠킹 다이어리> 오토나쿨 작가, 박지완 감독

나만이 맛본 영화 한 조각

창작자로서 서로를 리스펙트하던 그들을 공동 작업하는 관계로 이어준 건 정유선 유선사 대표다. <재생의 부엌> <다음으로 가는 마음>을 출간하며 오토나쿨, 박지완과 인연을 맺은 그에게는 소소한 믿음이 있었다. “영화와 요리는 경험한 사람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영화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많은 추억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오토나쿨 작가와 박지완 감독이 거기에 응답하면서, 무엇보다 둘이 힘을 합칠 수 있다는 사실에 반가워하면서 <시네마 쿠킹 다이어리>도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각자 어떤 작품과 음식을 다루고 싶은지부터 공유했다. 신기하게도 겹치는 게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집필이 일사천리로 풀리는 건 아니었다.

오토나쿨 작가는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초반에 정유선 대표가 원고를 한두편 정도 반려했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중압감에 눌려 내 이야기가 아닌 영화 이야기에 치우친 탓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영화를 봤고, 그에 대해 말했을 테니 내 이야기에 집중해 달라는 당부에 곰곰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떠올려봤다. <걸어도 걸어도>와 일본식 냉소면, <카모메 식당>과 오니기리 얘기는 꼭 써야겠더라. 그 영화에 대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박지완 감독은 취향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내가 이 영화를 오해한 거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영화인으로서 동료들의 작품도 거론하게 될 테니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었다. “오해했다면 오해한 대로 적으면 된다”는 정유선 대표의 조언을 붙잡고서야 걸음이 가벼워졌다. “매 끼니 잘 챙겨 먹으려는 사람으로서, 제일 많이 해 먹은 음식과 제일 좋아하는 영화들을 매치해보겠다고 접근하니 어떤 방식으로 글을 풀어가야 할지 감이 잡혔다.”

두 사람의 ‘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어긋나며 어우러졌다. 박지완 감독은 영화사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첫 장편영화를 내놓기까지 겪은 일화를 하나둘 꺼내놓았다. <달콤한 인생>을 제작한 ‘영화사 봄’의 기획마케팅팀 막내였을 때, 대학에서 처음 만난 스승이기도 했던 김지운 감독을 위해 에스프레소를 포장해 촬영장을 오간 일. 단편 <여고생이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앞으로 “<녹차의 맛>을 보고 느낀 감정의 파도를 내가 만든 영화에서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해버린 일. 코로나19 팬데믹 초입에서 첫 장편 <내가 죽던 날>을 편집하던 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접해 “세상이 무너져도 좋은 영화는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일…. 모두 ‘감독’ 박지완이기에 통과할 수 있었던 사건들이다. 그도 원고를 교정할 때에서야 자신이 요리보다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 생각을 많이 했다”는 걸 깨달았다. <케이 넘버>에 관해 쓸 때도 그랬다. <케이 넘버>는 친생 가족을 찾고자 한국을 찾은 해외 입양인들이 입양 기록의 진위를 추적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다. 박지완 감독은 입양 문제에서 시작해 한국의 가부장제까지 건드리며 “멀리 가는” 영화가 준 흥분을 오래도록 품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영화를 만든 조세영 감독의 집념을 향해 “사랑 고백 같은 걸 하고 싶었다”. 저릿한 심경을 옮긴 글에는 뜨끈한 미역국을 언급했다.

밥을 먹어야 밥값을 하니까!

<시네마 쿠킹 다이어리> 책 표지.

그런가 하면 오토나쿨 작가는 영화와 음식을 경유한 일본 생활 에피소드들에 더해 가족 사이를 자주 서성거렸다. “어릴 적부터 식구들과 영화 보는 것에 익숙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집필 시기도 연관이 있다.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그는 오랜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부산에 돌아와 1년간 아버지와 지냈다. 그즈음 집 근처 소극장을 오가며 감상한 영화들이 <시네마 쿠킹 다이어리>에 여럿 담겼다. <딸에 대하여>와 <콘클라베>가 그 예다. <딸에 대하여>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즐겼던 풍기 샐러드의 맛을 되새기게 했다. <콘클라베>는 아버지와 극장 나들이를 다녀오게 했다. 오토나쿨 작가는 그날의 생경한 감각을 이렇게 남겼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와 눈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서 같이 밥 먹는 것이 싫었는데, 저녁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소주에 국밥을 같이 먹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속이 쓰렸다. 일생을 싫어한다고 믿었던 사람의 점점 약해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렇게 명치 어딘가가 뚫린 기분이 들면서 한숨 짓게 한다니.” 그 대목을 읽으며 박지완 감독은 생각했다. “오토나쿨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터놓음으로써 한국에서의 뉴 챕터를 여는구나.”

그 시기는 박지완 감독이 “계속 영화 만들기를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던 시절”과도 겹친다. “그럴 때일수록 밥을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했다. 입맛이 없고, 기력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에너지는 더 떨어진다. 밥을 먹어야 ‘밥값 해야지’라고 외치면서 일어날 수 있다.” 그만큼 <시네마 쿠킹 다이어리>를 꾸리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내가 무얼 보고, 무얼 먹고 기운을 냈는지 돌아볼 수 있었으니까.” 오토나쿨 작가는 조금 다르다. 부산을 떠나 지난해 4월부터 서울에 자리 잡은 그는 “아버지를 위해 1년 동안 바짝 요리하고 난 다음 음식에 손을 놓아버린 상태”라고 한다. “최근에는 다시 빵도 굽고 몸을 움직이고 있지만, 서울에서는 도쿄나 부산에서와는 다른 루틴을 쌓아가고 싶다. ‘일단 쉬자, 그리고 여유를 갖자.’ 그렇게 주문을 외며 애쓰고 있다. 박지완 감독이 읽어낸 것처럼, 나의 ‘뉴 챕터’를 잘 맞이하고 싶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1월에는 극장 개봉작을 부지런히 관람했다는 오토나쿨 작가는 2월의 기대작으로 <센티멘탈 밸류>를 꼽았다. 동의의 탄성을 지른 박지완 감독도 덧붙였다. “2024년에는 단편 <문을 여는 법>을 찍었지만, 2025년은 휙 날아가버렸다. 2026년에는 반드시 뭔가를 해내고 싶다고 다짐하며 1월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본 <시라트>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올리베르 락세 감독이 내게 ‘구경하지 마!’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극장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 영화가 새삼 느끼게 해줬다.”

<시네마 쿠킹 다이어리>는 식탁이라는 공간도 극장과 닮아 있을지 모른다고 넌지시 속삭인다. 영화도, 음식도, 결국 누군가에게 가닿기 위해 완성되는 것이다. 그게 나 자신뿐일지라도 말이다. 그 쓸모에 공감하는 독자들을 위해 요리 한 그릇을 대접할 수 있다면, 오토나쿨 작가는 버섯 오믈렛을, 박지완 감독은 제철 샐러드를 내어주고 싶다고 한다. “편식을 고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해 맛본 식재료들이 있다. 가지, 명란, 그리고 버섯이 그렇다. 평범한 재료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다른 맛이 난다. ‘이렇게도 먹어볼 수 있어요’라는 의미로 버섯 오믈렛을 드리고 싶다.”(오토나쿨)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설이 지나면 따뜻해질 거다. 초록 이파리들에 토마토를 곁들이면 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 맛을 보며 봄을 기다리자고 말씀드리고 싶다.”(박지완)

Cooking Diary with Cinema

박지완 감독은 해외 입양을 다룬 다큐멘터리 <케이 넘버>를 보고 여운이 가시지 않아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생일에도, 생일이 아닌 날에도” 먹을 수 있는 미역국이 상징하는 환대의 기운을 모두가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도쿄 신주쿠에 살던 시절, 오토나쿨 작가는 쓰타야 서점에서 빌려온 <걸어도 걸어도> DVD를 알아본 이웃과 대화하다가 그의 집에서 냉소면을 얻어먹었다. “두번 다시 겪지 못한 일본의 밤이었다.”

“어떤 영화는 알맞은 때 알맞은 사람에게 찾아온다.” 박지완 감독에게는 첫 장편영화 촬영을 마치고 편집하던 시절 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그랬다. 바다에 뛰어들어 그림을 건진 주인공이 언 몸을 녹이며 빵과 와인을 먹는 장면을 보고, 박지완 감독도 바게트를 사먹었다.

오토나쿨 작가가 독자들과 함께 먹고 싶다는 버섯 오믈렛. 그는 <팬텀 스레드> 속 독버섯 요리에 감응하며 이렇게 적었다. “어차피 죽는 인생이라면 이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본 뒤로 떨쳐본 적이 없다.

다이어리에 못다 쓴, 나의 영화-요리 이야기

박지완 감독 - <스포트라이트>

<시네마 쿠킹 다이어리> 책 표지.“<스포트라이트>를 극장에서 총 네번 봤다. 한번은 혼자, 한번은 김지운 감독님과, 다른 한번은 친구와, 마지막으로는 남편과. 그만큼 좋아하는 작품이라 남편과 이 영화를 보고 나와 양지 설렁탕을 먹은 기억을 쓰고 싶었다. 나는 무교인 데 반해 남편은 천주교 신자다. 내가 감독으로서 이 ‘잘 만든 영화’에 감탄할 때, 종교를 가진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극장을 나오면서 너무 힘들다고, 잠깐 앉았다가 일어나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 지친 남편을 달래기 위해 언제 먹어도 같은 맛의 설렁탕 집으로 데려갔다. 같은 영화를 보고 다른 감정에 사로잡힐 때, 늘 그 자리에 있는 음식을 먹으면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으니까.”

오토나쿨 작가 -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

“한국에서 리메이크된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판보다 예쁘게 다듬어진 것 같다. 작품의 정수는 일본판에 있다. 혼자 설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이야기지 않나. 그런데 사실 나는 주인공보다도 주인공의 엄마가 더 궁금했다. 영화에 엄마가 쓴 편지가 나오긴 하지만, 딸을 두고 떠난 여자는 정말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았을까? 딸을 떠나고 나서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그런 질문들에 꽂혀 나만의 답을 써보려고 했는데, 결국 마무리하지 못했다. 영화에 나오는, 영화 속 방식으로밖에 만들어질 수 없는 감자빵의 존재를 생각하며 써보고 싶었던 글이라서 언젠가는 꼭 완성하고 싶다.”

사진제공 유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