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숏드라마가 많이 제작된다고 하지만 이 소식은 놀라웠다. <왕의 남자> <사도> <동주> <자산어보> 등 흥행은 물론 평단의 지지를 받았던 이준익 감독이 숏드라마를 연출한다는 소식 말이다. 그가 연출하는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은 평생 부엌 가까이에 가지 않았던 고하응(정진영)이 어느 날 갑자기 요리를 못하게 된 아내 안순애(이정은)를 위해 식사를 차리는 이야기다. 거기에 부부의 아들 고명복(변요한)이 결혼해 꾸린 가족의 사정도 유기적으로 얽힌다고 한다. 설 연휴 직전, 크랭크인을 앞두고 분주한 이준익 감독을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여러 질문을 던졌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 그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건 한 가지였다. ‘천만 영화 감독이 숏드라마를 연출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그에 대한 이준익 감독의 대답을 옮긴다.
- 요즘 어떻게 지내나. <아버지의 집밥>을 위한 많은 준비를 마쳤을 듯하다.
곧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숏드라마는 제작비가 적게 들고 스태프도 적으며, 촬영 기간과 준비 기간이 짧아 집중하고 있다. 영화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3개월이라면 숏드라마는 1개월에서 1개월 반 정도다. 이야기 규모가 크고 등장인물이 40명 정도 돼 영화 사이즈다.
- 인터뷰 전 각색을 많이 했다고 귀띔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이 많다.
많이 쳐낸 게 40명이다. (웃음)
- 주인공 고하응의 가족들 외에도 원작에 등장하는 요리 가르쳐주는 현 선생, 생선 가게 옹 사장 같은 캐릭터는 어떻게 되나.
등장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가족 중심으로 간다. 고하응, 안순애 두 주인공과 두 아들과 며느리의 이야기로. 이야기의 가지가 뻗어버리면 숏드라마 내러티브로는 불리해진다. 각색을 맡은 작가에게 주문한 건 젊은 하응과 순애의 젊은 시절의 더블플롯이었다. 원작에서 많이 보여주지 않은 두 사람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려 한다(회상 장면은 정진영, 이정은 배우가 아닌 젊은 배우들이 연기한다.-편집자). 웹툰 독자들이 컷과 컷 사이를 상상으로 간격을 메우면서 감상하는 매체다. 영상은 그 간격을 메워주지 않으면 관객들이 이야기의 개연성에 동의하지 못한다. 생활감, 핍진성이 떨어져선 안된다.
- 각색을 맡은 작가가 궁금하다.
<굿바이 싱글> 시나리오를 쓴 신동선 작가다. 내가 제작한 <달마야 놀자>의 연출부였는데, 중앙대 영화과를 나와서 24살에 영화판에 왔다. 그리고 지금 50대가 되었다. (웃음)
- <아버지의 집밥> 전에 허균을 다룬 영화 <교산>과 이금이 작가의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시리즈화 등 좋은 소식이 들려왔었다.
결과적으로 <교산>의 경우 투자를 못 받아서 멈춰 있고,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각색 중인데 지연됐다. 그사이에 키다리스튜디오로부터 숏드라마 연출을 제안받았다. 처음에 고사했으나 회사 후배들이 오히려 독려했다. 연출부 출신 감독 지망생들이 영화나 시리즈로 데뷔하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아지고, 기존 영화나 시리즈는 새롭게 등장하는 스태프나 배우들을 수용하지 못한다. 그런 시기에 숏드라마의 등장은 새로운 인력들이 영상산업에서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가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참여하게 됐다. 그럼에도 새로 만들어진 이 생태계가 열악한 게 현실이다. 숏드라마를 열악한 임금 현실을 감내하고서라도 창작자의 열정을 실현할 수 있는 시험 무대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다 두달 전 베이징대학교에서 <자산어보> 상영과 GV가 있어 중국에 갔는데, 중국 숏드라마 산업이 영화산업을 추월했다는 얘기를 영화진흥위원회 중국출장소를 통해 들었다. 2025년 중국 영화산업은 9조원대, 숏드라마는 12조5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숏드라마가 더 이상 시험 무대가 아닌 산업 무대가 아닐까.
- 산업적 가능성도 확인했지만 숏드라마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숏드라마가 이야기 산업의 구조가 변하는 현장이란 걸 느꼈다. 옛날엔 하나의 시퀀스를 10~ 15분 길이로 만들었다. 1980~90년대만 해도 영화 한편이 8개의 시퀀스로 끝났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퀀스의 길이가 3~4분으로 줄었다. 지금의 숏드라마의 길이는 2분이다. 호모사피엔스가 몰입할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이 2분인 셈이다. 2분이 지나면 몰입도가 떨어져서 2분 안으로 끊어 스토리를 전개하는 거다. ‘디지털 사피엔스’들은 ‘사이다’ 서사를 좋아하잖나. 근데 사이다란 본래 ‘고구마’를 먹을 때 필요한 거다. 요즘은 고구마 없이 계속 사이다만을 원한다. 그만큼 호모사피엔스의 생체리듬이 바뀌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요새 만들어낸 말이 있다. ‘호모 유튜브쿠스’라고. 너나없이 유튜브를 오래 시청한다. 심지어 그마저도 1.5배속으로 본다. 그만큼 인간 뇌의 정보처리 능력, 시냅스의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진 게 아닐까.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그렇다. 이처럼 바뀐 생체리듬에 부합하는 매체인 숏드라마가 산업화되는 게 현실이고. 그렇다고 계속 사이다만 들이부으면 어떡하나. 고구마를 맛있게 잘 전달해야 사이다가 더 맛있다. <아버지의 집밥>엔 고구마가 많다. 하지만 그 고구마를 묘하게 사이다처럼 보이게 했다. (웃음)(원작 웹툰에서 순애는 남편 하응이 요리한 음식이 맛이 없으면 경고를 날린다. 경고가 10번 누적되면 이혼이다.-편집자) 숏드라마 형식에 맞게 과거 영화에서 소비하던 스토리텔링을 숏드라마 형식으로 바꾸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숏드라마계에 자극적인 소재들이 범람하지만 산업이 더 확대되고 지속되려면 다양한 시도가 많아야 한다.
- 평생 가로가 긴 화면비로 영화를 만들어온 이준익 감독에게 숏드라마의 세로가 긴 화면비는 엄청난 도전이 아닌가.
세로 화면은 이미 보편화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틱톡이다. 틱톡이 메타와 인스타그램을 능가하는 플랫폼이 되어 많은 유저들에게 세로 화면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세로 화면이 가로 화면보다 많은 부분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더 집중하게 하는 면도 있다. 예를 들어 인물의 바스트숏을 찍을 때, 가로 화면에선 3분의 1 정도가 인물이고 3분의 2가 배경이다. 하지만 세로 화면이라면 전체의 80%가 인물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바뀐다. 배경은 줄고 인물 정보가 집약되니 심리에 대한 인지 강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환경으로 변하면서, 인간이 관계를 유지하는 템포가 픽셀만큼이나 촘촘해졌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도 오랜 시간을 갖기보다 필요한 요건만 이야기하고 다른 단계로 건너가지 않으면 답답해한다. 심지어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눠도 본론부터 이야기를 전하고, 답이 없으면 불쾌해하지 않나. 빠른 피드백, 끊임없는 피드백이 현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이 되었다. 그와 함께 호모사피엔스도 생체리듬이 끊임없이 가속화되고 있다. 영상매체도 그렇게 전환될 것이다.
- 가속화와 함께 열화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맞다. 부작용이 있다. 열화가 되니 생각이 휘발되기도 한다.
- 요즘 영화를 보면 슬픔이 오래 가지 않는다. 옛날 영화가 오히려 슬픈 감정을 오래 남긴다.
고구마가 있어서 그렇다고 본다. <왕의 남자> 같은 경우에도 고구마만 한가득 먹다가 막판에 사이다가 있다. <사도>도 완전 고구마 아닌가.
- 그래서 이준익 감독이 만드는 숏드라마는 뭔가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러길 바라지만, 그러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못하면 망신이잖나.
- 긴 시간 동안 스크린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닌 작품들을 해왔다. 첫 OTT 시리즈 연출작 <욘더>도 자극적인 소재와 거리가 멀었다. 그런 이준익 감독의 숏드라마가 어떨까 궁금하다.
나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다. 주어지면 일단 신나게 한다. 재밌잖아! 이런 재미형 인간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웃을 수 있다. 게다가 나 혼자 하나? 배우와 스태프들이 90%를 하는 것이고, 감독은 10%만 한다. 감독이란 결국 말의 권력이다. 한마디면 다들 움직여주는 계약을 바탕으로 한. 감독 지시가 있으면, 모두가 최대의 퀄리티를 해내려고 하고, 그들이 몸으로 뛴 흔적들이 관객에게 노동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럴 때 감동이 일어난다.
- 정진영, 이정은, 변요한 배우에게 숏드라마 출연을 제안했을 때 어떤 반응이었나.
이정은 배우에게 매니저를 통해 시나리오를 보내고 제안했다. 사전에 연락해 거절 못하게 만드는 등 비겁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매니저를 통해서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내 드라마를 촬영하고, 곧 넷플릭스 시리즈 <할매>를 찍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정은이란 배우가 일터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정말 헌신적이다. 다른 작품에선 주연을 맡는 변요한 배우도 이 작품에선 중요한 역할이지만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도 헌신하는 것이다. 정진영 배우도 그렇고 다 참된 사람들이다.
- 그들이 모두 모이는 전체 리딩은 언제인가.
2월23일에 대본 리딩을 하고, 2월27일에 크랭크인이다.
- 이준익 감독의 현장은 테이크가 많지 않은 걸로 유명하고 그마저도 첫 테이크를 선호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동주>는 19회차, <박열>은 24회차. 이번 <아버지의 집밥>은 몇회차일까.
<동주>보다 5회차 정도 적은 14회차. 그래도 꽤 많은 거다. 대개 숏드라마 감독들은 7회차로 끝낸다. 두배인 건 물리적으로 7회차로 찍을 수 없는 사이즈라서다. 집, 병원, 골목 등 장소도 많고, 신혼부부 시절 신도 많이 추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