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드라마를 향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한데 어느 CF를 보고 잠시 판단을 유보했다. 2026 슈퍼볼 경기와 배드 버니의 하프타임 쇼 사이에 등장한 코스메틱 브랜드 e.l.f.의 2분짜리 CF다. 텔레노벨라풍으로 만들어진 이 광고의 주연은 멜리사 매카시. 이 CF는 텔레노벨라 특유의 ‘막장 드라마’식 구성을 그대로 패러디한다. 모두가 아는 클리셰가 분량의 한계와 결합하니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고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에 힘입어 (120초지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쩌면 숏드라마도 숏폼이라 가능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모른다. 그래서 숏드라마의 여러 플랫폼 중 가장 최신 앱인 레진스낵을 사용해봤다.
개봉작을 극장 시사가 아닌 스크리너(온라인 스트리밍 링크)로 볼 땐 최소 랩톱, 최대 TV로 감상하자는 주의다. 이 목록에 스마트폰은 없다. 레진스낵도 PC 접속, 스마트TV 연동이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스마트폰을 통한 감상만 가능하다. 스마트폰으로 시청할 때에도 종횡비 전환이 불가해 연출의 의도 그대로 세로가 긴 화면으로만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연출을, 연기를, 숏과 프레임을 분석하기 위한 내 안의 최소 규격이 처음으로 깨졌다. 이어 레진스낵 인기 순위를 점검했다. 1위와 3위엔 <애 아빠는 남사친> <남사친이 좋아진 이유>가 올랐다. 남자사람친구가 여성주인공의 연인이 되는 건 새롭진 않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부터 <응답하라>시리즈까지 이야기꾼이라면 누구나 써먹었던 소재니까. <야한 결혼> <엄마의 남자> 등 ‘치정 로맨스’를 키워드로 달고 있는 작품들의 예고편을 훑으니 “스무살, 새엄마의 남자를 만나다”, ”왜 하필 당신이 엄마의 남자인 건데요?” 등 금단을 건드리는 로그라인이 가득하고, 아지타토의 현악 4중주 아래 모든 장면이 침실의 반라 투숏으로 끝난다. 나중에 알았지만 ‘애 아빠’나 남사친이 좋아진 ‘이유’에도 다분히 성적인 함의가 포함돼 있었다.
대화 대신 방백
그렇게 레진스낵이 자사의 IP를 활용해 자체 제작한 숏드라마 7편을 몰아봤다. 각 숏드라마는 평균 50부작, 전체 러닝타임을 합치면 75분 정도다. 영화보다 짧은 것은 물론 시리즈의 한 에피소드보다 짧지만 몰아보는 데엔 모두 실패했다. 자극적인 이야기가 거의 모든 에피소드마다 몰아치기 때문에, 총 2분이 안되는 에피소드마다 위기-절정-결말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에너지의 안배가 불가피했다. 보통의 시리즈라면 감정의 흐름을 잇기 위해 들어갔을 장면이 숏드라마엔 없다. 이를테면 <애 아빠는 남사친>에서 구인(김신비)은 홀로 육아를 하다 아기가 상한 모유를 먹어 탈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기를 업고 현관문을 나서는 구인의 뒷모습으로 회차가 끝나면, 아기를 업고 현관문에 들어서는 구인의 앞모습으로 다음 회차가 시작한다. 교통체증 속에 차를 내팽개치고 아이를 업은 채 병원으로 질주하는 아버지, 팔목에 수액을 꽂고 곤히 잠든 아이 곁에 무릎을 꿇고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아버지, 치료 후 카 시트에서 잠든 아이를 룸미러로 바라보며 “아빠가 처음이라 미안해”를 읊조리는 아버지는 없다. 지체할 새가 어디 있나. 아픈 아기는 병원에 갔고, 병원에 갔으므로 완쾌했(다고 치는 것이)다. A→B, B→C 사이의 인과가 이토록 명쾌한 내러티브라니!
숏드라마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시청자를 납득시켜야 하므로 관성에 쉽게 기댄다. 익숙한 이미지와 익숙한 스토리가 제시되어야 시청자 또한 숙고의 부담 없이 이야기에 승선할 수 있다. 문제는 숏드라마가 서사의 전형성을 넘어 묘사의 전형성까지 답습한다는 점이다. 다수의 숏드라마 속 인물 묘사는 기존의 미디어가 시각적으로 설파한 고정관념을 공고히 굳힌다. 젠더 이분법, 가해자와 피해자의 외양, 병리와 신체의 상관성 등이 소위 정치적으로 불공정하게 그려진다. 숏드라마엔 대화가 부재하다. 분명 한 시퀀스에 두명 이상의 인물이 매회 등장하고, 한 작품에 삼각을 넘어 사각관계로 인물을 배치하는데도 이들은 대화가 아닌 방백만 이어간다. 숏드라마의 세계에선 전언의 발신과 수신 없이도 소통이 가능한가보다. 흡사 <파이트 클럽> 속 에드워드 노턴과 브래드 피트의 다이얼로그 같달까? 다만 <파이트 클럽>은 이 구성이 영화의 흐름을 전환하는 구체적인 키였고, 숏드라마는 이 구성이 에피소드 내내 이어진다. 다시 말해 개별 캐릭터의 동기나 캐릭터간의 마찰이 빚어내는 사건이 텍스트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꽤 많은 숏드라마에서 결투 시퀀스를 보았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혹은 장르에 따라선 한 남자를 두고 몸으로 싸운다. 하지만 세로가 긴 화면의 특성상 두 캐릭터가 엉키며 맞붙을 때 보여줄 수 있는 프레임은 구타(숏)와 통증(리버스숏)으로 한정적이다. 내화면 너머의 풍경을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신체의 운동과 결합의 측면에서 숏드라마 속 베드신도 논할 법하다. 플랫폼의 자유도로 인해 숏드라마엔 수위가 센 베드신이 빈발한다. 이때 섹스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남녀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교두보로만 쓰인다. 현실과 아주 멀진 않겠으나 우정과 사랑의 경계를 규정하는 방도가 하나고, 하나의 길이 단지 직관적인 이해를 이유로 도파민의 최상단에 위치한 행위로만 한정된다는 점은 다시 묘사의 전형성과도 엮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숏드라마는 분명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한계가 다양한 관객에게 시청각 매체가 가닿기 위해 고민해야 할 선을 방기할 명분이 되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만한 시도
여기서 잠깐. 영화 혹은 시리즈의 포뮬러에 국한하여 숏드라마를 관람하면 안되는 걸까? 포맷이 다르면 통상의 미디어 비평과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할까? 하지만 시와 소설의 비평 준거가 같듯, 숏드라마 역시 시리즈나 영화와 같은 잣대로 논해져야 한다. 짐작건대 숏드라마의 제작진 또한 영화나 시리즈와 동일선상에서 작품이 논해지길 바랄 터다.
레진스낵의 여러 작품 중 <애 아빠는 남사친>은 숏드라마가 품는 제한을 자기만의 독창성으로 돌파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작품의 연출자는 <극한직업>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이다. 워낙 대사의 핑퐁을 통해 말맛을 만들어내는 그의 재능이 긴 대화가 진행되기 어려운 환경 안에서도 꽃핀다. 적어도 대화가 ‘오간다’는 감각만큼은 분명하다. 단조롭기 쉬운 화면 구성 역시 프레임 속 프레임으로 심도를 확보하며 입체감을 얻는다. 무엇보다 좁고 작은 프레임의 제약을 유머의 일환으로 편입하는 방식이 퍽 재밌다. 분할화면은 대개 프레임의 짧은 쪽에 평행하게 선이 그어진다. 시리즈 속 통화 신에서 주로 쓰이는 세로선 2분할 화면이 <애 아빠는 남사친>에선 가로선 4분할로 쓰이며 상황의 복잡성을 한층 강화한다. 와중에 베드신의 편집은 세로선 2분할 화면으로 이루어졌다.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레퀴엠>에 버금가는 실험이다.
이젠 16부작 시리즈조차 더 이상 ‘미니’한 시리즈가 아니다. 어느덧 미니에서 마이크로-미니해지는 미디어 세계는, 화면의 가로비와 러닝타임마저 극단적으로 축소했다. 시네마스코프에서 스마트폰스코프로, 60분에서 2분으로. 여러 아쉬움을 두루 지적했지만 숏드라마를 정주행하며 인상적인 배우들을 두루 발견했다. 프로필을 찾아보니 이전에도 숏드라마 위주로 필모그래피를 꾸린 배우들이다. 이들이 자기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배역과 서사를 만나길 바란다. 영화나 시리즈에서도 좋겠지만, 가능하면 숏드라마 시장 안에서도 그 가능성이 열렸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