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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이 사각관계는 청춘 사이다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 숏드라마의 다섯 가지 코드

숏드라마는 할 일이 많다. 1분30초 내로 기승전결을 모두 선보이고 그 안에 복수 다짐과 복수 실행까지 끝마쳐야 한다. 이를 연쇄적으로 잇고 반복해 시청자가 기꺼이 다음 에피소드를 결제하게 만들어야 한다. 숨 가쁘게 달려가는 숏드라마를 잠시 멈춰 세워, 그들의 ‘질주’를 구성하는 5가지 공식을 정리해보았다.

삼각관계로도 부족하다

<엄마의 남자>

짧은 러닝타임, 단출한 캐릭터 안에서 재미를 주려면 모든 인물들이 서로에게 얽혀 있어야 한다. 덕분에 게스트하우스, 셰어하우스 등의 공간이 유독 숏드라마의 배경으로 애용된다. 숏드라마는 삼각관계로도 모자라 다리의 개수를 너덧개로 늘린다. <남사친이 좋아진 이유>의 주인공은 지운과 해성이지만 지운을 짝사랑하는 하나, 해성의 곁을 맴도는 세현이 맞붙으며 네 남녀는 삼중, 사중으로 관계를 재고한다. <엄마의 남자>의 주인공 이비는 전체 50부작 중 16부까지 전 남자 친구와 현 남자 친구, 현 남편(전부 다른 사람이다)이 자신을 두고 갈등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엄마의 첫사랑이자 자신의 첫사랑인 남자는 물론 그의 이복동생과도 엮인다. 이때 숏드라마는 선택의 기로를 원천차단한다. 보통의 시리즈처럼 까칠하지만 능력이 있는 메인 남자주인공, 다정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서브 남자주인공을 두고 갈등하는 여자는 없다. 화살표는 이미 정해져 있다. 잠시 등장한 로맨스의 경쟁자는 위기감만 조성하고 급히 사라진다. 상대가 재빨리 사라진 만큼 남자주인공은 재빨리 여자주인공에게 고백한다. 갈등과 갈등 해소, 로맨스와 치정을 넘나드는 무한개의 다리는 시청자로 하여금 서둘러 다음 회차를 감상하게 만든다.

청춘이여 사랑하라

<남고소년>

주시청층의 연령을 반영하기 때문일까. 오피스물이 없진 않으나 숏드라마의 주인공은 대부분 10대, 아니면 20대다. 이들은 대개 교복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아 있거나 양팔에 책을 끼고 캠퍼스를 거닌다. 청춘물은 편집의 리듬이 경쾌하며 서사의 진행 속도가 빠르다. 고로 짧은 러닝타임에 많은 이야기를 다뤄야 하는 숏드라마가 이 장르를 자주 소구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들이 재벌 3세거나 추리 동아리원이 아닌 다음에야 복잡한 기업간 인수합병, 플롯이 꼬인 미제 사건이 놓일 확률이 적으니 말이다. 대신 이들은 2분여의 러닝타임 안에 상대에게 마음을 고백할지 말지,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에서 누구 옆자리에 앉을지를 결정한다. 숏드라마가 신인배우의 산실로 기능하기 좋다는 점 역시 청춘물의 장점과 통한다. 연애 리얼리티 출신, 아이돌 출신, 혹은 아직 학부에 재학 중인 신인배우들이 숏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자질을 시험받는다. 제작진 또한 원석 발굴의 장으로 숏드라마를 활용한다. 청춘물의 주무대는 학교, 카페, 자취방 등이다. 고가의 세트가 필요하지 않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숏드라마는 일상적 공간을 반복 활용함으로써 제작비 절감의 효과까지 누린다.

해외에선 로판이 대세

<나의 금지된 알파>

숏드라마가 이미 선풍적 인기를 구가 중인 국가에선 ‘로판’(로맨스판타지)이 대세다. 먼저 서구권 시장(미국, 유럽)에서는 <트와일라잇>의 종주국답게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열풍이다. 릴숏에서 부동의 인기를 수성 중인 <나의 금지된 알파>(Fated to My Forbidden Alpha)는 늑대인간의 자질이 발현되지 않아 따돌림받던 고아 소녀가 늑대인간 무리를 다스리는 절대 권력자 알파와 사랑에 빠져 자기 안에 잠재된 늑대성을 발견하고 각성한다는 이야기다. 작품이 인기를 얻자 릴숏은 문프로덕션과 협업해 <나의 금지된 알파>를 리메이크한다. 리메이크작의 제목은 <구미호, 운명의 짝>으로, 한국인 배우들이 전주 한옥마을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한편 중국 시장에서는 무협지의 설정을 근간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가 인기다. <천년정겁>은 중국 특유의 삼생삼세(세번의 삶) 세계관 아래 신선과 요괴의 사랑, 그리고 여러 번의 환생을 거치며 이어지는 인연을 다룬다. 국내에서도 티빙을 통해 서비스된 <가면의 女子>(원제 <허안>)는 얼굴을 바꿔 살아가던 십칠이 대장군 소한성과 뜻하지 않은 결혼을 하지만, 이윽고 둘이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드라마다.

웹툰과 웹소설로부터

<조상신과 시댁을 묵사발 냈습니다>

웹툰을 원작 IP로 삼거나 웹소설의 흥행 공식을 차용한 숏드라마가 늘고 있다. <남사친이 좋아진 이유> <피치못할 게이다!> 등은 웹툰 원작의 숏드라마다. <비밀 사이> <남고소년>등 BL 웹툰을 원작으로 삼거나, BL 웹소설의 서사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BL 장르의 숏드라마도 플랫폼마다 인기 순위에 안착해 있다. 특히 <썸머 인디고>(유도), <블루 콤플렉스>(수영), <킥인러브>(축구) 등 스포츠 장르의 BL이 숏드라마계에서 주목받는 중이다. 최근 출범한 레진스낵이 레진코믹스와 봄툰의 자체 IP를 기반으로 숏드라마를 제작하는 만큼 향후 원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숏드라마의 편수는 증가할 전망이다. 숏드라마는 웹소설의 흥행 공식인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을 플롯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이를테면 숏차 오리지널 <조상신과 시댁을 묵사발 냈습니다>는 성묫길에 사망한 며느리 은주의 몸에 조상신이 빙의해 자신을 학대했던 시댁을 초토화시키는 이야기다. 숏드라마에 웹소설식 문장형 제목이 많은 것 또한 두 장르의 소구층이 일부 겹침을 드러낸다. <사이비 교주 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내 소울메이트는 유부남 교수님> <전남친의 대표님과 결혼했습니다> <남사친이 재벌이었다> 등은 웹소설이 아닌 오리지널 숏드라마의 제목들이다.

‘사이다’도 장르가 되나요

<동생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웹소설, 웹툰의 스크롤 속도 못지않게 숏드라마의 스와이프 속도 또한 빨라야 한다. 숏드라마의 플랫폼에 들어가보면 ‘사이다’가 별도의 카테고리로 설정된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숏드라마에선 답답한 갈등을 한번에 해결하는 플롯 포인트를 비유하는 사이다가 하나의 장르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 복잡한 빌드업 대신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일순간 터뜨리며 도파민을 갈구하는 시청자의 갈증을 정확히 해소하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주인공은 에피소드 안에서 빠르게 보상받고 복수한다. 특히 회빙환을 소재로 한 숏드라마는 사이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죽은 동생의 복수를 감행하는 <동생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노예 계약을 맺으려 했던 남편의 실체를 알게 되는 <상간녀에게 빙의되었습니다> 등의 작품이 이 사이다를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사진제공 레진스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