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블러드 카운테스> - Die Blutgräfin, 울리케 오팅거 | 스페셜 갈라
한국이 새벽 네시를 통과하는 중인 베를린의 저녁. 시차가 밀려와 깜빡 잠들기 쉬운 시점에 <더 블러드 카운테스>는 영화와 악몽의 분간을 힘들게 했다. 독일 표현주의의 귀환을 알리는 듯도 하고 이자벨 위페르를 위한 패션하우스의 장대한 필름 같기도 한 첫 동굴 장면에서부터 객석은 킬킬거렸다. 이 영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이미 하나의 꿈 같다. 아방가르드 영화의 갓마더, 퀴어 아이콘인 83살 울리케 오팅거 감독이 25년 동안 품어온 기획을 실현했으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함께 쓴 각본, 이자벨 위페르를 처음 구상한 날부터 시작된 20년간의 캐스팅 협상, 마침내 확보한 예산 135억이 <더 블러드 카운테스>를 실현시켰다(<피아니스트>의 그 작가와 위페르의 재결합!).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소녀들의 피로 목욕했다는 16세기 헝가리 귀족 에르제베트 바토리 백작의 전설은 그녀를 현대 빈에서 깨어난 뱀파이어로 재해석한 오팅거의 악취미와 함께 부활했다. 바로크 의상을 입고 노스페라투 시절의 마차를 타다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유유히 오르내리는 시대 교란의 비주얼은 이 영화의 키치함을 손톱만큼 설명할 뿐이다. 어쩌면 뱀파이어보다 이자벨 위페르라는 하나의 현상을 위한 영화임이 정확해 보이는, 올해 베를리날레의 레트로 컬트.
<슈타츠슈츠> - Staatsschutz, 파라즈 샤리아트 | 파노라마
독일-이란계 감독 파라즈 샤리아트의 두 번째 장편. 데뷔작 <노 하드 필링스>(2020)로 베를리날레 테디상을 받은 그가 이번엔 법정 스릴러로 돌아왔다. 인종차별적 폭행에서 살아남은 한국계 독일인 국가검사 세요 킴(첸 에밀리 얀)이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맹점에 맞서 직접 법정에 선다. 영화의 제목인 ‘슈타츠슈츠’는 국가의 보호이자 국가로부터의 보호라는 이중적 의미를 품는다. 세요는 혐오범죄 기소율 80%가 폐기되는 시스템 안에서 묵인을 배운 검사였으나, 화염병 테러의 표적이 된 순간 시스템 바깥으로 걸어 나온다. 그가 울프커트 스타일의 머리에 방탄 처리한 닷지 챌린저를 몰며 독일의 배트맨이 되는 과정은 파노라마 관객상 1위가 단박에 납득될 만한 아드레날린을 뿜는다. 현실의 구조적 부당함을 장르적 쾌감으로 변환하는 솜씨가 샤리아트 자신이 명명한 대로 “액티비스트 팝콘 시네마”답다.
<조세핀> - Josephine, 베스 드 아라우조 | 경쟁
8살 조세핀(메이슨 리브스)은 아버지와 공원을 달리다 들어간 숲속에서 자신이 목격한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강간이라는 단어를 구글에 검색해야만 알 수 있었던 소녀가 이후 칼을 집어들고, 장난감 총에 집착하고, 학교에서 돌발행동을 일으키는 과정을 영화는 설명하는 대신 따라간다. 이후 조세핀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재판에 서게 되지만, 채닝 테이텀과 제마 챈이 연기한 부모는 각기 다른 양상으로 끝내 무력할 뿐이다. 인물의 관점을 체감케 하는 다양한 시점숏으로 불편한 진실을 응시하는 <조세핀>은 앞서 1월 열린 선댄스영화제에서 미국 극영화 경쟁부문 그랑프리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수상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마이 와이프 크라이스> - Meine Frau weint, 앙겔라 샤넬레크 | 경쟁
앙겔라 샤넬레크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 오긴 할까? 가망이 없어 보여 한편 넣어봤다. 베를리날레에서 2019년 <나는 집에 있었지만…>으로 감독상, 2023년 <뮤직>으로 각본상을 받은 그가 이번에는 다양한 관객층이 한층 접근하기 쉬운 영화를 가져온 인상이다. 엄격한 침묵을 깬 자리엔 건조한 기술에 가까운 대화가 집요하게 이어진다. 크레인 기사 토마스(블라디미르 불레비치)와 무용 교사 카를라(아가트 보니체)는 작은 교통사고 이후 관계가 무너져내리는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마주한다. 카를라가 문득 “여름휴가엔 어떤 여행지에 갈지, 비싼 소파로는 무엇이 좋을지 같은 질문이 더 이상 삶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자각해버렸기 때문이다. 박제된 롱숏, 움직이는 신체와 파편화된 내러티브의 공존은 철저할 정도로 여전히 샤넬레크의 것이다. 감정의 증거보다 감정의 부재가 더 크게 울리는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