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드라 휠러가 연기하는 로즈는 독일 30년 전쟁(1618~48)의 잿더미 속에서 걸어나온 여자다. 바지를 입고, 얼굴에 총탄의 훈장을 달고, 남자의 이름으로 토지 문서를 품에 넣고서. 로즈는 성정체성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절, 세계가 여자에게 허락하지 않던 것들- 땅, 이동, 결정- 을 열렬히 원했을 뿐인 인물로 그려진다. 한때 미하엘 하네케의 캐스팅 디렉터였던 오스트리아 감독 마르쿠스 슐라인처가 16~19세기에 실재했던 수백건의 남장 여성 기록을 한몸에 합산하여 이 허구적 인물을 빚었다. 제왕의 광채를 뿜는 휠러의 맞은편에는 젊은 시절의 셸리 듀발처럼 입체파적 초상의 마력을 지닌 카로 브라운이 있다. 로즈가 전략적으로 택한 신붓감 수잔나 역을 맡은 브라운은 독일영화계의 촉망받는 신인이자 <로즈>의 발견으로서 빛난다. 잿빛 풍경화 속에서 서로를 단호히 포용한 두 인물, 두 배우와 베를린에서 만났다.
- 여성이지만 남성의 외모를 하고 성역할에 충실한 인물을 위해 신체적 조건의 측면에서 특히 연구한 부분이 있다면.
잔드라 휠러 아… 솔직하게 표현하면 다리 사이에 달린 그것. 내가 바지 안에 품고 있던 장치가 나의 캐릭터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장치가 됐다. 물리치료사에게 남녀 고관절의 움직임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배웠다. 높은 칼라의 군복이 목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서 그 딱딱한 형태 자체가 나를 캐릭터에 엄격히 가두는 역할도 도왔다. 관념적으로는 권력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권력이란 어떻게 몸으로 번역되나? 무대 시절에 배운 건데, 불안한 사람은 결코 자기 영역을 지배하지 못한다. 반면 매우 차분하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실체가 어떻든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핵심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남성에게는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관이 태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그 ‘공백’에 관해 오래 몰두했고 한편으로는 내 안의 남성성에 대한 많은 연민과 이해도 생겼다. 슬픈 일이다.
- 세상이 로즈를 남성으로 알 때와 여성임이 밝혀진 이후 인물 안에서 무엇이 달라졌을 거라고 보나.
카로 브라운 옆에서 그를 목격한 캐릭터의 입장에서 말하면 더 이상 하나의 역할을 연기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의 홀가분함을 감지했다. 당시엔- 어느 정도는 오늘날에도- 남성적인 행동 방식은 폭력성과 연결되곤 한다. 그 역할을 수행하는 건 남성에게도 굉장히 소진되고 버거운 일이다. 비록 외부의 위협이 있긴 하지만 로즈는 살면서 처음으로 진정 자유로운 자기 안의 공간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 17세기 여성의 억압을 다루지만 영화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두 여성배우에게 이 결정이 어떻게 와닿았는지 궁금하다.
잔드라 휠러 폭력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감독의 매우 의식적인 결정을 이해했고 동의할 수 있었다. 여성이 강간당하고 폭행당하는 장면은 스크린에서도, 현실에서도 모두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다.
카로 브라운 그런 폭력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더라도 두 인물이 처한 고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이해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
- 감독의 연출뿐 아니라 연기에서 재현에 대한 개인적인 윤리관이 있다면.
잔드라 휠러 배우의 일은 일부 공공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굉장한 책임이 따른다는 게 내 입장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사회를 반영한 다음 다시 사회에 무언가를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그러니 우리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방식을 구태여 재현한다면 사실상 그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셈이 된다. 수백년간 있어온 것들을 굳이 다시 반복하고 싶은 건지, 늘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입꼬리 끝에서 시작해 얼굴의 절반을 가로지르는 총상 흉터가 무표정한 로즈의 도상을 더욱 기묘하게 만든다.
잔드라 휠러 흉터는 로즈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어떤 일들을 겪어왔다는 서사를 얼굴 위에 품고 있게 해줬고, 극 중에서도 주변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권위와 존중을 끌어내는 장치다. 연기에 있어서도 실용적으로 굉장한 도움이 됐다. 만약 배우인 내가 내면에서 어떤 연약함을 느끼더라도 캐릭터의 흉터 뒤에 감출 수 있었다고 할까. 잔드라 휠러에게도 보호막이었던 거다. 사실 촬영장에서 매일 아침 새로 붙이는 거라 매번 미세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마저 좋았다.
- 전쟁 이후 버려진 농가가 흑백 화면에 절묘하게 재현됐다. 실제 로케이션에서 받은 영향도 있나.
잔드라 휠러 마을을 채우는 어느 집 하나도 세트가 없었다. 모든 집들을 실제 로케이션에 지었다. 그들이 걸었을 길을 걷고 보았을 풍경을 보았다. 이 정도의 실제적 환경은 이전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절의 영향도 더 크게 받았다. 촬영이 여름과 겨울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모든 것이 피어나는 시기의 생명력과 차갑고 황량한 공기의 무거움이 캐릭터의 옷 속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카로 브라운 (해맑게) 난 처음이 떠오른다. 골프 카트를 타고 로케이션 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동하면서 마을 전반을 탐사하는 날이 있었는데, 빌리 아일리시 신보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잔드라와 가상현실 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떨렸다.
- 로즈의 비밀이 드러난 뒤에도 부부 생활이 유지되는데 인물들간의 약속을 두 배우는 어떻게 해석했나.
잔드라 휠러 아기를 안고 들판을 걷는 장면에서 둘의 결속이 확실시된다. 매우 평화롭고 고요한 느낌이면서도 이 순간을 얻기 위해 많은 결심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충분히 보여주는 장면이었기에 좋아한다. 사실 두 사람이 원하고 바라던 모든 것이 이미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저 다른 형태였을 뿐이고 그걸 깨달은 장면이라고 봤다. 진짜 모습을 찾았는데, 이제 와 버릴 이유가 무엇인가?
카로 브라운 로즈가 끝까지 이성적으로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캐릭터라는 점이 짜릿했다. 쾌락에 지거나 상대와의 권력 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 말이다. ‘나는 이 바지를 끝까지 입고 살아가겠다’라는 마음은 로즈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일이다. 나는 그 주체성을 인정만 하면 됐다.
- <추락의 해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이어 <로즈>로 이어지는 잔드라 휠러의 필모그래피가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무정하게 통과하는 배역을 마쳤을 때 배우의 실제 일상은 어떤가. 금방 털어버리는 편인가.
잔드라 휠러 정면으로 마주하고 감정을 터뜨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배우 생활 초기에는 이걸 몰라서 많이 허우적댔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그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회피해버리면 당신을 평생 따라다닌다. 하지만 제대로 작별을 고하면? 괜찮아진다.
- 지금이 당신 커리어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나.
잔드라 휠러 30년째 일하는 동안 요즘이 상승이니 부상이니 하는 수식을 가장 자주 접하는 시기이긴 하다. 그런데 왜 호사가들은 사람의 생애를 직선화하길 좋아할까?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차라리 원이나 나선형에 가까울 것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도전들이 찾아오고,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하면서 배워가고, 그만큼의 부담감과 기쁨을 동시에 누리다가 또 굴러떨어지기도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