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는 7번째 연속 초청이라는 기록을 세운 홍상수 감독의 <그녀가 돌아온 날>(파노라마),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포럼),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제너레이션 14플러스), 오지인 감독의 <쓰삐디!>(단편 경쟁)까지 네편의 한국영화가 활약했다. 올해 개봉을 앞둔 두편의 신작을 소개한다.
<그녀가 돌아온 날>
“저는 아이디어로부터 영화를 출발하지 않습니다. 배우를 가장 먼저 정하고, 그다음 장소를 정합니다.” <그녀가 돌아온 날>은 2006년 <해변의 여인> 이후 홍상수 감독과 8번째 장편 협업을 맞이한 송선미의 영화다. 그리고 하남시의 한 독일식 레스토랑에서 찍혔다. 영화 속 송선미는 긴 공백기 끝에 독립영화를 통해 복귀한 배우로 같은 장소, 같은 자리에서 세명의 젊은 여성 기자와 인터뷰한다. 극 중 배우는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는 중인데 사적인 질문에는 답하기를 거부하고 일상의 여백을 구성하는 사소한 소재들로 눈앞의 존재들과 연결되려 애쓴다. 오가는 질문과 대답 모두 적당히 솔직하거나 묘연하다. <그녀가 돌아온 날>은 이 단순함 속에서 선명한 무언가가 불현듯 출현하길 기다리는 영화다. 비슷한 감정과 충동, 이야기의 조각들이 성글게 반복되는 동안 중년의 배우는 그저 맥주를 마시고 싶고, 젊은 여성들은 삶의 갈증을 해소해줄 선배의 지혜를 구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작품은 총 5개의 장을 통과하는데, 배우가 자신이 겪은 하루의 일들을 연기 수업에서 재연하는 마지막 대목에서 신비로운 작용이 일어난다. 현지 시각 2월18일 저녁, 1957년 개관 이래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함께 역사를 써온 극장 주 팔라스트에서 34번째 장편의 상영을 마친 홍상수 감독은 같은 대화를 반복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텍스처가 달라진다”고 표현했다. 아마도 대다수의 관객들이 앞서 벌어진 현실보다 밀도가 응축된 연기 수업 장면에 더욱 동요할지도 모르겠다. 실제와 허구 중 생생한 촉감을 갖는 쪽이 외려 후자일 때, 예술의 진실성을 논하는 홍상수식 우화도 함께 빛난다. /김소미
<내 이름은>
전통무용을 가르치며 제주에 사는 정순(염혜란)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춤을 추며 단순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몸의 말은 다르다. 선글라스에 의존하는 정순은 사실 뜨겁게 비치는 햇살을 보면 불안 증세가 극심해진다. 과거에 자리한 아픈 기억을 회피하는 것에 익숙한 인물에게 서울에서 내려온 정신과 의사 희라(김규리)가 손을 내민다. 영화는 정순이 잃어버린 어린 시절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객을 동참시키는 방식으로 제주 4·3 사건을 조망한다. 사건이 벌어진 1948년과 현재 이외에 제주 4·3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1998년을 주된 시간적 배경으로 삼아 전개되는 구성이 상징적이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 <소년들> 등으로 한국 역사의 이면을 날카롭게 다뤄온 정지영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공동체가 오래도록 외면해온 시대의 트라우마를 다시 조명한다. 베트남전쟁과 5·18 민주화운동이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바꾸는 주요 요인으로 언급되고, 정순의 아들 영옥(신우빈)이 전학생인 경태(박지빈)의 등장으로 학교폭력에 노출되는 등 외부의 압력에 의한 폭력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는 시선이 주효하다. 대중적 극영화의 문법을 착실히 따르며 객석의 품을 넓히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특히 배우 염혜란의 우직한 존재감은 아직도 명확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현대사의 아픔을 다독인다. /베를린 지경란

